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보험살인사건 “거짓말 했어요” 핵심 증인인 막내딸 뒤늦은 고백…박준영 변호사가 재심 맡아
멀리서 전조등이 보였다. 두 사람을 태운 화물차였다. 길을 따라 곧장 직진해오던 차가 저수지를 앞두고 서서히 중앙선을 넘었다. 도로를 벗어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수풀에 세워진 표지판과 철망을 차례로 치고 지나쳤다. 그리곤 그대로 수심 6m 저수지에 추락했다.
가라앉기 시작한 화물차 옆에서 한 남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급히 헤엄을 쳐 다시 도로변으로 나왔지만 함께 있던 다른 한 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화물차가 수면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뭍으로 올라온 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한 이후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몸엔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살아남은 남자와 숨진 채 발견된 다른 한 명, 둘은 부부다. 운전을 했던 남편 장동오 씨만 가라앉는 차에서 빠져나왔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 김영선 씨(가명)는 탈출하지 못했다. 2003년 7월 9일 밤 8시 39분께, 전남 진도군 의신면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에서 발생한 일이다.
화물차가 추락한 지점. 사진=수사기록
경찰은 사고 직후부터 운전을 했던 남편 장 씨를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졸음운전을 했고 저수지에 추락해 물이 급속도로 차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옆자리에서 먼저 잠들어 있던 아내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걸 알게 된 건 그가 헤엄을 쳐 뭍으로 나온 이후라고 했다.
운전 부주의로 인한 비극으로 보였지만, 경찰은 장 씨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입한 보험 내역을 확인한 이후부터다. 장 씨는 사고 발생 10개월 전인 2002년 9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여러 건의 보험에 새로 가입했다. 운전면허가 없어 운전을 하지 못했던 아내 김혜선 씨가 피보험자였다. 김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경우 보험 수익자를 장 씨로 지정한 보험도 일부 발견됐다. 저수지 추락 사고로 장 씨가 수령할 수 있는 보험금 액수는 수억 원에 달했다. 보험 관련 구체적 내용은 추후 별도 보도 예정이다.
“아버지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낸 것 같습니다.”
경찰과 보험사는 물론, 가족들마저도 보험금을 노린 사건으로 추정하고 장 씨를 의심했다. 경찰로부터 수사 내용을 들은 장 씨의 3남매 자녀들은 과거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다툰 적도 있고,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거칠게 행동했으며, 어려운 경제 형편에도 보험 가입을 과하게 했다며 고의사고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저수지에 추락한 화물차를 인양하는 장면. 사진=수사기록
사건이 검찰에 넘겨진 이후부터 장 씨에 대한 의심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앞서 경찰은 장 씨가 고의로 살해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해 교통사고특례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수사했지만, 검찰은 장 씨를 처음 불러 조사한 날 곧바로 그를 긴급체포한 뒤 ‘살인’에 혐의점을 두고 추궁해 나갔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2004년 9월의 일이다.
여전히 장 씨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다. 다만 검찰은 경찰이 조사한 보험 가입 내역과 함께 숨진 아내 김 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 결과와 현장에서 발견된 약봉지 등을 앞세웠다. 장 씨가 범행 전 미리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였고 고의로 사고를 낸 뒤에는 물속에서 다시 아내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눌러 숨지게 한 뒤 혼자 탈출했다는 게 당시 검찰의 판단이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다는 장 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 검찰은 물론 법원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아버지를 의심했던 3남매 자녀들은 법원에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검찰은 장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심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을 거쳐 사고 발생 2년 2개월 뒤인 2005년 9월 28일, 대법원 상고기각을 끝으로 장 씨의 형이 확정됐다. 다음은 1심 판결문 내용이다.
“피고인(장 씨)의 이 사건 범행은, 범행일 훨씬 이전부터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등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보험금을 사취할 의도를 갖고 있다가…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피해자에게 속임수로 복용하도록 한 다음 차량에 태우고 가다가 범행장소에 이르러 고의로 차량을 저수지 물 속에 빠뜨려 자신은 헤엄쳐 나와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익사하도록 하여 살해한 것으로서(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전에 저수지에 차량이 추락할 경우 자신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충격 시 자동차 앞 유리가 이탈되도록 미리 조작을 해두었고, 피해자가 차량 추락 직후 이 사건 차량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자 피고인이 물리력을 가하여 피해자를 제압하여 익사하도록 했다는 의심마저 든다) 범행의 주된 동기가 지극히 저급한 보험금 사취에 있는 데다가, 거액의 보험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처를 보험금 사취의 수단으로 삼아 살해하기까지 한 점 등… 피해자와 친족들, 특히 자녀들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 등을 고려할 때 그 죄질이나 정상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질적이기 그지없고, 피고인이 반성하고 참회하기는커녕 범행을 전면 부인할 뿐만 아니라 변명에만 급급한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바, 피고인의 범행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킴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
17년이 흘렀다. 반성과 사죄를 했어야 할 시간이다. 무기수 장 씨는 죄를 인정하고 있을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나는 결코 부인을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누명을 꼭 벗겨주세요. 억울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부인을 따라 죽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2009년 7월 3일 장 씨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장 씨는 2009년과 2010년, 2013년 변호인 도움 없이 홀로 세 차례 재심을 청구했다.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해 모두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당시 그가 자필로 빼곡이 작성한 재심 청구서와 청구 이후 쓴 탄원서 등을 모두 합치면 A4용지 900여 쪽에 달한다.
2009년 장 씨가 법원에 제출한 재심 청구서. 사진=수사기록
사건 발생 직후부터 17년 동안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들어주는 사람도 받아주는 기관도 없었지만 줄곧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2017년 처음으로 그의 말에 귀기울인 사람이 나타났다. 충남 서산경찰서 소속 전우상 경감이다. 현직 경찰관인 그는 오래 알고 지내던 장 씨의 동생으로부터 뒤늦게 사건 이야기를 듣고 3년에 걸쳐 직접 재판 기록을 분석하고,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사건을 다시 추적했다.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한 전 경감이 내린 결론은 장 씨가 17년 동안 해온 주장과 같다.
“그때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사고 발생 전까지 장 씨 부부 곁에 있었던 막내딸은 최근 뒤늦은 고백을 했다. 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냈다며 수사기관에 진술했던 내용들이 모두 과장됐거나 거짓이었다고 말한다.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 했던 증언도 같은 이유로 위증이었다고 말한다. 막내딸은 작은아버지(장 씨 동생)의 소개로 전 경감과 만난 뒤, 3년 동안 사건을 재추적하는 과정에 함께했다. 그렇게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한 내용을 종합해 본 뒤에야 사실을 고백할 용기가 났다고 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했다는 법원 판결문, 그리고 17년 동안 무죄를 주장하는 무기수-사건을 다시 추적한 현직 경찰관-막내딸.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일까.
“사건이 아닌 사고로 봐야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 중에서 장 씨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 증거는 단 한 개도 없다. 살인이라는 죄를 입증하기에는 부실한 수사가 아니었나 싶다.” (2020년 8월 18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인터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체의 모습과 부검 감정서로는 ‘익사’ 외에는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2020년 8월 19일 이호 전북대 의과대학 교수(법의학) 전화 인터뷰) |
일요신문은 지난 8월 초 1200쪽 분량의 장 씨 사건기록과 공판기록 전부를 입수해 분석했다. 사건 관계자들과 보험사 관계자, 법의학과 범죄심리학 전문가 등을 통해 자문을 구했다. 보험 관계자들과 최근 사건기록을 검토한 전문가들의 세부 분석 내용과 구체적 의견은 각각 별도로 보도할 예정이다.
“지금 다시 재판을 하면 과연 유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박준영 변호사)
형사사건 재심에서 수차례 무죄 선고를 이끌어 낸 박준영 변호사가 송정저수지 추락 사건의 재심을 맡았다. 사진=최준필 기자
장 씨는 재심을 다시 추진한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삼례 3인조, 약촌 오거리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 내고, 현재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이춘재 8차 사건 재심을 맡아 진행 중인 박준영 변호사가 함께한다. 재심에선 청구 과정에서 한 번 제출했던 증거는 다시 제출할 수 없다. 이미 3번의 재심을 청구했던 장 씨에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