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세 차례 공식석상서 경련 증상 보여…“탈수” 해명에도 감염·신경성질환 등 추측 나와
느닷없이 불거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5)의 건강 이상설에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이 술렁이고 있다. 지금껏 전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강인하면서도 우직한 모습을 보여왔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메르켈 총리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혹은 지난 6월 처음 불거졌다. 외교 의전을 하는 행사장에서 갑자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었다. 다행히 불안한 모습은 곧 진정됐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후 두 차례 더 비슷한 증상을 보이자 독일 안팎에서는 총리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퍼져 나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6월 27일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연단에서 연설하는 동안 온몸을 떨면서 오른손으로 왼팔을 잡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6월 1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영접하는 행사 때도 온몸을 떠는 증세를 보였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2021년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태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크게 패하면서는 기독교민주연합(CDU) 당 대표직을 내놓기도 했다.
14년 동안 재임하면서 딱히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적은 없었다. 유럽연합 정상들과 밤샘 마라톤 회담을 가진 후에도 유일하게 꼿꼿이 선 채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자랑했으며, 혹독한 하루 일정을 견뎌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2011년 무릎 수술을 받은 후에는 자택에서 업무를 볼 정도로 의욕에 넘쳤는가 하면, 2014년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공석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 메르켈 총리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지난 6월 18일이었다. 당시 베를린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공식 환영행사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메르켈 총리가 몸을 벌벌 떠는 이상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나란히 서있었던 메르켈 총리는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이를 진정시키려는 듯 두 손을 맞잡았으며, 입을 꽉 다문 채 참는 모습을 보였다.
몇 분 후 떨림 증상은 멈췄고, 평소와 같이 공식 행사를 마쳤지만 이어 열린 기자 회견에서는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당시 “의장대 행렬이 진행될 때 몸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들이 염려할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메르켈 총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데다 물을 적게 마셔서 나타난 탈수 증상이었다. 물 세 잔을 마시고 나니 괜찮아졌다”라고 해명했다.
총리실 대변인 역시 “그날은 기온이 30도에 육박할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상당 시간 뙤약볕 아래 서있어서 나타난 탈수 증상이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다음 날 메르켈 총리는 고슬라 중심가에서 만난 시민들과 보란 듯이 평소 모습 그대로 셀카를 찍으면서 이런 의혹을 불식시켰다.
하지만 이는 얼마 가지 않았다. 불과 9일 만에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서 총리의 건강 문제는 다시금 쟁점으로 떠올랐다. 6월 27일, 신임 법무장관이 공식 임명되는 자리에 참석했던 메르켈 총리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연단에서 연설하는 동안 옆에 서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또 메르켈 총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련 증상은 2분여 동안 계속됐으며, 메르켈 총리는 이번에도 떨리는 몸을 가누기 위해 두 손을 맞잡거나 팔을 움켜잡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입을 꽉 다문 채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계속해서 불편한 모습을 보이자 수행원이 물컵을 건네줬으나 이를 사양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날은 베를린 기온이 섭씨 20도 정도로 선선했고, 행사가 대통령궁 실내에서 열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탈수 증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총리실은 이번에도 “괜찮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에도 정상적으로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의 몸이 떨렸던 이유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며칠 전 몸을 떨었던 증상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증상이라는 것이었다.
실제 메르켈 총리는 G20 정상회의에 예정대로 참석했으며, 시차 때문인지 회의 도중 살짝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해냈다. G20 직후에는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위원회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건강 이상설이 다시 불거진 것은 7월 10일이었다. 안티 린네 핀란드 총리의 환영 행사장에서 또 한 번 온몸이 떨리는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이었다. 양국의 국가가 연주되던 중 온몸이 앞뒤로 떨리기 시작하자 메르켈 총리의 얼굴은 불안에 가득 찼으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면서 두 손을 꽉 잡고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번에도 떨림 증상은 1분 넘게 지속됐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 ‘안테네 바이에른’은 독순술 전문가에게 메르켈 총리의 입술 모양 판독을 의뢰했고, 그 결과 총리가 “나는 할 수 있어(I can do it)”라는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계속되는 건강이상설을 의식한 듯 메르켈 총리는 다음 날인 7월 11일 열린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환영식에서는 이례적으로 의자에 앉아 의장 행렬을 지켜 보았다. 군악대가 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덴마크 총리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었던 메르켈 총리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었으며, 연주가 끝난 뒤에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덴마크 총리와 함께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메르켈 총리는 “우선 제 건강에 대한 질문에 답을 드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저는 총리직에 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고, 건강 상태를 고려해 적절히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저는 개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건강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있으며, 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메르켈 총리는 ‘경련 증상과 관련해 전문의의 진료를 받았는가’ ‘건강 검진을 받았는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건강 이상설이 확산되고 있자 그 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도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단순한 탈수 증상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 전문의들은 “하루빨리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면밀히 건강 상태를 조사해야 한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영국의료시스템(NHS)은 몸이나 팔을 떠는 증상에 대해 웹사이트를 통해 “나이가 들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거나,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 혹은 카페인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 후에 이런 떨림 증상이 눈에 띄게 나타날 수 있다. 또는 매우 덥거나 추울 때도 나타날 수 있으며, 특정 약물을 복용할 경우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또한 “가벼운 떨림은 대개 치료가 필요하지 않지만 파킨슨병이나 다발성경화증 같은 질환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메르켈 총리의 건강 이상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독일 타블로이드지 ‘빌트’는 메르켈 총리가 신경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노이슈타트 쇤클리닉’의 신경 및 임상신경학과 전문의인 우베 얀케는 ‘빌트’를 통해 “총리의 증상은 ‘기립성 떨림’을 연상시킨다. 이는 신경안정제의 일종인 벤조디아제핀과 같은 약물로 치료될 수 있다. 다만 어지럼증이나 피로감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무해한 질병으로 서있을 때 몸이 떨리는 증상 외에 다른 증상은 동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을 의심하는 전문의들도 있다. 건강 전문가인 크리스토프 슈페흐트 박사는 “총리가 감염됐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간헐적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감염 증상이 재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방송 아나운서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는 아마 과로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총리의 건강 상태는 결코 좋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매우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며,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내 안팎에서는 조기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태다. ‘빌트’는 “메르켈의 건강이 정치적인 문제로 대두됐다”고 지적하면서 총리 자신은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내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임기가 끝나는 2021년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오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메르켈 총리의 후임으로는 ‘미니 메르켈’이라고 불리는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유력하다. 지난 2018년 12월, 당 대표직을 물려 받았던 카렌바우어는 현재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다만 몇 차례 정치적 실패를 거듭하면서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다 과연 그가 메르켈의 뒤를 이어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여서 결과는 불투명한 상태다.
다만 현재 메르켈 총리와 카렌바우어 모두 2021년 이전에 사퇴하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메르켈 총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경우 여러모로 기민당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카렌바우어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신뢰 또한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메르켈 총리가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독일 헌법에 따르면 자동으로 총리직이 승계되지는 않으며, 독일 의회가 새 총리를 선출할 때까지 대통령이 임시로 정부 수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메르켈 총리 건강 문제 ‘사생활 공개’ 논란으로 비화 메르켈 총리의 건강 이상설이 대두되자 독일에서는 다시금 정치인의 사생활 공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독일에서 국가원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어디까지 알 권리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건강에 대해 굳이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의 독일 유권자들은 총리의 건강을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일간지 ‘아우구스부르거 알게마이네’가 여론조사기관 ‘치베이’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총 4495명 가운데 응답자의 59%는 ‘총리의 건강은 명백히 (또는) 대체로 사적인 문제다’라고 응답하면서 굳이 총리가 건강에 대해 대중에게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총리가 건강 문제에 대해 더 자세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4%였다. 이와 관련, 영국의 BBC는 독일 국민들이 특히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대해 민감한 이유에 대해 “독일인들은 20세기 나치 치하에서 무차별적인 감시와 공산주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우호적인 태도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들 사이에서 ‘무티(엄마)’라고 불릴 정도로 사실 각별한 존재다. 비록 자유방임주의적인 난민 정책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긴 했지만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독일인들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누리꾼은 “메르켈의 떨림 증상을 비웃는 사람은 악독한 사람이다. 한 개인의 건강 문제 앞에서는 정치 싸움 같은 건 해선 안 된다.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는가 하면, 또 다른 누리꾼은 “메르켈의 정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지금 한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 비웃음이나 농담은 집어치워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국민들뿐만 아니라 독일 언론들 역시 대체로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능한 메르켈 총리의 건강 문제를 단신으로 가볍게 보도하면서 사생활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메르켈의 건강 관련 보도를 짧게 다루었으며, 독일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 프로그램인 ’타게스샤우’ 역시 총리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 톱뉴스는커녕 여섯 번째 꼭지로 간략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물론 이와 반대로 총리의 건강 상태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수 성향의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베르톨드 콜러는 “국민들이 지도자의 건강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는가 하면, 평소 메르켈 총리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전 독일 정보국장인 한스-게오르그 마센은 트위터를 통해 “한 나라의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독일 국민들은 지도자가 국가원수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건강 상태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