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규격 확대 문제를 놓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닉 라일리 GM대우차 사장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먼저 치고 나간 쪽은 닉 라일리 사장. 그는 지난 4월 중순 정부에서 경차 규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정부 정책은 전체적인 환경과 많은 요소를 감안해 이뤄져야지 몇 명이 로비를 하느냐가 영향을 미친다면 안된다”며 현대차를 겨냥해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그는 “GM대우차 고객은 로비의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우리도 고객에 (로비 비용을)전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경차 확대 정책이 특정 업체의 로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의 이 말은 현대차가 30여명의 ‘대관’업무 직원이 있는 데 반해 GM대우차는 2명밖에 없다는 점을 빗대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GM대우에선 최근 이마저도 일부가 빠져 나갔다는 것.
이에 반해 현대차는 경차 규격 확대를 위해 지난해부터 배수진을 치고 준비해왔다. 지난해 8월 현행 규격의 경차 생산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10월부터 아토스 생산을 중단했고 현대차의 아토스 모델의 변형 모델인 비스토를 생산하고 있는 기아차는 올해 말까지만 비스토를 생산하고 단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현대차의 경차 생산 포기 선언을 국내차 메이커 중 1등인 현대차가 경차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데는 아무런 이의를 달 수 없었다.
대우차 노조는 현행 2천2백억원의 매출 수준이 경차 규격이 확대되면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연간 1천2백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경차 시장은 현대가 손을 떼고 GM대우의 마티즈와 기아의 비스토가 7대3 정도로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이는 국내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와 GM대우의 점유율이 7대3 비율인데 반해 경차만 현대가 열세를 보이고 있는 것.
때문에 현대는 이런 열세를 뒤집기 위해서 경차 시장의 경차 규격 확대를 통해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는 그동안 경차 규격 확대를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지난 2월26일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최근 자동차업체간 논란을 빚고 있는 경유승용차 및 경차 규격 문제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풀어야 한다”며 협회 차원에서 경차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대차가 말하는 ‘글로벌 기준에 맞춘다’란 말은 “서유럽 등에 경쟁력있는 경차를 수출하기 위해선 현행 경차 규격을 확대하겠다”는 뜻과 마찬가지.
당연히 GM대우나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차 메이커에선 김 사장이 자동차공업협회장인지, 현대차 사장인지 구별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산자부 산하의 자동차공업협회장으로 취임한 김 사장의 말은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김 사장의 발언이 있은 지 한달여만인 지난 3월20일 산업자원부 모 국장이 “전문가들이 현행 800㏄에서 1000㏄로 경차 규격을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해 정부에서 경차규격 확대를 승인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어 지난 3월27일 산자부는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상반기에 관련 규칙을 개정, 경차규격을 현행 800㏄ 미만에서 1천㏄ 미만으로, 차폭도 1.5m에서 1.6m로 확대하되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키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경차 규격 확대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돼버렸다.
그러자 티코-마티즈를 통해 국내 경차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는 GM대우차에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미 현행 경차 규격에 맞춰 마티즈 후속모델인 M-200이 내년에 출시할 정도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 경우에 따라선 M-200에 들어간 2천억원의 개발비만 허공에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덩치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 때문에 대우차가 800㏄ 엔진에 맞춰 개발한 후속모델이 1000㏄ 엔진에 맞춰 개발된 현대차에 비해 경쟁력이 더 낫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실제로 현대차 계열사인 기아차는 비스토 후속모델을 1000㏄급 모델을 기본으로 만들고 있다. 당연히 GM대우차에선 경차 규격 확대 반대 여론조성 작업에 나섰다. GM대우는 “현재의 규격만 갖고도 경차시장이 줄어드는 서유럽 시장에서 오히려 판매량이 늘고 있다”며 “배기량이 늘 경우 오히려 서유럽 주요국가에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당해 수출경쟁력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차의 규격 확대를 통한 수출 경쟁력 상승 논리는 허구’라는 것이다.
GM대우에선 사무직 노조까지 나서 “경차 규격 확대는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에 나서는 한편 대우차 경영진쪽에선 M-200 프로젝트를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나서는 등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GM대우차의 2천억원 투자 무산론이 과장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GM대우차가 창원에 1000㏄와 1200㏄ 엔진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즉 경차에 1000㏄ 엔진이 당장 허용되더라도 GM대우 입장에서 준비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번 경차 규격확대 문제로 충돌한 것을 두고 지난해 공식 출범 이후 내수영업에 나선 GM대우차에 대한 현대차의 선제공격으로 보고 있다. GM대우 출범 이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올들어 그룹 임원들을 연일 영업현장에 내보내면서 내수시장 관리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미국 등 해외시장이 위축된 면도 있지만 내수시장에서 GM대우와 르노삼성의 추격전이 만만치 않아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정 회장은 수성을 위해서는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GM대우를 집중견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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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2.15 1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