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천사표가 ‘여자메시’ 키웠다
▲ 지소연이 17일(한국시간) U-20 여자월드컵 가나전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동네 골목대장이었죠. 어릴 때도 인형보단 총이나 칼을 가지고 놀았으니까요.”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지소연은 어릴 때부터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니며 또래 남자 아이들을 호령하던 골목대장이었다. 긴 머리는 거추장스럽다며 짧은 커트머리만 고집했단다. 덕분에 동네 주민들은 지소연을 꽤 오랫동안 남자 아이로 착각했다고. 당시 오주중학교 축구부 사령탑이던 최인철 감독(현 U-20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 역시 이문초등학교 남자 축구부에서 공을 차던 지소연을 남자 아이로 오해해 축구부 가입 신청서를 건넸다. 김 씨는 딸을 ‘축구 선수로 키우리라’ 맘먹게 된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소연이가 종이 한 장을 팔랑거리며 들고 와선 대뜸 ‘축구 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처음엔 반대했죠. 그런데 그때 분식집 사장님이 여자축구 미래가 밝다며 한번 시켜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사장님 아들이 중학교 야구선수였거든요. 재능이 있다면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도 좋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니던 학원마다 한 달을 못 가던 딸이 축구부에 들어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공을 차는 모습을 보고 김 씨의 마음도 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축구선수로의 성장을 거듭하던 지소연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한 것이다. 평소 딸이 축구하는 점을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는 아내와 이런저런 다툼 끝에 결국 헤어짐을 선택하고 만다. 자신의 양손을 꼭 잡은 아들, 딸 외에 아무런 가진 것도 없이 쫓겨나고 만 김 씨는 눈앞이 컴컴했다. 그러나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핸드볼 선수로 활약하다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김 씨는 봉제공장에서 청바지를 만들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오랫동안 앉아서 일만 한 탓에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김 씨는 자궁암과 난소 제거 수술을 받은 데 이어 현재는 허리 디스크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다. 통증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디스크 치료를 위해 매주 무려 70여 차례의 주사를 맞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결국 두 달 전 일을 그만뒀다. 기초생활수급자 급여 30만 원 외엔 딸이 대회에 나가 받는 상금이 유일한 수입이다. 다행히 최인철, 이상엽(현 한양여대, 여자 축구 대표팀 감독) 감독 등 지소연의 재능을 아끼는 몇몇 지인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씨는 “최 감독님은 소연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주고 용돈도 주세요. 이 감독님은 본인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 생활비를 매달 입금해주십니다. 축구를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이 감독은 “오히려 이런 훌륭한 제자를 둔 내가 감사할 따름”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는 “소연이 같이 훌륭한 선수들이 어려움 없이 축구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선수 확보가 어려워 초등학교, 중학교 여자 축구부가 연이어 문 닫고 있는 실정이거든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 지소연 어머니 김애리 씨. 김 씨는 딸 소연 이가 “꼭 성공해 찜질방이 딸린 집을 지어 주겠다”고 늘 말했다고 전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일찍이 지소연의 재능을 발견한 최 감독은 오주중, 동산정보고에서 그의 실력을 일취월장케 했다. 대표팀에서도 지소연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최 감독은 “어린 선수답지 않게 기술이 좋고 상황인지능력이 뛰어나 눈에 띄었어요. ‘축구에 눈을 떴다’고 말할 정도로 시야가 넓고 테크닉이 대단합니다. 골 결정력은 물론 어시스트 능력까지 갖췄어요. 팀원들과도 잘 융화되는 좋은 인품을 지녔습니다”며 칭찬을 거듭했다. 다만 지소연의 체력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씨 역시 딸의 체력을 항시 걱정한다. “예전엔 경기 말미에 체력이 바닥나 걸어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였어요. 감독님도 소연이에게 뛰라는 주문을 가장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경기 끝나고 ‘감독님이 뛰라는데 왜 안 뛰고 걸어 다녔느냐’고 물으시면 ‘힘들어서요’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그 모습이 안타까워 U-20 대회 전 처음으로 보약을 지어 먹였어요. 그 덕분인지 소연이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지치지 않고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지소연은 효녀로 소문났다. 상금을 받으면 고스란히 어머니께 드린다. 축구 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가족의 행복을 위해’라며 19세 소녀답지 않은 어른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허리가 아픈 엄마를 위해선 찜질방을 차려주고 싶다고 말해요.” 김 씨는 나이에 비해 부쩍 성숙한 딸의 모습을 보면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