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25조를 움직이는 사나이’라고 불리는 조국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표정이 어둡다. 조 본부장이 이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주가가 폭락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숨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본부가 주식시장에서 굴리는 돈이 무려 10조원에 이르니 그럴 만도 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싸늘하기만 해 이래저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안티 국민연금’ 운동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연금 운용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기도 하다.
국민연금의 운용 방법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일요신문>은 기금운용 총괄 책임자인 조국준 본부장을 만났다.
지난 20일 기자가 강동구 신천에 위치한 국민연금 본사를 방문한 당시 회사 곳곳에서 신문 스크랩을 볼 수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안티 국민연금’,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 증폭’, ‘기금고갈에 대한 우려’ 등이 대부분. 사무실 벽과 책상 위에 흩어진 국민연금에 대한 신문기사들은 연금측이 여론에 대해 무척 고심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이 중 가장 큰 관심은 “과연 내가 지금 낸 국민연금을 30년 뒤에 무사히 받을 수 있느냐”하는 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
조 본부장은 “솔직히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현재 국민연금 시스템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 돼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연금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운용을 잘해도 고갈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얘기죠.”
국민연금 관계자에 따르면 연금측은 가입자들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라고 판단하고, 근본 대책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연금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도 ‘연금 개혁’을 선언하고 있으나, 가입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태까지 적립된 기금이 잘 운용되는 것이 중요한 셈.
조 본부장에 따르면 본사 5층에 위치한 자금운용본부에는 1실 8팀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지원부서인 기금관리실(기금기획팀, 자금관리팀)과 투자전략팀, 리서치팀, 리스크관리팀, 채권팀, 주식팀, 아웃소싱팀이 바로 이 곳. 이들 8개 팀에는 조 본부장을 필두로 펀드매니저 46명을 포함, 총 7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연금 1백25조원을 움직이는 손들이다.
조 본부장이 “우리는 담배가게 가서 담배 사오라고 시키면 그대로 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운영절차를 보면 공단측이 매년 초 기금운용계획을 세우면 기금운영위원회가 이를 검토하고 국회의 동의를 거쳐 최종 허가가 떨어진다.
기금운영위원회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 경제부처 차관급 인사, 재계 대표격인 전경련과 경총,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노총 등이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포진돼 있다.
이렇다보니 기금의 운용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조 본부장에 따르면 사실상 보건복지부의 연금재정과에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잡고, 운용본부가 그 지시를 따르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
기금운영의 비율을 보면 전체 기금 1백25조의 전체 80%가량인 95조∼1백조원은 채권투자 몫이다. 나머지 20% 중 9%(약 10조원)는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고, 6조∼7조원은 정부에서 빌려쓰고 있다. 그 외에 미미한 부분은 부동산펀드(약 5천억원) 등 아웃소싱팀에서 관리를 한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기금의 주식 투자.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율은 전체 기금의 9% 정도로 큰 비중은 아니지만, 연금 운용 이익의 3분의 1 이상은 주식 투자를 통해 벌어들였다는 것이 조 본부장의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한해 동안 기금을 운용해 8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 중 2조4천억원이 주식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다. 실제로 지난해 주식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다 보니, 운영위원회 몇몇 곳에서는 주식투자 비율을 대폭 늘이자는 얘기가 오갔을 정도다.
이렇다보니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를 통한 이윤 창출은 공단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사 중 하나로 대두됐다.
그러나 조 본부장은 “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조 본부장은 “주식에 투자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분야의 완벽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본부 내에서 주식에 제대로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적정한 기금 운용은 어떤 걸까.
그는 “사실 기금의 30% 정도를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 20%,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나머지 10% 정도를 나눠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 기금을 잘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단순히 금융 상품에만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조 본부장은 현재의 폭락하는 주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이번 폭락장세에서 어떤 운용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기는 꺼려했다. 그는 “지금까지 얼마를 손해봤다 이렇게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물론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운용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민연금 폐지운동 등에 대해서 자금운용본부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가입자들의 비판과 볼멘 목소리에 대해서는 다소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가입자들이 안티운동을 벌이는 것이 전혀 황당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돈을 주고 물건을 샀는데, 일단 돈만 내고 그 물건을 30년 뒤에 준다고 하면 누가 선뜻 돈을 내겠는가.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판도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