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다큐 3일
강북과 강남을 잇는 노선처럼 우리 사회를 지탱하며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버스에 오른다. 새벽 4시부터 익일 새벽 2시까지 하루 약 22시간 서울을 누비는 160번.이 버스에는 어떤 삶이 타고 있을까. 160번 버스에 몸을 싣고 각자의 정류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도봉산자락에 해가 걸리기도 전인 이른 시각. 산 아래 도봉권역 공영차고지에는 벌써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차고지에서 출발한 버스는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금세 만원 버스가 된다. 새벽 첫차의 주 고객은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 이름 대신 ‘아주머니’로 불리는 청소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가 무게를 더해 청소노동자의 하루는 더 팍팍해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늘도 일할 수 있음에, 새벽 첫차를 타고 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지만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도 보인다. 건물의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더 빨리’를 연신 왼다.
부지런히 일한 대가로 그저 ‘무사한 하루’만을 바라는 청소 노동자들. 이들의 정직한 수고가 있기에 모두의 하루가 무사히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버스 노선처럼 정해진 길이 있다면 무슨 고민이 있을까. 160번 버스처럼 118개의 정류장을 순서대로 지나치기만 해도 목적지까지 저절로 실려 가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앞만 보고 힘차게 질주했는데 돌아보니 역방향임을 알았을 때 윤유림 씨는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늦은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인생의 회차지에 다다라, 다시 출발지에 선 셈이다.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더 많기에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오늘도 버텨본다. 어머니가 챙겨준 반찬을 품에 안고 그 온기를 위로 삼아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봄바람 불어오는 맑은 오후 서울대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한 승객이 버스에 오른다. 전동휠체어 운전이 미숙한 승객은 탑승하자마자 좌석에 앉은 승객과 충돌해 작은 사고를 일으킨다. 버스 안에서 자리를 잡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버스 안의 그 누구도 그를 재촉하거나 힐난하지 않는다. 버스 기사는 승객의 목적지를 물어보고 직접 하차를 돕는다. 휠체어를 탄 승객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며 무사히 하차한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금세 도심 속으로 사라진다. 160번 버스는 오늘도 ‘대중교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한편 퇴근 시간 지친 직장인들이 탄 버스에서는 피로의 냄새가 난다. 그 속에서 남다른 활기를 뿜는 이들, 예비부부 김솔이, 이신광 씨를 만났다. 달콤한 신혼의 꿈에 한창 빠져있을 때이지만, 이들은 결혼식 걱정이 앞선단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 하객 제한이 걸려 ‘강제 스몰 웨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걱정은 바로 신혼집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에 부랴부랴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상황. 그마저도 부족해 꿈꿨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손잡고 나아갈 수 있음에 행복하다는 이들. 부부로 함께하기에 다음 정류장까지의 여정도 즐거울 것이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 하지만 승객들이 머물고 간 좌석에는 희망의 싹이 돋아 있다. 이 싹을 꽃피우기 위해 160번 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