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주)의 주주총회에서 2대 주주인 소버린을 누르고 경영권을 확보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2월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인해 구속됐다 풀려난 이후, 경영복귀와 관련해 조심스런 행보를 보였던 것이 사실. 그런 그가 이번 SK(주) 주총을 계기로 ‘그룹 지키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최 회장이 이번에 야심차게 내놓은 슬로건은 ‘뉴SK’다. 최 회장은 ‘뉴SK’를 위해 그동안 숨겨왔던 히든카드를 하나 둘씩 꺼내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히든카드’를 꺼내게 되기까지에는 그룹 내부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이 그룹 내부 관계자의 전언.
SK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최 회장은 회사 경영권이 흔들리면서 회사의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최 회장이 SK(주)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자금이 넉넉지 않은 데다, 오너가 주식매입에 나선다는 사회적 비판을 우려해 지분 매입 방안은 삭제시켰다는 것.
이렇게 되자 최 회장측은 SK(주)의 지분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시키면서 그룹을 뺏기지 않는 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그룹 안팎의 브레인들을 총동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통해 등장한 것이 이른바 최 회장의 3대 히든카드.
<1. 이사회 중심 경영>
최 회장측은 우선 긍정적 사회 여론 조성에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절차가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다.
SK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향후 SK그룹은 사내이사, 사외이사 등 이사회를 중심으로 경영을 할 것”이라며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도 지켜질 것”이라고 밝혔다. 겉으로는 ‘이사회 중심’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그룹 내부 관계자가 아닌 외부의 사외이사들을 잘 다독여 여론을 무마하겠다는 뜻.
이를 위해 SK그룹은 ‘이사회 사무국’이라는 새로운 기구까지 만들었다. SK그룹 본사가 있는 서린동 사옥 25층 한 개 층은 모두 사외이사들을 위한 공간.
SK그룹 관계자는 “본사 25층은 원래 최태원 회장의 방이 있었던 층이지만,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보다 자주 수렴하기 위해서 이들(사외이사) 7명의 사무실을 모두 만들기 위해 공사중”이라고 밝혔다.
그룹은 주총이 끝난 직후 본래 있던 최 회장의 방을 전부 트는 대대적 공사에 착수해, 현재 사외이사들을 위한 집무실과 원탁 회의실 등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의 사무실은 과거 손길승 SK텔레콤 회장이 사용하던 34층으로 옮겨갔다.
결국 SK그룹과 관련이 있으나, 발언권은 약했던 사외이사들을 위해 그룹의 문턱을 스스로 낮춤으로써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히든카드가 발동된 것이다.
또 하나 비장의 무기는 SK(주) 경영지원본부 산하에 있는 ‘CR전략실’. ‘CR전략실’은 기존에 흩어져있던 SK(주)의 기업IR, 홍보(PR), 법무팀을 합친 부서로 최 회장이 직접 지시해 생겨난 부서로 알려져 있다. 이 팀은 향후 최 회장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핵심부서다. 최 회장이 이 팀을 전격 출범시킨 데에는 지난해 그가 느꼈던 다양한 경험이 배경이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해 11월 곡절이 많았던 SK그룹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최태원 회장의 모습. | ||
과거 SK그룹이 정기인사 때마다 인사팀, 재무팀 등을 줄곧 강화시켜왔다. 이번에 재무팀 중 IR과 홍보(PR), 법무팀을 대폭 강화시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SK그룹 안팎의 시각. 이는 지난해 최태원 회장이 그룹 구성을 두고 무척 고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K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회사 재무팀을 통해 SK(주)의 2대주주인 소버린과 지속적으로 접촉 했으나, 이 같은 시도가 무산되면서 직접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부서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새로 생긴 ‘CR전략실’이라는 얘기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번에 새롭게 출범하는 ‘CR전략실’은 언론홍보부터 해외IR, 또 국내외 법적인 절차를 모두 하나로 묶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부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부서는 기존에 근무했던 직원들을 주축으로 부서 멤버를 확충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있으며 실장으로는 황규호 전무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 '올드SK’ 물갈이>
그런가 하면 최 회장은 ‘뉴SK’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이른바 ‘올드SK’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대거 물갈이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공교롭게도 ‘올드SK’로 분류된 사람들은 손길승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다.
이번 SK(주)와 SK텔레콤의 주총이 끝난 직후 손 회장의 파워 역시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일례로 과거 손 회장은 서린동 본사 사옥에 그룹 회장실과 SK텔레콤 회장실 등 2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 개편과 더불어 34층 그룹 회장실은 비운 상황.
손 회장이 쓰던 집무실은 현재 최태원 회장이 사용하고 있다. 손 회장 라인의 경영참모도 ‘뉴SK’라는 슬로건하에 모두 2선으로 물러났다. 황두열 SK(주) 부회장과 김창근 전 구조본 사장은 각각 SK 상임고문과 SK케미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SK그룹의 공식적 마우스 역할을 해온 이노종 SK기업문화실 전무의 경우 부사장으로 한 단계 승진했지만, 용인 SK아카데미 연수원장으로 발령이 나 사실상 2선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정작 자신을 반대하는 거대주주인 소버린에 맞설 직접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소버린측에서 일단 우리와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난감하다”며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않겠느냐”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