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과 첫 호흡 “배려심 넘치는 선배님”…데뷔 10년 “해보지 않은 캐릭터 끌려요”
배우 신현빈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지푸라기)에서 빚으로 인해 인생의 벼랑까지 몰린 미란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짧은 분량, 긴 여운
“미란이라는 캐릭터는 여러 가지로 감정의 증폭이 큰 캐릭터죠.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너무 튀게 느껴져서도 안 될 것 같고, 다른 캐릭터에 가려져서도 안 되는 그 중심을 잡는 게 중요했어요. 영화에서 보면 미란의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일상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미란이가 그 상황 속에서 선택한 것이 옳다곤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지푸라기’ 속 미란은 사기로 생긴 빚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주부다. 빚을 진 아내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남편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폭력을 당해 오던 중, ‘한탕’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변해가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장 밑바닥의 어둠을 보면서도 위험한 기회에 내리쬐는 희망의 빛을 놓지 않는 그의 양면은 짧은 출연 분량임에도 마지막까지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변해가는 미란의 행위가 이해받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남편이 미란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척도가 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푸라기’에서 나오는 미란의 남편은 ‘나쁜 남편’이라는, 대중이 많이 봐 온 캐릭터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초반에 남편이 미란을 폭행하는 장면이 길지 않음에도 미란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관객들에게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이해시킬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사실 (폭행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감독님도 그렇고 김준환 배우도 그렇고 저희끼리 고민이 참 많았는데, 촬영을 마치고 현장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었거든요(웃음). 잘 나온 신인 것 같아요. 김준환 배우와 아는 사이다 보니 되게 편하게 잘 촬영했어요(웃음).”
영화 ‘지푸라기’에서 신현빈은 상대역인 전도연과 첫 호흡을 맞췄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극중 미란은 연희(전도연 분)와 관계성으로도 눈길을 끈다. 미란의 지옥 같은 삶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그는 미란의 두 번째 구원자이기도 하다. 강렬하면서도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두 여성의 합은 영화 속 한 챕터 안에서 시작되고 끝날 뿐이지만, 그 이상의 진한 여운을 남긴다.
“미란은 다른 캐릭터에 대해서는 감정의 퍼센티지(백분율)가 신마다 달라지지만 연희에 한해서는 전혀 의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술 취한 손님을 맥주병으로 때리는 신도 무섭게 받아들이지 않고 멋있고 고마웠을 거예요. 그렇게 신뢰만 가지고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감정이(웃음). 그런데 실제로 연희는 미란에게 거짓말을 한 건 없죠. 오로지 진실만 말하긴 했는데 그게 그렇게(웃음)… 한편으로는 그 마지막 장면은 미란에게도 그렇고 연희에게도 그렇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후반부까지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같은 거죠.”
작품을 벗어나 동료 배우로서 전도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려심이 넘치는 배우”라는 칭찬을 몇 번이나 반복할 정도였다.
“선배님을 처음 뵌 게 ‘변산’ 시사회에서였는데, 영화를 굉장히 잘 봐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참 즐거웠던 기억이 많네요. 아무래도 제가 연희와 많이 붙다 보니 촬영도 계속 함께 했는데 선배님이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정말 편하게 한 건 아니고 적당한 긴장감은 있었죠(웃음). 연희는 시나리오 상에선 굉장히 강한 캐릭터였는데, 실제 연기에서는 선배님이 나른하고 일상적인 말투로 캐릭터를 표현해서 글로 보는 것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무서운 면을 잘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그 일상적인 말투가 주는 공포가 배가 되거든요(웃음).”
#데뷔 10년의 다짐
‘지푸라기’에서도 그렇지만 신현빈은 영화에서 유독 박복한 캐릭터를 자주 맡는다는 인상이 있다. 영화 ‘공조’에서 그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 아내로 관객들의 탄식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지난해 개봉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와 올해 개봉한 영화 ‘클로젯’에서도 둘 다 어린 자녀를 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 역할을 맡았다. 특히 ‘클로젯’은 ‘PMC: 더 벙커’에 이어 하정우의 아내 역으로 분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현빈 자신도 이처럼 안타까운 캐릭터를 자주 맡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보진 못하지만 출연은 했다” 역할을 가리지 않는 배우 신현빈.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배역에 대한 바람이 소박한 만큼 그는 연기나 작품에 대해 과할 정도로 고집을 부리진 않는다고 했다. 2010년 영화 ‘방가? 방가!’로 스크린 데뷔와 동시에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을 차지한 신현빈은 올해로 꼭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앞으로의 배우 인생을 놓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할 시기이기도 하다. 해보지 않은 것, 도전해보고 싶은 것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지만 어느 하나를 집착하거나 욕심내지는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이야기다.
“저는 항상 해보지 않은 역할에 끌려요. 비슷한 역이어도 다르게 보일 수 있거나 제가 다르게 하고 싶은 역할 말이에요. 딱히 어떤 장르나 특정한 캐릭터를 편식하는 취향은 아니거든요. 저 사실 귀신 나오는 영화 정말 못 봐요. 그런데 ‘클로젯’에 출연했잖아요(웃음). 뭔가 특정한 캐릭터나 성향을 원한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거고, 시나리오는 너무 좋은데 제가 원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하지 않겠다고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주어지는 시나리오에서 저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모두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