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부부송: 115x73.5cm 한지에 수묵 점묘 채색 2018
점을 이어서 찍으면 선이 된다. 선을 연결하면 공간이 되며 사물의 모양도 그려낼 수도 있다. 그림의 시작이다. 따라서 점은 회화의 가장 바탕이 되는 요소다.
점에 대한 미술가들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를 이론화하거나 미학의 관점으로 끌어 올린 것은 19세기 들어서부터다. 20세기 초 추상화가 나오면서 점은 그 자체로 지위를 갖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 회화에서 점은 중심 요소로 격상됐다. 점은 잘만 찍으면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그림이 됐다. 이우환의 점 회화가 이를 보여준다.
점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회화의 중심 요소로 끌어낸 것은 19세기 말 신인상주의였다. 당시 유행했던 ‘빛의 입자설’을 회화로 해석한 방법이었다.
요절한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가 이 기법을 창안한 천재다. 수많은 색점을 찍어 형체를 만들어내는 이 방법을 그는 광학적 회화라 불렀다. 형태를 그리거나 색채를 칠하는 것이 아니라 순색의 작은 색점을 화면에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찍는 것이었다. 색맹 검사표처럼 보이는 쇠라의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형체, 색감, 명암 등이 나타난다. 이를 미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이 ‘점묘법’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신인상주의로 서양미술사에 입적하게 된다.
별밤송-백조자리: 74x91cm 한지에 수묵 점묘 채색 2019
쇠라의 이런 혁신적인 회화 기법은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당시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회화 방법으로 유행했다. 이후 점묘법은 국제적 회화 기법으로 알려졌고, 우리나라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이대원 작품이 대표적이다.
신인상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상주의 미술 이론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회화라고 생각했지만, 쇠라는 그런 순간의 이미지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회화라고 믿은 것이다. 그 믿음을 점으로 담아낸 셈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그림에는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지된 기념물 같은 모습이다. 이를 위해 쇠라는 이집트 벽화의 견고한 형태와 기하학적 구성을 연구해 자신의 작업에 도입했던 것이다.
박재만의 회화도 쇠라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점묘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 회화를 전공했고, 동양화 방법으로 작업을 한다. 소재나 주제도 전통 회화 범주에서 해결한다. 소나무와 별을 주로 그린다. 점묘법으로 그린 산수화인 셈이다.
제주송: 77.5x67.5cm 한지에 수묵 점묘 채색 2018
그런데 점묘법 회화의 느낌이 없다. 수많은 색점이 보이는 데도 그렇다. 점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를 다르게 해석한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그가 찍는 점은 전통 회화에서 이미 있었던 ‘미점법’을 따른다. 미점법은 신인상주의의 점묘법보다 800여 년 전에 동양 회화의 중요한 방법으로 이미 확립됐다. 11세기 송나라 대표화가 미불이 만들어낸 방법이라 해서 ‘미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박재만은 “우리가 갖고 있었던 방법을 연구해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려 보려는 것”이 자신이 회화라고 말한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