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하나로통신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5천억원의 유상증자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에 대해 하나로통신의 3대주주인 SK텔레콤이 반대하고 나선 것.
지난 22일 SK텔레콤은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를 재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이는 하나로통신이 자체적으로 추진해오던 외자유치 방안을 부결시키고 기존 주주들의 유상증자 방안을 추진한 LG쪽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LG는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인 정홍식 사장을 영입하고 하나로통신 인수를 통해 LG텔레콤과 연계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유선 통신, 무선 통신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이에 비해 SK는 지난 2001년 유선 초고속통신 서비스를 하던 싱크로드 사업을 포기한 이래 유선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물론 무선시장의 절대강자인 SK텔레콤의 유선시장 진출을 정부가 불허하는 탓도 컸다. 때문에 SK그룹은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초고속통신서비스 기간망을 갖고 있는 한전 자회사인 파워콤의 1차 매각에 참여해 지분인수를 하는데 성공했지만 정부쪽의 견제 분위기에 지분 30%를 매각한 2차 입찰을 포기, 결국 파워콤은 LG에 넘어갔다.
무선에만 국한시킬 경우 LG의 통신사업 경쟁력은 SK텔레콤이나 KTF에 비해 약하다. 하지만 LG가 인수를 추진중인 하나로통신이나 두루넷, 이미 인수한 온세통신 등을 엮으면 유선 초고속통신 서비스에서 LG의 통신사업부는 KT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 이를 LG텔레콤의 019 무선 통신 서비스와 결합시키면 얘기가 달라진다.
통신업계에선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선에만 발이 묶여 있던 SK로선 이런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것. 때문에 SK의 하나로통신 증자 반대, 외자 유치 재추진 선언이 더욱 주목받는 것이다. SK가 LG의 유상증자안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비경제적 선택’이라는 점 때문이다.
애초 하나로통신은 주당 3천1백원 선에서 외자유치를 추진했다. 하지만 LG의 유상증자안은 주당 2천5백∼3천1백원 선. LG는 애초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100% 실권이 나오더라도 LG가 다 인수하겠다”며 유상증자안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LG 입장에선 유상증자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 떨어져 나갈 경우 실권주를 인수해 자연스레 확실한 1대 주주가 되는 면도 있다. 반면 SK의 입장에선 앞날도 불투명하고, 인수할 회사도 아닌 하나로통신에 추가 투자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로서는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인 것.
또 유상증자에 실권할 경우 현재 5.41%대인 SK의 지분은 5%대 이하로 떨어져 이사추천권마저 상실하게 된다. LG의 유상증자안은 이래저래 SK를 무력화시키는 카드인 셈. 따라서 SK로선 당연히 반대할 만하다.
때문에 SK는 외자유치 재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처음부터 LG의 하나로통신 인수나 통신사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능력에 회의를 보여왔던 SK로선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LG가 삼성이나 SK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금이 없기 때문.
SK의 외자유치 재추진안이 파괴력을 갖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로통신의 2대 주주인 삼성그룹도 같은 입장이란 점. 삼성의 경우 그룹의 주력사업이 통신사업이 아닌 만큼 LG텔레콤의 경쟁력 강화로 인한 시장변화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주주가치 희석으로 하나로통신 지분의 재산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기에 유상증자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에선 LG의 하나로통신 인수를 의심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하나로통신의 무시못할 2·3대 주주인 삼성과 SK의 이해를 LG가 어떻게 맞춰 줄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선 SK가 끝까지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관련 주무부서인 정통부의 진대제 장관이 최근 이례적으로 하나로통신의 경영정상화에 대해 LG가 나서줄 것을 촉구했기 때문. 진 장관은 지난 15일 정통부를 방문한 정홍식 (주)LG 통신총괄 사장과 강유식 LG 부회장을 만나 “LG가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안을 제시해 이사회에서 채택된 만큼 주총에서 통과되면 유상증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현역 장관이 특정기업의 경영 사항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나, 이것이 언론에 그대로 ‘중계’된 점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이를 정통부가 통신 3강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LG의 통신사업 구조조정안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결국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안에 반대하고 있는 삼성과 SK를 향한 메시지인 셈.
게다가 정통부는 최근 KT의 유선사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운용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경쟁력 상실로 지리멸렬한 상황에 몰린 유무선 후발 통신사업자들을 LG로 통합시켜 ‘통신 3강’ 구도를 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무선 통합 통신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는 KT-KTF 연합군과 LG텔레콤-하나로통신 연합군에 무선통신 하나만으로 맞서야 하는 SK가 LG의 이익을 위해 순순히 LG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 LG의 유상증자안이 임시주총을 통과하기 위해선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삼성과 SK가 모두 반대할 경우 LG의 유상증자안은 통과되기 힘들다.
현재 하나로통신의 최대주주인 LG의 보유지분은 13.01%. 2대 주주인 삼성전자(8.43%)와 3대 주주인 SK텔레콤(5.41%)의 보유지분은 총 13.84%로 LG측 지분보다 많다. 게다가 지분율 4%대인 대우증권도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의 유상증자안은 액면가(5천원) 이하로 신주를 발행하기 때문에 오는 8월5일 개최되는 임시주총에서 특별결의를 거쳐 참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전체주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승인을 얻어낼 수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SK와 LG의 격돌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