역대 ‘비운의 스타’ 즐비, 소속팀 정착이 관건…이강인 행선지도 초미 관심사
지난 17일 열린 환영식에서 정정용 감독을 헹가래 쳐주는 U-20 대표팀 선수들.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24일간의 2019 U-20 월드컵 일정이 끝났다. 그간 대한민국은 21회까지 열린 이 대회에 14회 참가했다. 이번 대표팀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그간의 선배들을 제치고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역대 최고 성과를 거두자 이들을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대회 시작 당시만해도 이들을 주목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온 현재 대회 엔트리 21명 선수 대다수가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역대 최고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거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준우승 멤버들이 A 대표팀에 합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부 선수들의 유럽행 논의도 실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벌써부터 구자철, 기성용, 손흥민 등 오랜 기간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과도 비교가 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축구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대감을 경계하고 있다. 그간 어린 시절 두각을 드러냈다가 언론과 팬들의 과도한 기대로 날개를 펼치지 못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MVP)을 받고도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간 해외 유명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U-20 월드컵 결승전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축구팬들. 팬들은 큰 성과를 거둔 이번 대표팀 선수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종현 기자
#빛나지 못한 ‘U-20 월드컵 스타’들
직전 대회이자 한국에서 열렸던 2017 U-20 월드컵은 잉글랜드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당시 주축 공격수였던 도미닉 솔란케는 2년이 흐른 현재까지 프로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자유 계약으로 합류한 리버풀에서 2017-2018 시즌 21경기에 나섰지만 1골만을 넣으며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다음 시즌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본머스로 이적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교체 출전 위주로 리그 10경기에 나섰지만 골은 없었다.
2015년 대회 골든볼 수상자 아다마 트라오레(말리)의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 올해 만 23세가 된 그는 골든볼 수상 이후 매년 활약 무대를 옮기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프랑스 리게 앙의 릴 소속이던 그는 골든볼 수상 이후 AS 모나코로 이적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포르투갈, 벨기에 무대로 임대 됐다. 그 사이 2차례 장기 부상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천부적 재능을 선보이고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선수의 대명사로는 하비에르 사비올라(아르헨티나)가 꼽힌다. 2001년 대회에서 그의 활약은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대회 7경기에 모두 출전해 11골을 넣으며 골든슈(득점왕), 골든볼을 쓸어 담았다. 대회 11골은 2019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최다골 기록이다. 그의 미래가 탄탄대로로 열리는 듯 했다.
대회 이후에는 마라도나가 그랬듯, 세계적인 명문구단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이적 첫 시즌 리그 36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넣으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이내 팀 전술에 녹아들지 못하며 여러 팀을 떠돌았다. 이후 벤피카(포르투갈) 소속으로 3시즌 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잠시나마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충격적인 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에도 존재했던 비운의 스타
이처럼 청소년 대표팀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비운의 스타들은 국내에도 있었다. 1983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에 나섰던 대표팀도 이 같은 상황을 피해가지 못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성인 월드컵 본선 티켓조차 따내지 못하던 대한민국에게 청소년 월드컵 4강은 놀라운 결과였다. 4강 신화를 만들었던 이들에게 축구팬들이 거는 기대도 컸다. 이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져줄 것만 같았다.
‘1983 멕시코 세대’의 성공에 많은 기대감이 일었던 바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신연호와 함께 ‘축구 천재’로 평가받던 김종부(현 경남 FC 감독)는 A 대표팀에 안착해 다년간 활약을 이어 나갔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해 대한민국 역사상 월드컵 첫 승점을 따내는 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활약 또한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터진 이른바 ‘드래프트 파동’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 무대에 데뷔 했지만 부상과 불운 등이 겹치며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지금부터가 중요
새 역사를 써내려간 이번 U-20 대표팀도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세 이하 무대에서의 성공이 성인 무대에서의 성공까지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팀 주장 황태현도 귀국 환영 행사에서 “지금이 끝이 아닌 정말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한다”며 “더 높은 위치, 더 높은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계 인사는 이번 대표팀에 대해 “물론 너무나도 큰 성과를 얻은 것에 대해서는 백번이고 더 칭찬을 해주고 싶다”면서도 “선수들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대회는 어느 때보다 학생 신분보다 프로에 소속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오세훈(아산 무궁화) 정도밖에 없다. 이러면 경기 감각을 살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정호진(고려대), 최준(연세대) 같은 대학생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았다. 어린 선수들의 소속팀 경기 출전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대표팀은 정호진, 최준을 제외하면 전원이 프로 1~2년차 선수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소속팀에서 벤치를 달구고 있다. 이는 연령별 대표팀을 맡는 모든 감독들의 고민거리다.
이에 대표팀 내 유일한 소속팀 주전 선수인 오세훈의 선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1년간 단 4경기에만 나섰다. 4경기의 출장 시간을 합치면 88분이었다.
프로 2년차를 맞아 오세훈은 임대를 선택했다. 행선지는 2부리그 아산 무궁화였다. 새로운 팀에서 주전으로 낙점된 그는 박동혁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리그 10경기 중 8경기에 선발로 나서며 활약했다. 이에 힘입어 더욱 성장한 모습을 이번 U-20 월드컵에서 선보였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강인의 행보에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 현지에서는 리그 내 타 팀과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 등이 이강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강인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U-20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던 정우영은 ‘빅클럽’ 바이에른 뮌헨에서 프라이부르크로의 이적을 19일 확정지었다.
36년 전 4강 신화를 만든 박종환 감독은 당시 제자들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인물이다. 그는 손주보다 어린 이번 대표팀 선수들에 대해서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선수들 각자의 선택에 따라 더 큰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정체될 수 도 있다”면서 “그래도 36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완 달리 지금은 국내 프로 무대도 안정이 돼 있고 좋은 지도자들도 많다. 과거 선수들보다는 크게 성장하는 선수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