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서해’ 둘이서만 느껴요
▲ 제부도 일출. 서해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언제나 특별하다. |
화성은 단위 면적으로만 따진다면 수원과 오산시를 합한 것보다 5배, 서울보다도 1.4배 넓다. 서해를 끼고 있는 화성은 광활한 땅덩이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일단 지금의 화성이라는 지명을 있게 한 태안읍 화산 기슭에 자리한 융건릉과 용주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화성은 수원에 있는 성곽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성곽을 쌓은 이는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1752~1800)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목적으로 둘레가 5.7㎞에 달하는 장대한 성곽을 쌓고 신도시를 건설했다. 융건릉은 그러한 정조의 무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효자로 소문난 정조는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 기슭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이장하고 훗날 자신도 그 곁에 묻혔다. 소나무 울창한 숲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한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가 합장한 건릉이 놓여 있다. 솔숲은 융건릉의 백미다. 여유롭지만 사방이 빈틈없는 소나무숲을 가로질러 5분쯤 걸어가면 건릉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융릉이 이어진다. 다른 모든 나무들이 다 화려했던 채색을 버리고 헐벗었어도 변함없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정조의 이상과 기상이 살아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용주사는 융건릉에서 약 2㎞ 떨어져 있는 절이다. 정조가 그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며 세운 절이 용주사다. 건물의 완공을 축하하는 낙성식 전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꾼 정조가 용주사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고 전한다.
용주사에는 범종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진 대웅전 후불탱화 등 볼거리가 많다.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것으로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 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비천상과 삼존상이 몸체에 조각돼 있다. 후불탱화는 김홍도가 아니라 민관이라는 화가를 비롯해 25인이 그렸다는 기록도 있다.
화성에는 그림 같은 일출과 일몰 명소도 있다. 제부도와 궁평리가 그곳이다. 서해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동해와는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오는데, 제부도 일출도 역시 그렇다. 제부도는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고 하루 8시간씩 두 차례 시멘트 포장길이 열린다. 이 길은 20여 년 전 만든 것이다.
바닷길이 나는 시각은 매일 30~40분씩 늦어진다. 일출시간에 맞게 바닷길이 열리는 날을 체크해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더 소중한 법이다. 제부도 일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매바위다. 날아오르기 직전의 매처럼 잔뜩 웅크린 매바위 뒤로 커다란 해가 불쑥 솟아오르며 주위를 붉은 색으로 덧칠한다. ‘서해는 일몰’이라는 틀에 박힌 생각 때문인지 그 멋진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소란스럽지 않다.
▲ 궁평항 새벽 풍경. 조업을 나갔다 들어오는 배들로 활기가 넘친다. |
한편, 궁평리에서 석천리 방면으로 이어진 화옹방조제는 드라이브 코스로 일품이다. 구부러짐 없이 쭉 뻗은 도로를 힘껏 속도를 내서 달리다보면 가슴 속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화성에는 간척으로 인해 육지가 된 섬들이 많다. 고기가 많던 어도는 경비행기 체험장으로 변신했다. 주말이면 경비행기를 타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많이들 찾아온다. 형도는 모래언덕이 좋았던 곳이다. 이 섬에는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다.
우음도 역시 시화방조제로 바다를 막으면서 섬의 운명을 버렸다. 우음도로 가는 길은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이다. 시흥에서부터 홍성까지 이어지는 제2서해안고속국도 작업차량들이 무시로 달린다. 이 길은 우음도를 관통한다. 우음도로 가는 길에는 공룡알화석지가 있다. 2000년 3월 22일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된 곳이다. 방문자센터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돌섬 주변에 공룡알화석들이 널려 있다. 타조알만 한 공룡알 화석들로, 오리주둥이공룡과 네발용각류로 추정된다.
우음도는 공룡알화석지에서도 3㎞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시화방조제 건설 이후 많은 어민들이 보상을 받고 섬을 떠난 탓인지 마을 안에는 꽤 많은 빈집들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마을 자체는 볼 것이 없지만, 마을 입구의 간척지 ‘띠풀’은 장관이다. 바다였던 것이 육지로 바뀌면서 염생식물인 갈대가 사라지고 육상식물인 띠풀이 점령했는데, 무릎 높이의 띠풀들은 갈대보다 훨씬 연약해서 살랑 바람에도 쉽게 눕는다.
서산으로 기우는 태양이 비스듬히 띠풀에 비치면서 황금처럼 빛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띠풀의 물결. 여름내 풀어 놓았던 소떼들이 없어도 황량하지 않다. 더욱이 그 띠풀 숲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연출하는 묘한 긴장감이 이 겨울의 시간을 황홀하게 만든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비봉IC→313번 지방도→송산면 봉가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제부도와 궁평항, 우측은 우음도로 향한다. 경비행기체험을 할 수 있는 어섬은 곧장 직진해 322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먹거리: 제부도 들어가기 1㎞ 전방에 해조식당(031-356-3639)이라는 곳이 있다. 탱글탱글 살이 오른 굴과 호두, 대추 등을 넣어 갓 지은 뚝배기밥에 양념장을 적당히 섞어 비벼먹는 영양굴밥이 맛있다. ▲잠자리: 궁평리에 프린스모텔(031-355-2270)이 있고 제부도에는 포시즌모텔(031-357-2677), 힐하우스모텔(031-357-7986) 등이 있다. ▲문의: 화성시청 문화예술과 031-369-2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