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계약을 해지했을 뿐이다”(한국도요타자동차)
SK네트웍스와 한국도요타자동차가 법정에서 백억대 소송으로 맞붙을 조짐이다. SK네트웍스는 과거 SK그룹 계열사인 SK글로벌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지난 2001년 한국에 진출한 한국도요타자동차로부터 딜러권을 따내 ‘렉서스’모델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무려 2년 반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었던 SK와 한국도요타는 이제 법정에서 얼굴을 마주할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최근 SK네트웍스가 한국도요타의 일방적 딜러권 계약해지를 이유로 상사중재원에 1백4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법인과 딜러권자 간의 분쟁이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사태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SK와 한국도요타가 등을 돌릴 때 법정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았다”며 “이번 일의 결과가 향후 수입차 법인과 딜러권자들 사이에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 역시 “한국도요타가 여러 이유를 대고 있으나, 수입차 회사가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뒤 딜러들을 폐기처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시비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국내 수입차 시장 팽창’이라는 같은 꿈을 꿨던 SK네트웍스와 한국도요타가 등을 돌리게 된 데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한국도요타가 국내시장에 노크한 것은 지난 2001년 1월. 한국도요타는 이미 북미지역에서 인정받은 ‘렉서스’ 모델을 판매하기 위해 딜러를 찾고 있었고, 당시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이 3년 동안 차량을 판매할 수 있는 딜러권을 따냈다.
당시 SK글로벌은 에너지판매부문과 상사부문으로 나뉘어 1사 2체제로 이뤄져 있었다. 이 중 에너지판매부문은 토털 자동차 서비스를 표방하고, 자동차 정비센터인 ‘스피트 메이트’ 등을 필두로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SK네트웍스 관계자에 따르면 SK는 자동차 생산을 제외한 판매, 정비, 네트웍서비스 등에 이르는 풀 라인업을 갖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는 것. ‘렉서스’ 판매권을 따낸 SK네트웍스는 수입차가 잘 팔리는 서울 강남에 큰 규모의 쇼룸을 내고, 차량 판매에 열을 올린 결과 기존의 벤츠, BMW를 위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당시 이들 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한국도요타는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며 딜러인 SK네트웍스에 고마운 마음이었고, SK 역시 수입차 판매라는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발을 뻗을 수 있어 고무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계약기간 만료를 6개월 앞둔 지난해 중순에 일어났다.
한국도요타측이 딜러권자인 SK네트웍스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딜러권을 박탈당한 SK측은 난감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
한국도요타가 계약해지를 선언한 이유는 다름아닌 ‘계약 체결 내용의 불이행’이었다.
한국도요타 관계자는 “SK는 렉서스 판매를 위해 당초 별도의 법인을 세우기로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더욱이 모기업인 SK그룹 사태로 인해 SK글로벌이 공동관리에 들어간 상황이라 향후 자금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여 SK측과 협의를 거친 뒤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SK네트웍스는 한국도요타의 해지조치에 대해 당혹해 한 것으로 전해진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우리는 도요타측의 투자요구 조건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오히려 목표 차량 판매대수를 훨씬 웃도는 실적을 냈는데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SK네트웍스는 사태 수습을 위해 수차례 한국도요타측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SK네트웍스는 다른 수입차 업체로부터 딜러권을 따내 영업을 하다가, 뒤늦은 지난 3월 상사중재원에 중재신청을 하기에 이른 것. 여기에는 SK글로벌에서 SK네트웍스로 사명을 바꾸고, 새로운 SK 가꾸기에 나선 정만원 사장의 불편한 심기가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SK네트웍스가 한국도요타에 대해 피해금액을 청구하며 ‘기업간 상도에 어긋난다’고 비난하고 나선 부분에서도 읽을 수 있는 대목. SK네트웍스 관계자는 “과거 한국시장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는 도요타가 발판마련을 위해 SK와 손을 잡았다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라며 “유사사례 방지를 위해서라도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K측이 강경한 자세를 보임에 따라 ‘잉꼬 커플’이었던 SK와 한국도요타는 향후 합의보다는 법정에서 대면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