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 ‘싸우는 단체’ 아니다…자선 경기 개최 등 다양한 활동 이어갈 것”
김훈기 사무총장은 선수 보호를 위해 달려온 그간의 선수협 활동에 대해 “제로에서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에서 제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K리그 여름 이적시장이 열린 직후인 지난 7월초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남준재와 제주 유나이티드 공격수 김호남이 트레이드로 소속팀을 맞바꾼다는 깜짝 뉴스가 터져 나왔다. 팀을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 왔고 전력 면에서도 중요한 선수들이었기에 이들의 이적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이에 더해 선수들의 의사에 반하는 이적이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오며 세간의 시선이 증폭됐다.
팬들의 반발에 인천 구단은 간담회를 열어 이적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팬들은 선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남준재는 이적 과정이 마무리된 이후 “트레이드 이야기가 구단 간에 오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상의나 면담은 없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의 발표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FIFPro Korea)와 함께였다. 한국축구선수협회는 국내 축구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다. 지난 2012년 발족해 2017년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회원이 됐고, 현재 국내 약 600명의 선수가 가입돼 있다. 남준재와 김호남의 트레이드 건을 두고 “국내 트레이드는 잘못된 제도”라고 짚은 김훈기 선수협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선수협 사무실에서 만난 김 사무총장은 “K리그에선 트레이드로 선수가 이동할 때 구단이 기존 연봉보다 1원이라도 더 큰 제안을 하면 선수가 거부를 할 수 없는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남준재·김호남 선수 트레이드에 대해 구단은 ‘선수에게 의사를 물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이미 구단끼리 합의된 상황에서 선수에겐 ‘통보’만을 하는 듯한 모습이 나왔다”고 말했다.
과거 이 같은 형태의 트레이드는 K리그서 자주 있는 일이었다. 김 사무총장은 “과거 한 선수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해외에서 대회에 참가하던 중 자신의 트레이드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지역 연고 문화가 자리를 잡고 팬들 또한 선수, 구단과 끈끈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선수 의사와 관계없는 트레이드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하지만 이번 이적 과정에서 남준재의 입장문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쓸쓸한 뒷맛을 남겼다. 김 사무총장은 “물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지만 냉정하게 제도 면에서 봤을 때 구단이 규정을 위반한 부분은 없다. 구단은 그저 잘못된 제도를 따랐을 뿐이다. 현재 K리그의 트레이드 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이 구단과 선수간의 ‘진실 공방’으로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며 김 사무총장은 팬들로부터 수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팬들이 이적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셨는지 ‘선수협에서 나서 달라’는 요청들을 많이 하셨다”면서 “선수가 권익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팬 분들이 저희를 찾아주신다는 사실에 그간의 노력이 약간은 인정받은 것 같아 한편으론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선수협은 각 구단을 돌며 승부조작 방지 등의 교육을 진행해왔다. 사진은 선수협의 제주 유나이티드 방문. 사진=한국프로축구션수협회
선수협은 그간 구단이 선수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여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강압적 계약 해지 등을 바로잡는 일들을 해왔다. 김 사무총장은 “어떤 분들은 선수협을 ‘강성’이라고 평가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우리는 싸우려는 집단이 아니다. 선수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간 국내 축구 시장에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제로(0)에서 플러스’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 ‘마이너스에서 제로’ 상태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트레이드 제도 이외에도 국내 축구에서 어떤 부분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을까. 김 사무총장은 ‘연봉 재협상’을 예로 들었다.
“일반적 의미의 연봉 재협상은 좋은 것이다. 좋은 기량을 보인 선수는 연봉을 올려주고 그렇지 못한 선수는 삭감을 하면서 합리적으로 구단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좀 상황이 다르다. 3년이나 5년 계약을 체결하면 그 기간 안에는 연봉 변동이 없어야하지 않나.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해마다 연봉 협상을 다시 하는 상황이다. 일부 구단들은 그들만의 평가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선수가 많은 경기에 뛰고도 다음해 연봉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선수협은 이 같은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수년간 이어왔다. 김 사무총장은 “몇 년 전부터 공론화를 시키려 했고 올해도 선수협 이사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다”면서 “하지만 K리그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로컬룰을 적용한 것’이라고 답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로컬룰은 상위 기관인 국제축구연맹(FIFA) 룰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해 주는 것이다. 계약기간 중 연봉 변동은 룰 위반이다. 연봉을 올리거나 내리려면 계약을 새롭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의 인식 변화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김 사무총장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선수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그는 “선수들은 그동안 맞으면 맞는 대로, 잘못된 것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여 왔다. 침묵하는 피해자도 많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누군가는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이제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터닝 포인트 중 하나는 이근호 회장이 나서면서 부터다.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처음으로 현역이면서 유명 선수인 이근호 회장이 선임됐다. 주변의 추천에 고민이 많았지만 수년간 선수협 이사직을 맡아왔고 후배들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사실 선수협은 유명 선수보다는 어려운 선수들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근호 회장이 큰 결단을 내려줬다”고 전했다. 선수협에는 이근호 회장을 필두로 염기훈, 박주호, 윤석영 등이 이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인터뷰 말미에서 “많은 분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계시는데 선수협이 구단이나 에이전트와 대립각을 세우고 싸우려고만 하는 단체가 아니다”라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자선 경기 개최, 은퇴 선수들을 위한 교육이나 라이선스 취득 과정 개설 등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