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국내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의 대표이사인 K씨의 불만이다. 그는 유무선 통신 부가서비스용 관리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나 국내시장에서 외국계 기업들에게 밀려나면서 중국과 동남아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상용화하긴 했지만 효용성을 검증할 준거(레퍼런스)사이트를 발굴하지 못해 해외시장에서 고객을 설득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 시장은 질과 속도면에서 세계 최고다. 1초당 14만4천 바이트(Kbps)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휴대폰이 대중화됐고 1초당 2백만 바이트(Mbps)를 주고받을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도 소비자들의 손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기업 내부의 정보관리영역에 머물렀던 데이터(data)들도 인터넷을 통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올 태세다. 이른바 기업용 컴퓨팅의 웹서비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같은 선진 통신 및 컴퓨팅 환경이 우리나라를 외국계 기업들의 ‘첨단 IT솔루션 실험장(테스트베드)’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테스트하고 일본, 중국으로 보급한 후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외국계 기업들에게 텃밭(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IT 시장경쟁력을 좌우하는 ‘데이터 관리능력’의 차이 때문. 우선 통신, 컴퓨팅 산업을 포괄하는 경쟁력의 뿌리인 데이터베이스(DB)와 DB관리시스템(DBMS) 부문에서 오라클,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2천5백억원대로 추산되는 국내 DB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한다.
DB와 DBMS를 바탕으로 전사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 등 기업 정보화의 주춧돌이 세워지고 통화연결음(컬러링), 국제통화연결(로밍), 메시징 등의 서비스가 개발·보급·관리되는 점을 감안할 때,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IT시장의 뿌리와 줄기를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DB 및 DBMS 시장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외국계 기업들의 과점현상이 개선될 여지가 없음이 더욱 뚜렷해진다. 오라클은 가장 유행하는 기업용 정보시스템 체계인 유닉스 기반의 컴퓨팅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며 전체 DBMS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다.
또 IBM은 초기의 기업용 정보시스템인 메인프레임 기반 하드웨로로부터 유닉스 계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장공략을 펼치며 20% 이상을 점유하며 마이크로소프트도 경량형 DBMS를 내세워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시장점유율 20%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3사는 지난 95년 이후로 전문가인증(CP)제도를 마련하고 자사의 솔루션(DB 및 관리프로그램)을 보다 잘 관리할 인력들을 양산, 누적 CP인력 수가 각각 10만 명을 넘어섰다. 더구나 우리 정부에서는 CP 교육 수료비용의 50%를 사후 지원하고 있어 외국계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날로 강화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IT의 근간인 DB 및 DBMS 시장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해 온 외국계 기업들의 욕심이 충족된 것은 아니다.
오라클은 지난 5년여간 전사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Management) 고객을 늘리기 위해 남다른 공을 들이면서 포스코와 같은 초대형 고객사를 다수 확보했다. 이 회사는 임직원 수 2만 명을 넘어서는 포스코의 ERP 프로젝트를 국내외 ERP 영업의 준거사이트로 활용하면서 기업용 정보관리도구분야에서 승승장구, ERP 세계 1위인 SAP를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최근에는 세계 3위의 ERP 기업인 피플소프트를 인수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며 시장공략의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지난 95년 삼성전자를 국내 첫 고객으로 확보한 후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ERP를 공급하면서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온 SAP도 오라클의 공세에 대응, 국내 중견·중소기업으로 영업 타깃을 돌려 시장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태세다. SAP는 지난해부터 국내 중견·중소비즈니스(SMB·Small & Medium Business)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여 개 협력사를 모집하는 등 ERP 수요확산을 이끌고 있다.
오라클과 SAP의 ERP 고객확산경쟁은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을 과점한 이후에 중견·중소기업들로 공략대상을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종속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두 회사는 각각 ‘E비즈니스 스윗(오라클)’과 ‘마이SAP닷컴(SAP)’으로 대변되는 차세대 IT 서비스 전략을 한국시장에 이식하기 위해 마케팅을 집중, 21세기에도 한국의 IT 시장을 계속 과점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세계에서 가장 대중화된 PC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인 ‘윈도’를 전면에 내세워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 회사는 지난 1년여간 기업용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매 분기별로 5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KTF에 수억달러를 투자하고 삼성전자와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포괄적인 제휴를 체결하는 등 세계 최고의 IT 테스트베드(한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에서 무려 1백68개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협력사(파트너)를 확정, 될성부른 품목을 찾고 있다.
구체적으로 ▲코인텍, 대림I&S 등 ERP 분야 32개사 ▲더존디지털웨어, 올랩컨설팅 등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및 고객관계관리(CRM) 분야 17개사 ▲롯데정보통신, 가온아이 등 지식관리(Knowledge Management) 및 그룹웨어 분야 13개사 ▲디날리아이티, 브리지텍 등 모바일 분야 12개사 ▲코어체인지 등 기업포털(Enterprise Portal) 분야 6개사 ▲신화정보시스템, 인젠 등 인프라 및 보안 분야 11개사 ▲에스브이엘, 네오플러스 등 전자상거래 분야 5개사 등을 선정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겠다는 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이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는 개인 컴퓨팅(PC) 영역의 맹주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밖에 휴렛팩커드, EMC컴퓨터시스템즈, 후지쯔, 히타치 등 하드웨어 분야의 맹주들이 국내 전산시스템 분야에서 다져온 시장입지를 발판으로 삼아 소프트웨어 분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컴퓨터어쏘시에이트, NCR테라데이타, i2테크놀러지, EXE테크놀러지 등 소프트웨어 분야의 외국계 기업들도 정보자산관리, 데이터웨어하우징(Data Warehousing), 공급망관리(SCM) 등의 영역에서 쉴새없이 한국 고객들에게 ‘IT 코뚜레’를 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은용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