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인데 기 살리기 팍팍 오너 배짱 통할까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
여기에다 따로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했다. 품질 향상 등에 기여한 직원들을 위해 보상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합의안과 수치는 맞다”면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다만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는 “그저 원론적인 수준”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임금 인상을 결정한 데는 구본준 부회장의 역할이 가장 컸을 것이라는 평가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현 LG디스플레이)와 LG상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에도 구본준 부회장은 직원들의 임금을 종전과 다르게 파격적으로 인상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인상은 구본준 부회장이 오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관측이다. 이전 LG전자의 ‘김쌍수·남용 체제’에서는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자본시장과 기업문화로 볼 때 오너가 결정하면 끝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임금이 대폭 인상됐다는 것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구 부회장의 취지대로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LG전자 직원들의 분위기는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LG전자 직원은 “임금 올려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는 역시 지난해 LG전자의 실적이 매우 부진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LG전자는 재계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큰 상처를 입었다.
때문에 파격적 인금 인상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LG전자는 지난 1월 26일 보통주 1주당 200원, 우선주 1주당 250원의 배당을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보통주 1주당 1750원을 배당한 것과 비교해 88.6% 삭감된 수치다.
LG전자의 실적 부진은 LG그룹의 다른 계열사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LG전자의 인센티브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왔던 ㈜LG와 실적이 고공행진을 거듭한 LG화학이 가장 난처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LG전자의 실적이 부진하면서 대놓고 인센티브를 주기가 난처했던 것이다.
㈜LG의 경우 그동안 내내 LG전자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왔던 터라 전례를 깨고 다른 계열사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논란이 될 것이 뻔하다. 만약 다른 흑자 계열사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인센티브 적용 기준이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다. ‘전자보다 화학’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LG화학 역시 LG전자의 실적 부진으로 대놓고 잔치를 벌일 수 없었던 셈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다.
LG전자의 주주들은 LG전자의 임금 인상을 유난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당이 대폭 축소된 데다 주가마저 하락해 손실을 입은 터에 직원들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불만일 수밖에 없다. LG전자의 한 주주는 “주주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데 자기들끼리만 좋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주주는 임금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구본준 부회장이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구단주라는 점을 들어 구 부회장의 판단에 물음표를 던졌다. 큰돈을 들여 거물 FA(자유계약) 선수들을 영입하고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LG트윈스의 성적을 예로 들며 구 부회장의 경영 능력과 결단을 비판한 것이다.
LG전자의 임금 인상이 그리 탓할 일은 아니라는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주주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존재”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주주보다 직원들을 더 중시하고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LG전자의 올해 전망은 안팎으로 좋은 편이다. LG전자의 실적 악화의 주범이었던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부와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부가 올해 1분기 턴어라운드(실적개선)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빠르면 올 2분기, 늦으면 올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던 예측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여기에다 LG전자는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수기 분야 등 새 사업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국내외 증권사들은 LG전자에 대해 잇따라 ‘매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도 “임금 인상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올해 사업에 자신 있다는 의미”라면서 “주주들도 오히려 이렇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갤럭시S2와 아이폰5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올 여름이 고비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LG전자의 향후 경쟁력은 이때 판가름 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인상한 임금이 영업이익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살펴봐야 한다. 제조업의 경우 직원 임금은 원가와 판매관리비에 반영된다. 이는 모두 영업이익과 관련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 임금은 비용 부담이 큰 부분 중 하나다. 만일 임금 때문에 영업이익이 크게 조정을 받는다면 회사와 경영진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구본준 부회장의 결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