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식 부회장 누나 명의로 ‘인건비 허위 지급’…연이은 비리·실적 악화 3세 승계 속도 잃어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왼쪽)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 사진=연합뉴스
#조현식 부회장, 누나에게 억대 연봉 지급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양래 회장의 두 아들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대표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이상주)은 지난 8일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조현범 대표와 조현식 부회장, 협력사 대표 이 아무개 씨의 1차 공판을 진행했다. 앞서 조현범 대표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대가로 수억 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 등으로 지난해 11월 구속됐다.
이날 공판에서 조현식 부회장에 대한 새로운 혐의가 공개됐다. 검찰은 “2014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그룹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누나 조희원 씨가 미국 법인에 근무하는 것처럼 가장해 인건비 1억 2000만 원가량을 허위로 지급했다”며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현식 부회장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다”면서도 “자세한 의견은 다음 기일에 말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원 씨 인건비로 허위 지급된 1억여 원은 조현식 부회장에게 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조현식 부회장이 누나 조희원 씨의 명의로 인건비를 허위 지급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조양래 회장의 두 딸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조양래 회장은 슬하에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장녀 조희경 씨는 현재 1990년 설립된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차녀인 조희원 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한 후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그룹 내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보유한 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차녀인 조희원 씨는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10.82%를 갖고 있다. 부친 조양래 회장(23.59%), 두 동생 조현식 부회장(19.32%)과 조현범 대표(19.31%)에 이은 4대 주주다. 지분 가치는 지난 28일 종가 기준(1만 3350원) 1344억 원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신양관광개발 지분도 각각 0.71%와 5.88% 보유하고 있다.
조희경 씨 역시 그룹 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 격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조희경 씨 지분은 0.83%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분을 2.72%를 갖고 있다. 이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30.67%), 국민연금(8.09%), 조양래 회장(5.67%)에 이어 네 번째로 지분이 많은 것이다.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대표, 조희원 씨는 각각 0.65%, 2.07%, 0.71%에 그친다. 또한 신양관광개발 지분 17.35%, 엠프론티어 지분 12%도 보유 중이다. 이들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성장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차남의 공백 속에서 조현식 부회장의 비리까지 확인되면서 승계 과정은 속도를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은 과도기적인 성격이 짙다. 조양래 회장이 지난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현식 부회장이 그룹 지주사를, 조현범 대표는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를 이끄는 ‘투톱 체제’로 바뀌었다. 차남의 구속에 이어 장남마저 처벌을 받는다면 경영권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지분을 갖고 있는 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
이와 관련 법조계 한 관계자는 “조현식 부회장이 법정에서 바로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것은 형량을 가볍게 받고 빨리 끝내 경영 승계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는 계산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룹 내부적으로도 3세 경영인이 잇따른 비리로 법정에 서면서 비상경영 상태에 돌입했다. 새로운 사업 추진 및 공격적 인수합병은 중단하고, 주력인 타이어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실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성장전략실(M&A 담당부서)을 전략혁신실에 편입하는 등 신사업 관련 부서를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마케팅 부문과 기획 부문을 합쳐, 타이어 제조 및 판매 관련 부서를 강화했다고 한다.
경영실적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핵심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2016년 영업이익 1조 1032억 원을 기록했지만 2017년 7934억 원, 2018년 7027억 원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4267억 원으로, 업계에서는 5000억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적이 부진하면서 경영권 승계 논의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 오너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시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