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변경 두고 ‘브랜드 사용료 올리기’ 의심…임시주총서 감사위원 선임 충돌 가능성도
서울 강남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본사. 박정훈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배터리 계열사 한국아트라스BX가 최근 사명 변경에 이어 홈페이지 개편 등 리뉴얼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의 편의성을 위해 콘텐츠와 비주얼을 강조,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개편은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는 등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사장은 사명 변경과 관련해 “한국 배터리 산업의 대표기업인 한국아트라스BX는 이번 사명 변경으로 ‘한국’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를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현범 사장은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차남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사위다.
세계 7위(매출 기준)이자 국내 1위 타이어 기업인 한국타이어는 그룹 및 주요 계열사의 사명을 바꾸는 등 오너 3세 경영을 위한 대대적인 변화에 나섰다. 한국타이어그룹은 지난 5월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바꾸었다. 이번 사명 변경은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아들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동시에 오너 3세 경영 세대교체도 진행했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기존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등기임원직을 내려놨다. 동시에 조현식 부회장은 등기임원 임기를 3년 연장했다. 이어 조현범 사장은 새로 등기임원에 올랐다.
한국타이어 전신인 조선다이야공업이 설립된 지 78년 만에 그룹명에 ‘타이어’라는 단어를 빼고 ‘테크놀로지’를 넣은 것은 비타이어 사업 비중을 높여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실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타이어 외 사업의 확장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아트라스BX가 있다. 한국아트라스BX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를 포함해 GM, 폭스바겐, 볼보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에 자동차용 축전지를 납품하는 국내 점유율 2위 기업이다. 특히 자동차 내 IT기기 탑재가 늘면서 자동차 전장부품 중 축전지의 중요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아트라스BX는 올해 상반기 매출 320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66억 원, 당기순이익 297억 원으로 각각 29.8%과 27.74% 늘었다. 반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는 올해 상반기 매출 3조 3830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2.07%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463억 원과 218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33.44%와 32.61% 감소했다.
한국아트라스BX가 그룹 내 알짜 계열사로 구분되면서 경영진과 소액주주 사이에 자진상장폐지를 둔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한국아트라스BX는 2016년부터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상폐를 추진했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기업은 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을 합쳐 95%를 확보하면 상장폐지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사측에서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5만 원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저가’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주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아트라스BX 상폐 후 합병을 통해 현금을 확보, 신사업을 확장해 경영권 승계구도를 다지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법정 분쟁 등 첨예한 다툼을 벌이던 양측은 최근 다소 잠잠해진 분위기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4월 소액주주 등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상장기업의 자진상폐 때 자사주는 최대주주 등의 지분 산정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을 개정한 것. 현재 한국아트라스BX의 최대주주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지분율은 31.13%에 불과해 자진상폐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자진상폐를 계속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등과 소액주주들은 이번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사명 변경 등 혁신을 두고 지주사가 계열사의 자금을 빼돌리려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대부분 계열사 사명에 기업 브랜드인 ‘한국(Hankook)’을 넣었다. 타이어용 몰드 등 금형제조 전문기업인 엠케이테크놀로지 사명은 ‘한국프리시전웍스’로, 정보기술(IT)서비스와 물류 엔지니어링 기업인 엠프론티어는 ‘한국네트웍스’, 타이어 제조 핵심 설비 전문기업인 대화산기는 ‘한국엔지니어링웍스’로 변경했다. 수입차 부품과 정비서비스 등을 하는 에이치케이오토모티브는 ‘한국카앤라이프’로 바꿨다. 아트라스BX가 ‘한국아트라스BX’로 사명이 변경한 것 역시 이 일환이다. 이에 대해 그룹 측은 브랜드 가치 제고를 통한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액주주 측은 “그동안은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아트라스BX에 브랜드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며 “이번에 ‘한국’ 브랜드를 붙이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계열사에 브랜드 사용 수수료를 많이 떼어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브랜드 사용 수수료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나중에 상황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아트라스BX 홈페이지 사진 캡처.
한국아트라스BX 경영진과 소액주주들은 오는 11월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또 한 번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임시주총 안건에는 이 아무개 씨와 주 아무개 씨에 대한 감사위원 선임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3차례 부결된 바 있는 인물들이다. 이사회와 경영진에서 또 다시 선임하려 안건을 4번째 올린 것이다.
밸류파트너스 측은 “경영진과 대주주의 활동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할 감사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사회와 경영진이 계속해서 회사 측 의사를 반영할 우려가 있는 감사위원을 선임하려 한다”며 “이미 몇 차례 부결된 바 있는 감사위원들을 다시 선임하겠다고 안건에 올리는 것은 글로벌 자본시장 시각으로 보면 조롱거리이자 주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여러 사항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