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금 미끼로 SNS서 계좌정보 수집해 돈벌이 수단 악용…도박 청소년 2차 범죄 유입도
#‘공익제보’ 내걸고 도박계좌 수집…지급정지 뒤 금품 요구해

언뜻 보기에는 불법도박 근절을 위한 공익 제보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부 홍보계정은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 캠페인’ 같은 명칭을 내걸고 “당신의 용기 있는 제보가 깨끗한 세상을 만든다”며 제보를 독려했다. 신고 문턱도 낮췄다. “도박사이트 로그인 시도 없이 캡처본만 달라”거나 “24시간 언제든 제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불법 사이트 근절 캠페인이 아니라 통장협박에 필요한 계좌 정보를 수집하는 통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집된 계좌는 지급정지 절차를 악용하는 데 쓰였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통장협박범들은 이렇게 확보한 계좌에 이른바 ‘핑돈’을 보냈다. 핑돈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뜻하는 은어다. 이들은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에 10만 원 안팎의 핑돈을 송금한 뒤,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피해금 수취 계좌인 것처럼 허위 신고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금융회사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즉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시키기 때문이다.

계좌가 묶인 뒤에는 본격적으로 협박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급이 정지된 계좌에 1원을 반복적으로 송금하면서 입금 내역 메모에 텔레그램 아이디나 협박 문구를 남겼다. 이후 지급정지 해제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했다.
일요신문은 이른바 ‘통협팀(통장협박팀)’이 계좌를 지급정지시킨 뒤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역과 협박 메시지를 확보했다. 대화 내용을 보면 통협팀은 아직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며 상대를 재촉한 뒤 가족과 친인척, 해외선물 프로그램 관계자 등을 차례로 거론하며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들이 요구한 금액은 1000만 원이었다. 통협팀은 “숨겨놓은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화 1000만 원 정도면 가진 자료를 소각하겠다”고 했다. 이어 “돈을 보내지 않을 경우 직장과 자녀의 학교·유치원에 해당 자료를 배포하겠다”며 “시간이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협상이고 뭐고 없다”면서 압박했다.

최근 통협팀의 표적이 일반 계좌에서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로 옮겨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제보자 A 씨는 “초기에는 온라인 거래 과정에서 노출된 자영업자들의 계좌를 묶고 협박하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지급정지 이의제기 절차가 마련되면서 금융회사에 소명하면 비교적 빠르게 지급정지를 풀 수 있게 됐다”며 “협박범 입장에선 어차피 풀릴 계좌에 100만여 원을 써서 계좌를 묶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는 사정이 다르다. A 씨는 “일반인은 경찰에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불법 도박사이트는 신고나 소명 절차를 밟기 어렵기 때문에 훨씬 큰돈을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차례 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매달 상납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과거 통협팀에서 일해 본 적 있다고 밝힌 B 씨는 “업계에서는 이걸 ‘제휴’라고 하는데 매달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큰돈 번다는 말에”…2차 범죄 빠지는 청소년들

처음에는 몇 차례 돈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을 할수록 잃는 돈이 불어났다. C 씨는 사이트 운영진이 결과를 조작한다고 의심해 다른 도박사이트로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딴 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텔레그램에서 불법 도박사이트 계좌를 제보하면 사례금을 준다는 글을 봤다. C 씨는 통협팀과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통장협박이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직접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먹튀 사이트 계좌를 알려주면 ‘참교육’을 해주고 사례금도 준다고 해서 계좌 여러 개를 모아 제보했더니 그 이후로 추가 제보를 요구받거나 친구들을 소개해달라고 했다”며 “직접 (협박을) 하면 한 건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팀원으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C 씨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일을 소개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원장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요즘 학교엔 교실마다 총판이라 불리는 영업책들이 있다. 학생들이 불법 도박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영업을 뛰고, 사이트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다시 도박 자금으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박사이트를 겨냥한 통장협박은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낸 범죄 사업 모델로, 원래 보이스피싱을 하던 팀이 피해금을 이용해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대개 20만~30만 원의 사례금을 미끼로 미성년자들을 끌어모은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익적인 일을 하는 합법 단체처럼 위장해 돈을 갈취하는 조직도 있다는 것이 조 원장의 설명이다.
#피해구제 제도까지 악용…“일부 지급정지 해제 활용해야”
통협팀은 허위 신고 한 번으로 상대 계좌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강제력이 오히려 갈취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강민기 변호사는 통장협박을 단순 갈취 범행을 넘어 제도 남용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허위 신고가 반복되면 실제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가 지연될 수 있고, 금융회사의 업무 부담과 지급정지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도 커질 수 있다”며 “개인의 재산권과 영업활동을 침해하는 동시에 피해구제 제도의 정상적인 작동까지 방해한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초 신고 절차를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강 변호사는 신고 문턱을 높이는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보이스피싱 피해의 경우 신고와 지급정지가 늦어질 경우 피해금이 빠르게 이전되거나 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는 “최초 신고와 지급정지 절차는 현재와 같이 간소하고 신속하게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신고 단계의 문턱을 높이기보다는 통장협박의 전형적인 정황이 확인되는 경우 이의제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히 계좌 전체를 묶는 대신 피해금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급정지 상태로 두고 나머지 금액의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처음부터 일부 금액만 지급정지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이의제기 이후에는 피해금만 지급정지 상태로 남기고 나머지 자금의 거래를 정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일부 지급정지는 피해자의 피해금은 보전하면서도 선의의 계좌 명의인이 입는 영업 중단과 생계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절충안”이라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