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와 반라의 ‘부비부비’
▲ 독일 주간지 <포쿠스>는 최근 유럽에서 정장의 남성이 속옷 차림 또는 올누드의 여성과 춤을 추는 ‘누드 탱고’ 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
독일 슈투트가르트 외곽에 위치한 한 작은 바.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스름한 저녁 무렵 중형차와 대형차들이 속속 주차장에 들어왔다. 이들 중에는 드레스덴, 함부르크, 하노버, 뮌헨 등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스위스 취리히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남녀들은 모두 얌전하고 정숙하게 외투를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여자들의 경우 대부분 외투 안에 속옷이나 코르셋만 입은 반라 차림이었으며, 어떤 여자는 망사 스타킹만 입고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반라 상태로 바를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누드 탱고’를 추기 위해서였다. 누드 탱고란 이름 그대로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상태에서 속옷이나 스타킹만 신은 채 어울려 추는 탱고다.
누드 탱고를 추는 바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가만히 앉아서 엿보는 행위, 즉 관음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이를테면 멀뚱히 앉아서 다른 사람의 춤만 감상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어울려서 춤을 춰야 한다.
또한 개인적인 사진 촬영은 절대 금물이다. 전문 사진사가 누드 탱고나 클럽의 홍보를 위해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촬영하는 사진만 허용되며, 이렇게 촬영한 사진도 포르노 영화나 기타 용도로는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 영화 <누드탱고>의 포스터. |
밤이 깊어질수록 여자들은 그나마 입고 있던 속옷마저 벗고 하나둘 가슴을 드러낸 채 남자의 리드에 몸을 맡겨 스텝을 밟는다. 또 어떤 여자는 살짝 벌린 다리 사이로 음부 털이 보이는 아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들이 이처럼 아슬아슬한 차림새인 반면 남자들은 정장이나 턱시도 차림이 대부분이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파트너들이 남자들의 이런 정숙한 차림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나이 차이 같은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가령 몸에 꼭 맞는 코르셋과 망사 스타킹을 착용한 마흔이 조금 넘은 한 여성의 파트너는 그녀보다 족히 열살은 어려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머리에 젤을 잔뜩 발라 단정히 빗어 넘겼고, 검은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몸을 맞대고 탱고를 추는 남녀들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친해지는 데에는 30초면 충분하다. 몸을 맞대고 눈빛을 교환하는 탱고로 만난 남녀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만 나누는 남녀들보다 훨씬 더 빨리 가까워지곤 한다.
현재 이런 풍경은 독일 곳곳에 위치한 누드 탱고 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처음 독일에 ‘누드 탱고’ 바를 열어 열풍을 주도한 게르트 브라운은 “내년 봄에는 베를린에서 누드 탱고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누드 탱고 바람이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고, 알게 모르게 마니아층도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누드 탱고 클럽을 찾는 사람들은 20대부터 40~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할 뿐더러 교사, 자영업자, 대학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이 누드 탱고를 추는 이유는 낯선 만남에 대한 설렘도 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감히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성적 감정이나 몸짓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누드 탱고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처음 누드 탱고가 시작된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해 뉘른베르크, 칼스루에, 베를린 등 크고 작은 도시들이다. 입장료는 약 38유로(약 6만 원) 정도.
한편 누드 탱고 홈페이지에서는 누드 탱고에 대해 ‘탱고를 통해 성욕을 고백하고 성적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섹스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은 출입할 수 없으며, 일단 들어오면 반드시 어울려서 함께 춤을 추고 즐겨야 한다는 규정도 명시되어 있다.
드레스 코드 또한 평상복이나 일반적인 탱고 복장은 금지되어 있다. 여성들은 반드시 파격적인 노출을 해야 하며,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속살이 드러나도록 적당히 누드 차림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완전히 벗는 것 또한 환영받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누드 탱고의 모티브가 된 것은 1930년대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홍등가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영화인 <누드 탱고>였다. 영화 속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와 반라의 창녀가 춤을 추는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것.
실제 탱고가 19세기 말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타향살이의 애환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술집 여자들과 추던 춤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누드 탱고야말로 탱고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탱고의 태생이 매춘부들과 연관이 깊으니 누드 탱고를 추는 여자들의 반라의 모습이 원래 탱고 무용수들의 모습과 가장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탱고를 너무 저속하게 표현하고 성적으로 상품화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당장 누드 탱고 같은 음란 행위는 금지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기원이야 어찌됐든 이제 탱고는 한 나라의 당당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드 탱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평가절하는 너무 평면적인 반응”이라고 말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음란한 면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처음 누드 탱고 클럽을 찾은 41세의 한 여성은 “비록 남자 파트너 없이 혼자 이곳을 찾았지만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면서 에로틱하면서도 결코 에로틱하지 않은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외설이냐, 성적 표현의 자유냐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누드 탱고에 빠진 유럽의 남녀들은 오늘 밤도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에서 은밀하게 춤을 추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