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려 앉은 사람(squatting-person): 80x38cm fabric, sewing 2016
넓은 창으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고급 레스토랑.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식탁보가 덮인 정갈한 분위기의 식탁. 상아색 접시에 방금 요리한 두툼한 비프스테이크가 놓여 있다. 은빛으로 빛나는 포크와 나이프 옆에는 커다란 유리잔에 붉은 포도주가 담겨 있다. 미디엄으로 구워낸 스테이크는 갈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축사 현장에서 불에 타 죽은 소를 본 적이 있다. 불에 반쯤 그슬린 검붉은 사체 일부가 드러나고, 살결은 분홍색과 갈색 그리고 핏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참혹한 느낌이었다.
두 장면에는 모두 소가 등장한다. 불에 구워낸 쇠고기와 화재로 죽어 그슬린 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쇠고기는 고깃덩어리, 즉 물질로 보이기 때문에 식욕을 돋우는 요리 재료로 읽힌다. 그러나 불에 타 죽은 소는 영혼이 있는 동물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져 두려움과 혐오감을 준다.
촉각적인 몸 형상들: 100x60cm fabric, sewing 2019
영혼과 물질의 관계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류사가 꾸려졌다. 예술에서도 어느 쪽 입장을 취하느냐에 의해 예술 양식과 그에 따른 유파가 만들어졌다.
현대미술에서 주목을 끈 주제 중 하나는 인간의 몸이다. 몸으로 물질과 영혼의 문제를 풀어내려는 여러 시도에 의해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물질로 다가가려는 태도를 담아낸 작업들이 새로운 미술로 관심을 끌었다. 정신이나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닌, 순수한 물질로서 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미술가들에게 화두로 떠올랐다.
몸을 물질 자체로 들여다보려는 작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앵포르멜 운동의 선두주자 장 포트리에의 추상 회화에서 시작됐다. 그는 나치에 의해 대량 학살된 유대인의 시신에서 물질성을 보았고, 인간의 본질을 물질로 해석하는 작업으로 몸을 표현했다. 시멘트 등 물질성이 잘 드러나는 재료를 이용해 추상적 방법으로 강렬한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영국의 구상 회화에서 인간을 영혼을 담는 성스러운 그릇이 아닌 물질로 이루어진 몸으로 해석하는 작가들이 주목받게 된다. 20세기 후반기 회화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베이컨과 루시안 프로이트다. 이들은 인간을 정육점의 고기처럼 물질로 해석하는 강력한 메시지의 작품으로 현대사회의 병폐를 고발했다.
Sitting body shape(앉아있는 몸 형상) 4: 30x60cm fabric, sewing 2019
같은 선상에서 보이는 작가가 김영혜다. 그는 천을 이용한 독특한 방법으로 몸을 해석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서는 장식적 요소도 보인다. 인간의 몸을 물질성으로 해석하는 작품임에도 유쾌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에로틱한 느낌까지 지녀 눈길을 끈다.
재료의 특성을 작품의 방법론으로 택한 독자적 회화다. 신축성이 뛰어난 옷감으로 유려한 볼륨감을 만들어 몸의 일부를 표현한다. 옷이 육체를 연출하는 도구인 것처럼 천을 활용해 몸을 연출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런데 물질감보다는 물질의 성질이 보여주는 시각적 쾌감이 새로운 회화로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