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끊긴 마을 시간이 멈춘 호수
여름휴가 특집 제5탄. 이번에는 오지마을로 찾아간다. 사실, 이번만큼은 어느 곳을 소개하느냐를 두고 나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왜냐하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곳은 오지가 아니게 되고, 거기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생활도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충 끝에 선택한 곳, 바로 충북 제천시 청풍면 수몰지구다. 엄연히 길이 잘 닦여 있지만,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 아니 거기에 길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마을이 모여 있고, 게다가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이 너무나 멋진, 오지 아닌 오지다.
중앙고속국도 남제천IC로 빠져 나온 후 82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육지 속의 바다’라 불리는 청풍호를 만난다. 길은 청풍호를 오른쪽에 두고 계속 흘러내린다. 도중에 청풍랜드를 지나고, 청풍대교 앞에 이르러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옥순대교 방면으로 향하고, 오른쪽은 청풍문화재단지로 곧 이어진다. 우리가 갈 길은 오른쪽이다.
▲ 수몰지구의 풍경. |
문화재단지 서북쪽에는 통일신라 시절 축성한 495m 길이의 산성이 있다. 이 산성에는 망월루라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청풍호반의 풍경이 아주 평화롭고 아름답다.
목적지는 청풍문화재단지 뒤편에 있다. 문화재단지에서 한길로 나와 조금 더 가면 물태리가 있다. 이 마을 안쪽으로 숨겨진 도로, 수몰지구 순환로가 있다. 물태리는 청풍면 소재지다.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이곳에 모여 있다. 필드하키장이 있어서 간간이 대회가 열린다. 대회가 없을 때는 전지훈련지로도 많이 이용된다.
물태리 안쪽으로 난 도로는 신리-도곡리-양평리-계산리-광의리-연곡리-읍리를 돈다. 적은 곳은 서너 가구, 많은 곳은 30~40가구쯤 사는 작은 촌락들이다. 그러나 이 마을들은 30년 전만 해도 제법 컸던 곳들이다. 하지만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대부분의 가옥들이 수몰됐다.
먼저 수몰지구 초입인 신리로 들어선다. 신촌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수몰지구 중간에 자리 잡은 비봉산(531m) 남동쪽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마을엔 수몰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70가구가 넘게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30가구도 채 남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마늘과 고추, 담배 농사를 주로 짓는다. 콩, 밀, 보리 등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어업허가권을 얻어 청풍호에서 고기를 잡기도 한다.
신리를 지나면 길은 양쪽으로 갈린다.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곧 도곡리가 나온다. 질그릇 도(陶)자와 골짜기 곡(谷)자를 쓰는 마을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옹기쟁이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수몰 전에는 500명 가까이 살았는데, 현재는 34가구 90명 정도만 남았다. 신리와 마찬가지로 담배와 고추 등을 경작하며 산다.
도곡리 바로 아래가 대류리다. 28가구 69명이 사는 한적한 마을이다. 생강이 유명하다. 점토질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맛이 강하고, 향이 특히 세다. 한과를 만들 때면 대류리에서 생산된 생강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류리를 지나면 길은 양평리, 계산리, 광의리로 돈다. 이 지역은 거의 수몰되다시피 해서 남아 있는 집들이 거의 없다. 양평리 쪽에 여남은 집들이 있긴 하지만, 계산리와 광의리에는 서너 채씩이 전부다. 길은 마치 뱀이 몸을 비비 꼬며 전진하듯 구불구불 나아간다. 왼편으로는 초록 물빛의 호수가 달려든다.
광의리는 특히 호반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길을 가다보면 광의리에 이르러 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봉정사 인근이다. 그 길을 따라 호수로 가자 낚시를 하는 강태공이 보인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이 호수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숭어가 수면 위로 ‘첨벙’ 튀어 오르는 소리와 낚시찌가 수면 아래로 ‘퐁’ 하고 잠기는 소리뿐이다.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위가 많이 빠진 호수는 수몰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십 채의 집터들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안채와, 바깥채, 마당이 있던 자리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계단식 논도 보인다. 어느 집터에서는 우물도 보인다.
광의리 호반에서 나와 다시 길을 달린다. 길은 연곡리를 거쳐 다시 신리로 돌아온다. 연곡리는 조선 18대 임금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의 고향이다. 연곡리에는 현재 20여 채의 가옥에 60여 명의 주민이 남아 있다. 이 마을 역시 수몰로 인해 절반 이상 잠겼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남제천IC→82번 국도→KBS제천촬영장→청풍랜드→청풍대교→청풍문화재단지→수몰지구 ▲먹거리: 잠자리: 느티나무횟집(043-647-0089), 남한강횟집(043-643-4458) 등 매운탕을 잘 하는 집들이 수몰지구 입구인 물태리에 있다. 이 지역은 청풍한우먹거리촌이기도 하다. 정육점에서 한우를 구입한 후 주변 식당에 들어가서 자릿세만 내고 구워먹을 수 있다. 한편, 물태리에는 팔영루가든민박(043-652-8066), 청풍깍두기민박(043-652-1315) 등 잘 만한 곳들이 있다. ▲문의: 제천문화관광과 043-641-5141. 청풍문화재단지 043-641-4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