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 떡 쥐고 저울질 “뚜껑 너무 일찍 열면 안돼…민심 보고 전략적 판단해야”
바른미래당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한국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은 정치권에 파다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한 혁신위원의 폭로 때문이었다. 조용술 전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은 ‘이혜훈 의원이 손학규 대표 퇴진 안건 상정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른정당 출신인 이혜훈 의원은 7월 9일 조 위원을 국회 정보위원장실로 불러 ‘유승민이 바람을 갖고 있으면 우리의 명분을 그걸로 싸서 아름답게 포장해서 갖고 계세요’, ‘우리가 이대로 통합 안 하고 손 안 내밀고 그냥 갔다가는 수도권과 충청, 강원에서 다 죽겠구나, TK(대구‧경북)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살 데가 없구나, 이 생각을 해야지 쟤들(한국당)이’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조 전 혁신위원은 ‘이 의원 외에도 한국당과의 통합을 언급한 의원들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그 의사를 묻는 의원들이 몇 명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조 전 혁신위원은 “바른정당계라고 단정짓진 않겠지만, (한국당과의 통합 또는 선거연대) 어떻게 해보겠다고 밝힌 사람도 있다”고 털어놨다.
바른미래당 한 관계자도 “그들(바른정당 출신)은 항상 양다리였다. 상황마다 입장이 바뀌는데, 한국당과의 연대 통합에 가장 적극적이던 시기는 2~3월이었고, 4월 이후엔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바른정당은 2중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한국당 안 간다’고 하지만, 뒤에선 통합을 타진하며 공천 확보를 알아보고 다녔다더라. 물론 정치인인 나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바른미래당 입장에선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출신의 바른미래당 의원은 “현재 지도부에 있는 (바른정당 출신) 의원이 나에게 ‘한국당과 함께 가자’고 말했다. 나중에는 당의 전략과 비전을 이야기하면 ‘한국당과의 통합’만 이야기하더라”며 “우리 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한국당에 기대하기도 하고, 한국당 계파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주저하기도 하더라”고 밝혔다.
이처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한국당 왼쪽에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면, 오른쪽에는 우리공화당이 있다. 한국당과 공화당의 연대설이 불거진 것은 양측 인사들의 만찬 회동이 알려지면서다. 이 자리에는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과 원유철‧정우택‧유기준 의원, 이완영 전 의원과 홍문종 공화당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여기서 한국당 의원들이 홍 대표에게 ‘수도권 선거구 10석가량과 대구‧경북 일부를 공화당에게 양보한다’는 ‘연합공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는 ‘이런 제안이 사실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날 회동은 진지한 자리가 아니라 탁상공론 수준이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만나서 통합을 전제로 여러 안을 내놓은 것일 뿐이었고, 이것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우리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고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도 없다”면서도 “다만, 보수 통합 의미에서 좋은 의견만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홍 대표는 “그쪽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사람들(친박계)은 원래 만나는 사람들이고, 황교안 대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누구라고 콕 찝을 순 없지만 계속 만나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원진 공화당 공동대표는 비교적 냉담한 입장이다. 조 대표는 ‘선거연대‧입당‧합당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 중인가’라는 질문에 “합당 등 논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도권 10석 양보 제안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고 묻자 “아무 의미 없는 제안. 관심 없다”고 했다.
바른미래당과 공화당이 양측에서 한국당과의 통합, 선거연대를 노리며 적극적으로 물밑 작업을 벌이는 모습이지만, 한국당은 이 같은 의혹을 일축하거나 함구에 나서고 있다. 공화당과의 만찬 회동 이후에도 당 지도부는 “그런 적 없고 만난 적 없다”고 부인했다가 이후 사실이 드러나자 “만났는데 선거 얘긴 안 했다”고 말을 바꿨다.
공화당과 한국당 의원들의 만찬 이후 비박계인 장제원‧김세연 의원은 반발에 나섰다. 김 의원은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고 걱정을 드러냈고, 장 의원도 “노선과 좌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과거 세력들의 ‘반동’이 강하게 일어나며 ‘구체제의 부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전 대표 또한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 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으니 국민들이 점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뚜껑을 너무 일찍 열어선 안 된다. 여론과 민심을 보고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 시점은 세 당의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며, 그때가 되면 셋의 공공의 적은 비박이나 친박이 아닌 민주당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통합에는 지역구 공천권 문제가 가장 민감하게 작동할 것”이라며 “단,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확신을 줘야만 통합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당이 중심을 가져야만 통합적으로 총선을 치를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당대당 통합이 아닌 지역구 상황과 여론조사에 따라 보수 후보 개개인의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