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는 중학생들의 경쟁이 그렇게 치열한 줄 몰랐다. 외고, 자사고를 들어가기 위해 휴일도 없이, 밤낮도 없이 공부만 하는 줄도. 그 중요한 시기에 공부가 목적이 되고 왕이 되어 인생을 점령하고 있으니 전도(顚倒)도 그런 전도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 헌장을 외웠었다. 그런 전체주의적 교육도 슬프지만 “일류 고등학교, 일류대학교!”만 목적인 이기적인 교육은 더욱 슬프다.
그 중요한 시기에 자기 자식, 자기 학생, 자기에게 주입하는 “일류 고등학교, 일류대학!”은 교육이 아니라 구호다. 욕망만 있고 삶이 없는 이기적인 구호. 그것은 욕망이 삶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임을 잃어버린 위태로운 삶의 신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대학 졸업장에 너무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해 욕만 하겠냐는 하소연은 힘이 있다. 그러니 자사고가 줄줄이 지정취소 결정이 내려지자 온 나라가 출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정권은 자기 자식은 외고, 자사고, 유학이고, 남의 자녀한테는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어떤 의원의 비난은 입시위주 교육의 명암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가 줄줄이 지정취소 결정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13개 학교 중 8개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교육청의 결정은 단호해 보인다. 그만큼 취소된 쪽에서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결정으로 학교 서열화 폐지라는 이 정권의 공약을 지켜질까. 나는 정말 궁금하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입시위주의 교육이 사라질 것인지. 학교가 입시학원이 아니라 인간을 배우고 ‘나’를 배우고 함께 사는 세상을 고민하는 배움터가 될 것인지.
적어도 그것이 진짜 교육으로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태도라도 있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정들이 자사고의 완전한 폐지가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남겨진 학교가 소수일수록 그 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부동산 가격은 교육과 함께 간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을 따라 집을 옮기는 맹모들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교육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입시”만을 추구하는 학원들이 모이는 곳으로 더 모여들기 시작하면 부동산 문제는 또 어찌 풀 것인지.
나는 생각한다. 정말 문제가 많은 학교만 지정취소를 하고 많이 남겨서 제대로 사다리를 만들어주든지, 아니면 제대로 폐지하든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어정쩡하게 칼을 대는 것은 곪은 곳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것이므로.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