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의 진주’가 개미 울렸다
▲ 한국거래소가 2009년부터 강소기업으로 추천한 ‘히든 챔피언’ 리스트 중에서 상장 폐지를 당하거나 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속한 게 알려지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
각 증권사들의 추천종목은 주로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힘든 블루칩(수익성·성장성·안정성이 높은 대형 우량주) 위주로 돼 있다. 이따금 스몰캡(중소형주)을 전문적으로 추천하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중소형주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거래소가 발표하는 코스닥 시장의 ‘히든 챔피언’은 개인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한 개인투자자는 “중소형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들고, 얻은 정보조차 온전히 믿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나마 한국거래소가 발표하는 히든 챔피언은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초대 챔피언들’이 개인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친환경 방제기술로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된 세실이 경영진의 횡령과 분식회계 등으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상폐) 위기에 몰린 점, 시장점유율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히든 챔피언에 오른 LCD장비 업체 유비프리시젼이 실적 허위 공시로 상폐 직전까지 갔던 점, 중소기업청이 ‘한국형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한 네오세미테크가 결국 상폐된 점 등이 모두 질책과 비난을 받는 사유가 되고 있다.
히든 챔피언이라는 말을 믿고 해당 종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문제가 된 네오세미테크 세실 유비프리시젼 종목의 주주 게시판은 경영진과 이들을 소개한 기관들을 성토하는 개인투자자들의 글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혼탁함과 기관들마저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조롱하는 글도 많다.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보이는 곳도 있다.
한국거래소 측은 “정보 제공 차원”이라고 밝힌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의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유비프리시젼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는 “잘 되면 생색내고 안 되면 발뺌하려는 것이냐”라며 “대체 어떤 기준으로 히든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의아하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가 히든 챔피언을 선정하는 데 세계시장 점유율에만 너무 큰 점수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 같은 점은 해당 기관인 한국거래소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히든 챔피언을 선정할 때 세계시장 점유율과 기술력, 경쟁력 외에 CEO(최고경영자)의 자질도 살필 예정임을 밝혔다.
그러나 CEO의 자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인터뷰 등의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인터뷰에서 CEO가 자신의 도덕적 역량을 나쁘게 말할 리도 없을뿐더러 회사의 기밀과 안 좋은 면을 밝힐 리 만무하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회사 상황과 운영 기밀을 털어놓을 CEO가 어디 있겠느냐”며 “오히려 회사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회사를 선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려 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히든 챔피언의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개인투자자들로서는 불만 요소 중 하나다. 네오피델리티 대창메탈 동일금속 등 한국거래소가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극찬했던 일부 히든 챔피언의 지난 한 해 주가는 지지부진했거나 오히려 떨어지기까지 했다. 지난 한 해 주가지수의 상승폭을 감안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물론 히든 챔피언에 선정된 기업들의 실적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만큼에는 미치지 못한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이고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었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이미 구축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만 봤을 때는 이미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히든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현재 모습에만 근거했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코스닥 상장업체 관계자는 “히든 챔피언이 되기 위해 애쓰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당장 기업 PR(홍보)과 금융 지원 등과 같은 면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와 수출입은행 등은 히든 챔피언에 선정된 기업에 대출을 지원하고 금리를 우대하는 등 혜택을 주고 있으며 기업 홍보와 IR(기업설명회)을 지원하고 있다.
때문에 성장성에도 많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실제로 2009년 히든 챔피언에 선정된 32개사 중 2010년 히든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기업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시장점유율 1위였던 기업이 한 해 사이에 점유율 3위권 밖으로 밀려난 기업도 적지 않았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 교수는 ‘성장과 생존능력’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지몬 교수는 ‘눈에 띄게 규모가 성장하고 있다’ ‘생존능력이 탁월하다’를 히든 챔피언의 필수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이 부분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히든 챔피언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2010년 선정된 히든 챔피언들이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한 29개사 중에는 이미 시장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기업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나노텍 성광벤드 주성엔지니어링 KH바텍 등이 그런 기업이다.
지난해 발표한 리스트로 곤욕을 치르는 거래소가 이번에는 안전한 기업을 우선순위에 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히든 챔피언이 더욱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되기를 바란다”며 “지원과 혜택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