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아크로빌. 이종현 기자 | ||
“딴지를 걸지 말라.”(도곡동 삼성타워팰리스)
부자들의 전쟁. 신흥 부촌 강남구 도곡동 주민들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서울의 최고 부촌으로 떠오른 도곡동의 대표주자인 삼성 타워팰리스 주민들과 대림 아크로빌 주민들이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
이유는 주로 삼성 타워팰리스 주민들을 위해 단지내에 삼성중공업이 건설중인 ‘옥외 골프장’ 때문. 이 둘간에 미묘하게 시작된 신경전은 현재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고 있으며,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도곡동 대란’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최근 도곡동은 “로또에 당첨되면 일단 타워팰리스 한 채 사고…”라는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는 ‘부의 상징’으로 비쳐져왔다. 이 두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병원장, 교수, 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이 대부분.
현재 강남구 도곡동에는 삼성 타워팰리스, 대림 아크로빌, 우성 캐릭터빌 등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중 삼성 타워팰리스는 Ⅰ,Ⅱ,Ⅲ 등 3개 단지가 있고, 대림 아크로빌은 A, B, C의 3개 동으로 돼있다. 삼성 타워팰리스 Ⅰ,Ⅱ차는 현재 입주가 끝난 상황. 마지막 Ⅲ차(아파트 1개동과 스포츠 센터)는 짓고 있는 중이며, 대림 아크로빌은 입주가 끝난 상황.
세대수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이 약 2천7백여 세대, 대림이 5백여 세대 등으로 삼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5배 정도나 많다.
건물의 외관과 내부를 얼핏 보아서는 삼성 타워팰리스나 대림 아크로빌이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이번에 두 아파트 주민들이 충돌하게 된 문제의 옥외 골프연습장은 현재 건설 중인 삼성 타워팰리스 Ⅲ차 단지내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 연습장은 지난 2001년 4월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골프연습장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Ⅲ차 단지내 7층 규모의 상가건물 옥상에 짓고 있다.
문제는 상가 옥상에 짓고 있는 이 골프연습장의 그물망 높이가 20층 건물에 버금갈 만큼 높다는 점. 이 그물망이 다 지어질 경우 인근 아파트의 상당수는 조망권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 삼성 타워팰리스 . 임준선 기자 | ||
대림측 주민들이 문제를 삼게 된 것은 골프 연습장이 들어서는 곳이 직접 혜택을 받는 삼성 타워팰리스 단지와는 떨어져 있고, 오히려 대림 아크로빌과 우성캐릭터빌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삼성이 짓고 있는 옥외 골프 연습장은 대림 아크로빌의 베란다에서 직접 내려다보이며, 우성 캐릭터빌 단지와는 30m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따라서 이들 주민들은 이 골프 연습장이 완공될 경우 소음이나 조명 등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자 삼성은 지난 2001년 공사기간 동안의 소음 등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보상을 결정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주축이 돼 우성 캐릭터빌에는 가구당 일정 금액을 보상금 차원에서 지급했고, 대림 아크로빌은 (우성 캐릭터빌보다) 거리가 조금 멀어 피해가 적다고 판단해 전체 아파트 차원에서 일정 수준을 보상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삼성물산과 합의를 했다는 대림 아크로빌의 입주자 대표는 1년 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이 아파트의 주민들은 나날이 올라가는 골프 연습장을 보며 서둘러 주민대표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 아크로빌 주민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아파트 맞은편에 대규모의 옥외 골프장이 들어서면 기본권을 침해받는다는 것.
대림 아크로빌 입주자 대표인 양창준 회장은 “삼성은 당초 스포츠센터를 짓는다는 약속을 위반하고, 그 자리에 옥외 골프 연습장을 짓기 시작했다”며 “향후 일조권, 조망권을 침해받는 것은 물론 옥외 골프 연습장으로부터의 소음과 조명시설로 인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주장했다.
▲ 주부들 중심으로 이뤄진 대림 아크로빌 주민들이 가두시위 를 벌이고 있다. | ||
현재 대림 아크로빌 주민들은 일조권 등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서울지법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더욱이 이 아파트 주민 4백여명은 올 초부터 삼성이 공사중인 골프연습장 앞에 모여 집단 시위를 벌이다가, 급기야는 땅주인인 삼성생명 본관 앞에서도 집단 시위에 나섰다.
실제로 지난 5월20일 삼성생명 본관에서 1백여m 떨어진 대한상공 회의소 앞에는 때아닌 4백여명의 ‘아줌마 부대’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부촌을 대표하는 이들 두 아파트의 주민들이 다투는 내막에는 삼성-대림 주민들의 자존심 싸움도 깔려 있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시각. 세대수에서는 삼성이 앞서지만, 이 지역을 먼저 차고 앉은 사람들은 대림, 우성 주민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이번 대립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집회 현장에서 만난 대림 아크로빌 입주민 이 아무개씨(52)는 “베란다 바로 앞에 거대 규모의 옥외 골프 연습장이 생긴다고 생각해보라”며 “골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 김 아무개씨(61)는 “지금도 교통 대란인데, 연습장이 지어져 외부인 회원까지 받아들이면 도곡동 지역은 말 그대로 ‘교통 지옥’이 될텐데 삼성에서 책임을 질 것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재 대림 아크로빌 주민들은 인근인 삼성 타워팰리스의 지하에 있는 신세계의 ‘스타슈퍼’ 등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삼성제품 불매 운동까지 벌일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