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3총사’는 불법 세습 특공대
▲ 지난 15일 귀국한 이호진 회장. 연합뉴스 |
지난 13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중구 장충동 태광그룹 본사 사옥과 계열사 2곳에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 수사관 20여 명이 압수수색을 위해 들이닥쳤다. 수사팀은 태광 직원들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별도 공간으로 격리시킨 뒤 강도 높은 수색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이날 수사팀의 압수수색 목적은 이호진 회장이 아들 현준 군에게 계열사 지분을 편법으로 증여한 과정과 비자금 조성 여부 등에 대한 정황 확보였다. 그동안 검찰은 현준 군이 티시스(옛 태광시스템즈)와 티알엠(옛 태광리얼코) 한국도서보급 3개 비상장 계열사에서 대주주에 오르는 과정, 그리고 이 회사들에 대한 계열사들의 부당 지원 의혹에 대한 내사를 벌여왔다.
이들 계열사 중 검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티시스는 전산시스템 운영·관리 업체로 지난 2004년 4월 이호진 회장이 자본금 5000만 원을 출자해 주식 100%(1만 주)를 소유한 형태로 설립된 회사다. 티시스는 2006년 1월 25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9600주의 신주를 신규 발행했는데 이 주식은 모두 현준 군 몫이 됐다.
이를 통해 이 회장 지분율은 51%로 낮아지는 대신 현준 군 지분율이 49%가 되면서 부자가 나란히 회사를 장악하게 된다. 신주 발행가액은 1주당 1만 8955원이었다. 당시 12세였던 현준 군이 티시스 2대주주가 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불과 1억 8200만 원이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인 2006년 4월 12일 티시스는 3852주를 발행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신주 발행가액은 역시 1주당 1만 8955원. 신주 인수를 위해 이 회장 부자는 7300만 원을 투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4월 21일 티시스는 신주 3만 6548주를 발행하는 무상증자를 단행한다. 당시 티시스는 공시를 통해 신주의 재원을 ‘주식발행초과금’이라 밝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티시스는 이호진 회장이 3만 611주(지분율 51%), 현준 군이 2만 9389주(지분율 49%)를 보유한 회사가 됐다. 이 회장이 현준 군을 2대 주주로 만들어주는 데 들어간 비용은 총 2억 5500만 원이었던 셈이다.
▲ 서울서부지검이 태광그룹의 불법 상속ㆍ증여 의혹과 관련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장충동 태광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날 오후 태광그룹 본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 물품들을 차량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
이후 티시스는 흥국생명의 콜센터 운영관리업무 위탁 도급 계약, 태광 계열의 여러 유선방송사와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 등을 맺으며 수익을 늘려가게 된다.
설립 이후 첫 감사보고서를 통해 공시된 티시스의 2005년 매출액은 289억 원, 영업이익은 3억 8000만 원, 당기순이익은 3억 4000만 원이었다. 그런 티시스가 지난해에는 매출액 1052억 원, 영업이익 80억 원, 그리고 당기순이익 66억 원을 기록했다.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속에 티시스는 불과 4년 만에 매출에서 3배, 영업이익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현준 군이 지분 49%(9600주)를 보유해 이 회장(지분율 51%, 1만 주)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있는 티알엠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2004년 설립된 건물 위탁 운영·관리 업체 티알엠 역시 이호진 회장의 지분율 100%로 출발한 회사다. 2006년 2월 유상증자를 통해 9600주의 신주를 주당 8598원에 발행하면서 이를 모두 현준 군이 인수하게 된다. 8300만 원을 들여 이 회사 2대주주에 오른 것이다.
티알엠은 태광산업 태광관광개발 흥국생명 등 계열사들의 건물·시설물 유지 관리를 도맡아 오면서 수익을 늘려왔다. 지난 2008년 4월 티알엠이 공시한 계열사와의 거래내역에 따르면 티알엠의 전체 매출액 중 45.8%가 흥국생명, 27.2%가 태광산업, 18%가 태광관광개발과의 거래에서 각각 발생했다. 티알엠 매출의 91%를 태광 계열사 3곳과의 거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티알엠은 지난해 매출액 220억 원, 영업이익 45억 원, 당기순이익 56억 원을 기록했다.
현준 군은 계열사 한국도서보급의 2대 주주에도 올라 있다. 원래 두산그룹 계열이었던 한국도서보급의 지분과 경영권을 지난 2003년 태광 계열인 한빛기남방송이 사들였다. 이후 2005년 11월 이 회장과 현준 군이 한빛기남방송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2003년 한빛기남방송이 두산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일 때 1주당 가격과 2년 후 한국도서보급 경영이 호전된 상태에서 이 회장 부자가 사들인 주당 가격이 동일해 이 회장 부자의 헐값 매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재 한국도서보급에서 이 회장이 51%, 현준 군이 49%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밖에도 현준 군은 동림관광개발과 티브로드홀딩스의 지분을 각각 39%, 8%씩 보유하고 있다.
현준 군이 2대주주에 올라 있는 회사들은 모두 비상장 계열사들이지만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이 회사들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자 우량 상장 계열사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주요주주인 까닭에서다.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 지분 17.7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난 9월 13일 태광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대한화섬 지분 16.74%를 사들인 데 이어 지난 12일 1만 3280주(지분율 1%)를 추가 매입했다. 티시스는 태광산업 지분 4.51%와 대한화섬 지분 3.56%를 갖고 있으며 티알엠도 태광산업 지분 4.63%과 대한화섬 지분 0.68%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현준 군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지분을 따로 갖고 있진 않지만 자신이 2대주주인 계열사들을 통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대해 아버지 이 회장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놓은 셈이다.
현준 군이 2대주주인 회사들이 앞으로도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아 몸집을 더욱 키운 뒤 상장에 나설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현준 군에게 엄청난 상장차익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준 군 보유 지분에 대한 재계의 뜨거운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검찰 태광수사 어디까지 갈까
‘다 아는 얘기’ 들쑤시는 이유는…
태광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에 대한 이호진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진작부터 지적받아온 내용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주도하는 이른바 ‘장하성 펀드’는 지난 2006년 태광산업에 지분 참여를 하면서 경영 투명성 강화를 촉구했으며 이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재계에선 이미 회자될 대로 회자된 내용에 대해 검찰이 이제 와서 팔을 걷어붙인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태광 지분 보유 내역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작에 불과할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태광에 대한 전 방위 수사를 펼치는 중인 검찰이 현준 군으로의 편법 증여 의혹과 더불어 눈여겨보는 부분은 바로 비자금 조성 여부다. 이는 태광의 케이블 TV업체 큐릭스 인수 논란과 맞물려 묘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지난 2006년 12월 큐릭스홀딩스 대주주 원재연 씨로부터 지분을 사들인 군인공제회와 화인파트너스는 이 지분을 태광 계열인 태광관광개발에 넘기는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2~3년 내 큐릭스홀딩스 지분을 태광 측에 넘기되 원금과 연 10% 복리이자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방송법 규제 때문에 태광이 큐릭스를 인수할 수 없었는데 조만간 방송법이 개정될 것이란 확신하에 이 같은 거래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2008년 12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듬해인 2009년 1월 태광은 큐릭스홀딩스 지분 70%를 매입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태광이 거액의 비자금을 이용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검찰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지난해 4월 국정감사에서 ‘태광이 방송법 개정시 큐릭스 지분을 직접 인수한다’는 내용의 군인공제회 이사회 문건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내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조사가 종결됐는데 태광 수사가 다시 본격화되면서 검찰이 태광의 정·관계 로비설 실체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이번 수사가 재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의 일환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태광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현재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도 함께 맡은 상태다.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의 핵심부서가 아닌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서가 대기업 두 곳의 수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재 서울서부지검은 남기춘 검사장과 봉욱 차장검사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남 검사장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대검 중수1과장을 맡아 노무현 후보 캠프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대기업을 파헤쳤다. 봉 차장검사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시절 재벌가 2·3세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담당했다. 대기업 수사에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던 인사들이 포진된 서부지검의 한화 태광 수사에 대해 “정부의 재벌 손보기 특명을 받았다”는 평가까지 들려온다.
검찰 주변에선 “한화 태광에 대한 수사가 별건이지만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에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서에서 나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남 검사장의 대선자금 수사 경력을 들어 재벌들과 노무현 정부 실세들 간의 연결고리 밝히기가 수사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의 유력 부서들이 동원될 경우 ‘청와대 하명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 재벌 수사 베테랑들이 포진된 서울서부지검이 이를 맡게 된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한편 그동안 재계에서 설로만 무성했던 한화 태광의 비리 파헤치기를 시작으로 사정의 범위가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도 고개를 든다. 지난 5일엔 현 정부와 가까운 사이로 여겨져온 롯데그룹의 계열사 롯데건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국세청 주변에선 롯데건설 다음 타깃으로 굴지의 대기업이 보유한 건설 계열사가 거론된다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 역할론을 강조해온 정부가 검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통해 재벌 기강잡기에 나선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다 아는 얘기’ 들쑤시는 이유는…
재계에선 이미 회자될 대로 회자된 내용에 대해 검찰이 이제 와서 팔을 걷어붙인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태광 지분 보유 내역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작에 불과할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태광에 대한 전 방위 수사를 펼치는 중인 검찰이 현준 군으로의 편법 증여 의혹과 더불어 눈여겨보는 부분은 바로 비자금 조성 여부다. 이는 태광의 케이블 TV업체 큐릭스 인수 논란과 맞물려 묘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지난 2006년 12월 큐릭스홀딩스 대주주 원재연 씨로부터 지분을 사들인 군인공제회와 화인파트너스는 이 지분을 태광 계열인 태광관광개발에 넘기는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2~3년 내 큐릭스홀딩스 지분을 태광 측에 넘기되 원금과 연 10% 복리이자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방송법 규제 때문에 태광이 큐릭스를 인수할 수 없었는데 조만간 방송법이 개정될 것이란 확신하에 이 같은 거래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2008년 12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듬해인 2009년 1월 태광은 큐릭스홀딩스 지분 70%를 매입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태광이 거액의 비자금을 이용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검찰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지난해 4월 국정감사에서 ‘태광이 방송법 개정시 큐릭스 지분을 직접 인수한다’는 내용의 군인공제회 이사회 문건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내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조사가 종결됐는데 태광 수사가 다시 본격화되면서 검찰이 태광의 정·관계 로비설 실체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이번 수사가 재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의 일환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태광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현재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도 함께 맡은 상태다.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의 핵심부서가 아닌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서가 대기업 두 곳의 수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재 서울서부지검은 남기춘 검사장과 봉욱 차장검사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남 검사장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대검 중수1과장을 맡아 노무현 후보 캠프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대기업을 파헤쳤다. 봉 차장검사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시절 재벌가 2·3세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담당했다. 대기업 수사에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던 인사들이 포진된 서부지검의 한화 태광 수사에 대해 “정부의 재벌 손보기 특명을 받았다”는 평가까지 들려온다.
검찰 주변에선 “한화 태광에 대한 수사가 별건이지만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에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서에서 나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남 검사장의 대선자금 수사 경력을 들어 재벌들과 노무현 정부 실세들 간의 연결고리 밝히기가 수사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의 유력 부서들이 동원될 경우 ‘청와대 하명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 재벌 수사 베테랑들이 포진된 서울서부지검이 이를 맡게 된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한편 그동안 재계에서 설로만 무성했던 한화 태광의 비리 파헤치기를 시작으로 사정의 범위가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도 고개를 든다. 지난 5일엔 현 정부와 가까운 사이로 여겨져온 롯데그룹의 계열사 롯데건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국세청 주변에선 롯데건설 다음 타깃으로 굴지의 대기업이 보유한 건설 계열사가 거론된다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 역할론을 강조해온 정부가 검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통해 재벌 기강잡기에 나선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