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운영·마약 관련 혐의 받아…“온라인상 정의구현? 보이는 것도 다 믿지는 말라”
최초 디지털 교도소가 등장했을 때 법조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사진=디지털 교도소 캡처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6월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씨의 신상을 공개하고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를 판결한 판사의 신상까지 밝히면서 화제가 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판하는 진보적 법조인들은 디지털교도소의 범죄인 신상공개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한 법조인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지지한다면 디지털교도소를 무작정 반대만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지금 방식의 디지털교도소는 허위사실 적시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문제”라며 판단이 쉽지 않음을 밝혔다.
디지털교도소에 관한 갑론을박은 이곳에서 억울하게 신상이 공개됐다고 주장한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디지털교도소장의 정체가 드러난 게 반전의 계기가 됐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디지털교도소의 정체를 추적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디지털교도소장이 ‘n번방’ 운영과 마약 관련 혐의로 이미 추적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디지털교도소가 피해자 구제를 위해 범죄자 신상을 공개한 게 아니라 그들 조직에 비협조적 인물의 신상을 공개하고 인격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디지털 교도소장이 N번방 운영자였음을 밝혔다. 사진=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디지털교도소장의 두 얼굴도 놀라운 일이지만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했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추적하면서 화제가 됐던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줬다. 2020년 4월 검찰은 박 대표를 음란사이트 운영 방조 혐의로 기소했고 7월 공갈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관련기사 잊힐 권리 수호? 알 권리 방해? 디지털 장의사 ‘두 얼굴’).
박 대표는 박사방을 추적했고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을 지워줬다고 주장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박 대표는 2018년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에 배너 광고료 600만 원을 건네면서 ‘삭제 업무를 독점하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은 박 대표가 해당 사이트에서 음란물이나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는 사실을 알고도 배너를 걸었다고 판단해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또한 박 대표는 온라인게시물 삭제대행업체를 운영 중이면서도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성착취물을 포함해 불법 동영상 100여 개를 저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온라인 기록 삭제 업무를 위한 영상물 수집 차원에서 해당 성착취물을 소지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소지한 성착취물 가운데는 고객의 의뢰를 받지 않은 영상물도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박 대표의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 소지 혐의 사건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이나 기부단체를 표방했던 사기단체 새희망씨앗 사건처럼 온라인에서 안타깝거나 훈훈했던 사연들이 알고 보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거나 과장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플루언서들의 조작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유튜브 채널 ‘주작감별사’의 운영자 전국진 씨는 “온라인은 개인이나 회사를 홍보하기 좋은 환경이고 실제로 홍보가 만연해 있다. 어떤 단체나 개인이 선의로 했을 법한 행동들은 대부분 그 주체들의 이익과 관련돼 있을 확률이 높다.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정보들은 항상 100%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의심하는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 씨는 “이제는 ‘보이는 것만 믿어라’는 말도 위험한 것 같다. ‘보이는 것도 다 믿지 말라’는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많이 씁쓸하다”라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