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던 레알 다시 맡아 ‘수비전략’으로 팀 재건…선수 시절 ‘챔피언 DNA’ 지도자로 이어져
지단은 이번 리가 우승으로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통산 10번째 트로피를 차지했다. 사진=레알 마드리드 페이스북
지단은 이미 선수 시절부터 자신이 따낼 수 있는 모든 우승컵을 거머쥔 인물이다. 지롱댕 보르도(프랑스)에서 활약하다 유벤투스(이탈리아)로 이적한 이후 본격적인 그의 ‘트로피 수집’이 시작됐다. 선수 시절 그가 들어올린 대회 우승컵만 13개다.
1990년대 최고 리그로 불리던 세리에A,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1인자’ 유벤투스 소속이었기에 리그 우승컵 획득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사이 지단은 국가대표로서 1998 프랑스월드컵, 유로 2000 등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과정에서도 단지 소속 선수 중 한 명이 아닌 당당한 주역이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홀로 2골을 책임지며 조국에 최초 우승컵을 안겼다.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1998), FIFA 올해의 선수(1998, 2000, 2003)도 그의 차지였다.
소속팀과 국가대표로서 모든 트로피를 손에 쥔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 당시 유벤투스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번번이 놓쳤다. 1997년과 1998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1999년에는 4강에서 멈췄다. 결국 지단은 ‘갈락티코 정책’을 펼치던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대 최고 이적료 기록(7750만 유로, 약 1080억 원)을 갈아치운 화려한 이적이었다.
지단은 이적 첫 해 자신의 숙원을 풀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것이다.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4강에서 최대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승리해 결승에 진출했다. 지단은 결승에서도 1-1 동점 상황서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왼발로 만들어냈다. 이는 아직까지도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 중 하나로 회자된다.
지단은 선수 시절 레알로 이적하고 나서야 그토록 원하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사진=UEFA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승승장구한 지도자 생활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고문, 디렉터 등으로 팀에 남았다. 2013-2014시즌부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선수 시절 스승이기도 한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를 보좌하며 구단의 숙원인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라 데시마(10회를 의미하는 스페인어)’를 달성했다.
이후 ‘감독 수업’을 위해 구단 2군팀 격인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을 맡은 그는 급박하게 1군 감독으로 호출됐다.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구단은 카스티야를 맡고 있던 지단을 끌어올린 것이다.
지단이 1군 감독 하마평에 오를 당시 의구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다. 선수로서는 위대했지만 지도자로서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스티야를 맡아 한때 성적을 내는 듯했지만 하부리그에서 최종 순위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단은 이 같은 의구심을 씻어내며 승승장구했다. 부임 직후부터 3시즌간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과거 유러피언컵에서 1992년 현재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3연속 우승이었다. 2연패조차 없던 역사를 3연패로 새로 쓴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 ‘혁명가’ 펩 과르디올라 등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또한 이 기간 지단은 자국 리그, 클럽월드컵 등에서도 우승을 맛봤다.
지단은 선수·감독뿐 아니라 코치로서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사진은 안첼로티 감독을 보좌하던 코치 시절. 사진=UEFA 챔피언스리그 페이스북
역사적인 챔피언스리그 3연패 이후 지단은 스스로 레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일각에서는 ‘역시 지단다운 영리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지단의 퇴단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팀의 핵심 선수의 이적을 사전에 감지하고 최고의 위치에서 미리 작별을 했다는 해석이었다.
실제 1시즌에 50골가량을 책임지던 호날두가 빠지자 팀은 곤두박질쳤다. ‘레알은 지단의 팀이 아니라 호날두의 팀이었나’라는 회의적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지단의 후임 훌렌 로페테기는 부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산티아고 솔라리가 소방수로 투입됐지만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4강 탈락,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냈다.
세계 최고의 팀 레알이 심각하게 흔들리던 시기, 지단이 귀환했다. 2018-2019시즌 말미에 돌아온 그는 특별하게 팀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인상을 줬다. 새로운 선수들이 영입된 2019-2020시즌 초반 역시 팀이 흔들렸다. 리그에서 번번이 승점을 놓쳤고 챔피언스리그 조별라운드에서는 파리생제르망을 상대로 0-3 충격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또 다시 지단을 향한 물음표가 나왔다. ‘호날두 없이는 안 된다. 전술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지단은 챔스 3연패를 하던 시절에도 전술 트렌드를 이끄는 과르디올라 등과 비교해 전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지단은 반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유망주로만 평가받던 페데리코 발데르데(1998년생)를 적극 활용하며 팀 내 문제들을 개선해나갔고 2019년 10월 말부터 2020년 2월 초까지 모든 대회를 통틀어 21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멈췄다가 재개된 이후로는 더욱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3~4일 간격으로 리그 경기가 빡빡하게 치러지는 중에도 10연승 행진을 거두며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극도로 흔들리던 팀을 1년 만에 스페인 정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2019-2020시즌 스페인 챔피언 레알은 과거 빠른 역습과 막강한 공격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모습이 아니었다. 호날두가 없고 가레스 베일, 에당 아자르와 같은 공격 자원들이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이에 과거와 같은 팀컬러를 고수하지 않고 수비를 앞세워 승리를 따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1년 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는 34경기에서 18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25년 만의 기록을 세웠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지단을 향해 ‘팀 사정에 맞는 전략 전술을 활용해 결과를 낸다’는 찬사가 뒤따랐다.
고비마다 ‘챔피언 DNA’를 발휘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낸 지단은 또 하나의 시험대를 마주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된 챔피언스리그 일정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는 8월 8일 16강 2차전을 치르기 위해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을 떠난다. 지난 2월 열린 1차전에서는 1-2로 무릎을 꿇은 바 있다. 또 하나의 우승컵을 거머쥔 지단이 어떤 반전을 보여줄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