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줬는데…왜 우울하지?
▲ 영화 <섹스앤더시티> |
올봄 국제 성과학 학술지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섹슈얼 헬스>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성 중 3명에 1명꼴이 섹스 후에 슬픔이나 가벼운 우울, 불안과 초조, 심리적 동요 등 일련의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섹스 후에는 남녀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일종의 충만감을 얻기 때문에 심신이 안정된다고 널리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게다가 여성 응답자들은 하나같이 “파트너의 위로나 노력이 이런 불쾌감이나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퀸즈랜드 공과대학(QUT) 심리학 교수 로버트 슈바이처(Robert Schweitzer) 연구팀이 20대 호주 여대생 222명을 대상으로 앙케트와 인터뷰를 실시해 이러한 결과가 밝혀졌다. 조사에 참가한 여성 중 33%에 해당하는 66명 정도가 “섹스의 만족도나 파트너에 대한 애정이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섹스 후 일종의 심리적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섹스 후 여성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섹스 후 불쾌감·위화감(Postcoital Dysphoria)’이라 부르는데, 이런 심리상태는 성교 도중이나 전에는 전혀 느끼지 않다가 성교가 끝난 직후 갑자기 시작되며, 약 한 시간 정도로 지속되는 점이 특징이다. 가벼운 짜증도 함께 일어난다. 또 이런 불쾌한 기분이나 우울증은 일반적인 정신 건강 상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즉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섹스 후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며, 성교 후 불쾌하고 우울하게 느낀다고 해서 우울증도 아니란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1.8%에 해당하는 4명의 여성은 ‘거의 매번 성교 직후 불쾌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안정된 배우자와 행복한 섹스 직후에도 ‘매우 우울하게 느꼈다’는 응답도 있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섹스 직후 우울증이 느껴지면 즉각 자신이 머물던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지거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자신의 섹스 파트너와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많은 연구자들이 여성이 섹스 직후 겪는 불쾌한 감정을 규명하고자 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성기능 장애 연구 등에서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성의 약 14~34%, 여성의 약 33~43%가 섹스 직후 우울하게 느낀다는 결과가 발표되긴 했으나 정확한 이유나 심리적 과정이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또 어렸을 적에 성적 학대 등을 경험한 여성이 섹스 자체를 죄악시하고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는 과거 연구결과가 있긴 하나 이번 연구에서는 성적학대 경험 유무와 섹스 직후 느끼는 불쾌감과는 확실한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 섹스 직후 불쾌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섹스 후 느끼는 불쾌한 기분과 우울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돌려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공허하고 허무하다”, “마음속에 깊이 구멍이 뚫려 텅 빈 것 같다”, “과거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을 강렬하게 느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성 특유의 섹스 직후 불쾌감은 대인관계나 섹스 자체와는 무관하게 ‘섹스 후 호르몬 변화 등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