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기소 여부는 우리 몫” 검찰 “해괴망측 논리”…사건 ‘재재이첩’ 가능성도
김진욱 공수처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2월 초 내방 했을 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였다면, 이번 갈등은 본격적인 ‘상위조직 여부’를 다투는 기 싸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이종현 기자
#첨부 공문 하나 때문에…
2월 8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예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김진욱 처장은 당초 30분만 회동하기로 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 100분 동안 비공개 회동을 가지며 ‘협력’을 다짐했다. 김 처장은 예방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과) 사건이첩 조항에 대해 협력을 잘 하기로 원론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대검 역시 “공수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공수처 조직 구성 등 수사 준비가 완료되는 상황에 따라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한 달이 조금 지난 3월 초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수사와 기소권’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당초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가 수사 대상이라는 점 때문에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했다. 하지만 아직 검사 구성 등 조직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 공수처는 사건을 다시 검찰로 재이첩했다. 법조계가 모두 예상한 그대로였다. 3월 3일 검찰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 등 현직 검사 5명에 대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한 것을, 공수처는 12일 수원지검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하지만 여기에 첨부된 공문 하나 때문에 검찰과 공수처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사건을 다시 검찰(수원지검)로 보내면서 “수사 후 송치하면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조건을 공문으로 함께 보낸 것이다. 수사는 검찰이 하되, 그 수사 결과를 보고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배당된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검사는 3월 15일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해괴망측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 부장검사는 김진욱 공수처장을 향해 “사건을 이첩한 것이 아니라 ‘수사 권한’만 이첩한 것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웠다”며 A4용지 8페이지 분량의 검토 보고서도 첨부했다. 보고서에는 “공수처는 원칙적으로 수사권만 있고, 예외적으로 3조 1항 2호(판사와 검사 등)에 정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기소권을 보유한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적혀 있었는데, 이 부장검사는 “특정 신분의 특정 범죄에 대한 공수처의 독점적 기소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진욱 공수처장은 ‘문제가 없는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김 처장은 15일 “어제 입장문에 쓰인 대로”라며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보다 하루 앞선 14일 밝힌 “수사 부분만 이첩한 것으로 공소 부분은 여전히 공수처 관할 아래 있다”는 점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사건이 배당된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검사는 3월 15일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해괴망측한 논리”라며 “사건을 이첩한 것이 아니라 ‘수사 권한’만 이첩한 것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대검찰청 청사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기소권 있어야 진짜 권력
공수처의 주장은 공수처법을 근거로 한다. 공수처법 3조 2항에서는 ‘고위공직자로 재직 중에 본인 또는 본인의 가족이 범한 고위공직자범죄 및 관련 범죄의 공소 제기와 그 유지’라고, 25조 2항에는 ‘수사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직 검사의 범죄는 검찰이 공수처로 이첩해야 하며, 그 기소 여부는 공수처의 몫’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해석은 다르다. 이정섭 수원지검 부장검사는 이첩과 송치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부장검사는 내부망 글에 인용한 공수처법 법리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이첩의 대상은 사건이지 (기소) 권한이 아니’라며 “사건을 이첩 받은 기관은 그 기관이 보유한 권한을 행사해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 것일 뿐이어서, 권한을 이첩한다는 개념은 상정하기 어렵다.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한 경우 더 이상 그 사건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수원지검은 공수처로의 사건 송치는 ‘법률상 근거가 없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법조계는 의견이 분분하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기소권이 공수처에 있을 수 있다지만, 검사도 기소권이 있기 때문에 공수처에서 사건을 무조건 넘겨야 하고, 공수처가 검찰에 대한 수사 지휘를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검찰의 손을 들었고, 또 다른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에 현직 검사에 대한 기소권이 분명하게 있으니, 공수처가 저렇게 주장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공수처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번 갈등이 여기서 끝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없었다. 공수처가 다시 사건을 ‘재재이첩’하는 방법으로 검찰 수사를 넘겨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는 “검사에게 기소권이 분명하게 있으니 수사 지휘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맞지만,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언제든 공수처가 ‘이첩해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 갈등이 생겼다면 공수처에서 분명 사건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다시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라’고 요구하면 검찰은 응해야만 한다. 수사 마무리 단계 직전,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를 앞에 두고 사건을 다시 공수처에 넘겨야 한다면 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권한을 나눠 가진 검찰과 공수처라고 하는 두 조직이 새로운 상황에서 ‘역할과 권한’을 놓고 기싸움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규모와 수사 인력 등을 감안할 때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의 수가 제한적인 공수처가 ‘더 큰 권한’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받는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공수처는 수사 지휘가 아니라 ‘이첩과 기소권’이라는 문장으로 검찰의 수사를 판단하는 역할까지 하고 싶어 한다면, 검찰은 기존의 기소권을 활용해 가장 상위 수사기관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번 갈등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1988년 만들어지면서 대법원과 누가 ‘최고 법원 기관이냐’를 놓고 줄기차게 갈등을 벌였고, 지금까지도 서로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다투지 않냐”며 “결국 공수처와 검찰도 ‘최고 상위 수사기관’ 자리를 놓고 서로 관계 설정 기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