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쌍방울 창사 40주년 기념 패션쇼 장면. 쌍방울 경영권을 둘러싼 지루한 분쟁이 오는 7월8일 주총에서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 ||
쌍방울은 지난 22일 오는 7월8일 임시주주총회를 연다는 공시를 냈다. 이 임시주총에선 대한전선이 추천한 3명의 이사와 1명의 감사의 임명안이 표결에 부쳐진다. 특히 이번 주총에선 지난 3월 쌍방울 정기주총에서 대한전선의 경영진 선임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해 대한전선의 쌍방울 접수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던 SBW홀딩스가 대한전선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지루한 분쟁이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한전선(33.14%)에 이어 쌍방울 2대주주 자리에 있던 SBW홀딩스(27.5%)는 조만간 파산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있는 점은 대한전선과 SBW홀딩스의 관계.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SBW홀딩스의 대표이사였던 유아무개씨 등 3명의 불구속 기소건이다. 당시 검찰에선 유씨 등에게 ‘쌍방울 소유권을 가로챈 뒤 명의신탁된 지분 9백90억원 어치를 임의로 처분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를 적용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던 쌍방울은 지난 2002년 6월11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애드에셋 컨소시엄을 대표하는 애드에셋(주)에 쌍방울의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인수계약을 맺었다.
쌍방울을 인수한 애드에셋 컨소시엄에는 대한전선과 금호종합금융 등이 참가했다. 애초 애드에셋 컨소시엄에 참가했던 대한전선은 ‘투자의 일종’이라고 컨소시엄 참여 이유를 밝혔었다.
이후 2002년 10월 쌍방울은 기존 오너인 이봉녕 전 쌍방울 회장 일가의 주식을 소각하고 애드에셋의 증자 참여를 받아들여 애드에셋이 쌍방울의 지분 73.7%를 차지하는 1대주주로 떠올랐다. 물론 SBW홀딩스의 쌍방울 지분은 이후 증자 등을 통해 27.5%까지 내려갔지만 경영권은 확실히 SBW홀딩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애드에셋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면에는 ‘모종의 밀약’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애드에셋 대표였던 유씨는 2002년 10월께 (주)구창관리시스템으로부터 쌍방울을 대신 인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애드에셋(현 SBW홀딩스)의 지분 80%를 구창쪽에 넘긴 뒤 구창측으로부터 명의신탁받았으나 쌍방울 인수 뒤 구창측의 지분 반환요구를 거부하고 임의로 처분했다는 것. 구창관리시스템이란 회사는 쌍방울 계열사의 건물관리 용역을 맡아오던 회사로 구창측은 옛 오너의 은닉 재산으로 쌍방울 인수에 나선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애드에셋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구창쪽의 의도대로 쌍방울 인수건이 진행됐다면 쌍방울은 구창쪽으로 진작 넘어가야 했던 것. 검찰쪽에선 유씨가 쌍방울이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인수합병을 재료로 주가가 뛰자 구창의 명의신탁 반환요구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소유권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유씨 등은 지난 2003년 1월 주당 19만7천원으로 평가되던 애드에셋의 주식을 액면가 5천원에 54만 주를 증자한 뒤, 9백90억원 상당의 주식을 다른 임원에게 팔아버려 구창측 지분을 12%대로 떨어트려 버렸다. 애드에셋의 주식 80%를 갖고 쌍방울 인수를 노렸던 구창측을 단숨에 물먹여 버렸다.
▲ 서울 퇴계로 대한전선 빌딩. | ||
검찰의 SBW홀딩스 경영진의 횡령 혐의 기소로 쌍방울의 경영권 싸움은 구창쪽에 다소 우세했던 듯 보였지만, 지난해 11월 SBW홀딩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다시 혼전으로 들어갔다. SBW홀딩스가 확보한 쌍방울 주식을 통해 경영권 확보를 노렸던 구창이 거꾸로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양측의 싸움은 지난해 1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 검찰의 횡령 사건 수사 이후 SBW홀딩스 내부에서 구창과 옛 애드에셋 경영진, 대한전선의 세싸움이 벌어지면서 SBW홀딩스가 선임했던 쌍방울 경영진에 대해 SBW홀딩스가 다시 직무집행정지 신청을 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 혼전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상황이 꼬인데는 애초 투자목적으로 쌍방울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고 밝혔던 대한전선의 태도 변화가 한몫했다. 대한전선은 쌍방울 인수 이후 직접 경영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대한전선쪽에선 쌍방울 경영권을 SBW홀딩스가 접수한 뒤, SBW홀딩스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지면서 인수 작업에 차질을 빚자 쌍방울에 직접 투자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12월 쌍방울에 1백16억원을 출자해 지분을 20.53%까지 끌어올려 SBW홀딩스에 이어 2대주주 자리에 오르더니 최근 지분율이 37%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SBW홀딩스가 최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신청허가 승인을 받은 것도 대한전선에 유리한 국면이다. 현재 SBW홀딩스나 쌍방울은 각기 맞고발로 대표이사가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가 있어 법원에서 파견한 직무대리인이 경영을 맡고 있다.
만약 SBW홀딩스가 파산하면 쌍방울 대표이사 직무정지에 대한 소송 주체가 사라지는 셈. 그럴 경우 쌍방울이 직무대행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 따라서 SBW홀딩스에 파산관재인이 오면 쌍방울 대주주인 대한전선의 경영진 선임을 반대할 이유도 없는 상태다.
또 SBW홀딩스는 대한전선에 2백억원 규모의 대여금이 있다. SBW홀딩스가 청산을 밟으면 SBW홀딩스의 자산인 쌍방울 주식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분배하게 되는데, 대한전선은 대여금으로 이 주식을 받아 더욱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경영권 분쟁 대상이었던 SBW홀딩스가 갖고 있던 쌍방울의 주식 자체가 공중분해돼버리는 상황으로 반전된 것이다.
때문에 대한전선에선 오는 7월8일 임시주총에서 무혈입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대한전선의 ‘패’가 던져지자 대한전선의 경영권 접수에 반대했던 쌍방울 직원들은 ‘전직원 사표 제출’이라는 초강수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대한전선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며 직원들에게 제의한 상태지만 공식적인 대화의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구창쪽도 재반격을 준비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카드가 없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전선이 이봉녕 일가(쌍방울의 전 사주)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내고 쌍방울 경영진에 무혈입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