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삼성카드 유석렬 사장(오른쪽)과 GMAC 국제부문 리처드 클라우트 사장이 합작회사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 ||
그러나 최근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몸을 추스른 현대가 서서히 진용을 새로 갖추면서 삼성과 여러 분야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두 재벌이 정면 충돌한 곳은 할부금융시장 분야.
올초 삼성캐피탈을 합병한 삼성카드는 지난주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GM의 금융자회사인 GMAC와 합작으로 자동차 할부금융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이 점유율 70%로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장에 삼성이 뛰어든 것. 삼성의 합작사 명칭은 GMAC캐피탈이다. 앞으로 이 신설법인은 GM대우가 생산하는 자동차와 미국 GM의 수입차, 중고차 등에 할부금융을 제공하게 된다.
합작사 자본금은 2백억원이며 GMAC가 1백61억원(80.5%), 삼성카드가 39억원(19.5%)을 출자한다.양사는 이달 말까지 자본금을 납입하고 합작사를 설립해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사회 구성은 설립 뒤 4년간 GMAC 4명, 삼성카드 2명으로 구성하고 합작사 대표는 로버트 폴GMAC 뉴질랜드 사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카드쪽에선 “이번 합작사 설립으로 GM대우가 생산하는 자동차 할부금융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기존 삼성카드의 자동차 할부금융사업이 전면 개편될 것임을 내비쳤다.
이렇게 GMAC의 국내시장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현대캐피탈이 주도해온 국내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물론 현대차와 기아차 물량을 독식하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반응은 덤덤하다. 그도 그럴것이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소비자금융그룹인 GE캐피탈과의 합작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지난해부터 현대차그룹과 GE의 제휴설은 끊이지 않았지만 막상 성사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GE가 한국진출을 시작한 이래 오랜 기간 여러 분야에서 한국사업 파트너를 해온 삼성이 할부금융사업 파트너로 GM을 고른 이상 GE의 선택 폭도 좁아진 셈이다.
GE는 미국에서 월마트 전담 카드를 발행하는 등 소비자금융시장의 강자다. 다만 GM은 자동차 회사가 모회사이고 미국 시장 1위인 만큼 자동차 할부금융에서 강자인 것. 반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이 1등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쳐 국내 새차 시장에서 73%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이와 연관된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도 70% 정도의 시장을 가져가고 있는 것.
반면 삼성은 소비자금융시장에서 삼성카드를 앞세워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에서 강자로 나섰지만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삼성이 지분 20%를 갖고 있는 르노삼성의 할부금융을 독식하고 있지만, 르노삼성의 점유율이 적은 까닭에 10조원에 이르는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미 삼성과 현대차는 소비자금융시장에서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5월 중순 현대카드가 ‘라이벌이 있다는 것’이란 문구를 앞세운 광고를 내면서 삼성과 현대차가 카드시장에서 맞수라는 점을 부각시킨 광고를 내보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 광고에서 ‘좋은 경쟁 상대인 삼성카드가 있어 한발 더 앞서갈 수 있습니다’란 문구까지 써넣어 삼성쪽을 자극시켰다.
삼성쪽에선 이 광고를 ‘택도 없는 소리’라면서 현대쪽에 항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대쪽도 문제의 광고를 더 내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앙금이 없을리 없다. 삼성은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을 합병시켜 자산규모가 20조원대이지만, 현대카드는 2조원에 불과하기 때문. 회원수도 삼성카드는 1천3백만 명, 현대카드는 3백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여기에 할부금융을 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삼성카드와는 달리 별도 회사이기 때문.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7조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신용불량 문제에, 조달금리 문제까지 겹쳐서 고리의 현금 대출 서비스에 제동이 걸린 카드와는 달리 자동차 할부금융은 비교적 리스크가 적고 수익구조가 좋은 편이다. 때문에 은행만 없다 뿐이지 카드, 보험, 증권 등 2금융권을 제패하고 있는 삼성쪽에서도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대해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선택한 카드가 바로 GM계열의 GMAC와의 합작인 것.
삼성이 GM을 등에 업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일단 조달금리가 유리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현대차그룹도 GMAC의 라이벌 격인 GE와의 합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소비자금융회사인 GMAC나 GE캐피탈의 신용등급과 신용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국내 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은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조달금리면에서 차이가 난다. 삼성이 싼금리를 조달하는 GMAC를 통해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을 공략할 경우 현대차의 국내 마케팅이 제동 걸릴 가능성이 크다.
또 삼성카드쪽에선 이번 합작사 설립으로 GM대우의 자동차 할부금융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2008년에는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점유율이 현 10%에서 30%대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 계열 물량을 제외하고는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복안.
현대차도 할부금융시장을 방치할 리 없다. 할부금융시장을 내놓으면 자동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거니와 할부금융시장 자체가 주된 수입원이기 때문. GMAC가 바로 그런 예다. GMAC는 지난해 미국 GM그룹 전체 순익의 74%에 달하는 28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GM의 핵심 계열사다. 자동차를 팔아서 번 돈보다 자동차를 사라고 돈을 꿔주는 돈장사에서 더 큰 돈을 번 셈이다. 삼성이나 현대나 물러날 수 없는 돈전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