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에이스만 가는 ‘범정’으로 불리며 전성기…수사 외적 업무에 총장 소문까지 스크랩해 총장에 직보
자연스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폐로 지목됐고 서서히 검찰 내에서 존재감을 잃어갔다. 하지만 손준성 전 수사정보담당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 사법연수원 29기)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발을 사주하는 역할을 했다고 지목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자리는 검찰 내에서도 ‘지금 주어진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아는 인물이 드물 정도다.
#검찰의 국정원, ‘에이스’들의 자리
일명 범정은 ‘검찰 수사를 위해 범죄 정보를 모으는 곳’을 부르는 약칭이었다. 범죄 정보를 모은다는 이유로 언론과 기업 대관, 국회 등을 수사관들이 마음껏 누빌 수 있었고, 이들이 모은 정보는 검찰총장에게 진액만 요약돼 보고됐다.
역사도 깊다. 수사정보담당관실, 아니 범정의 뿌리는 1961년 4월에 출범한 대검 중앙수사국에서 시작된다. 당시 수사과, 사찰과, 특무과, 서무과 등 4개의 과가 설치됐는데, 1973년 특별수사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대통령의 하명 사건 등을 담당하는 부처가 됐다.
노태우 정부 이후, 검찰의 역할이 커지면서 함께 존재감도 커졌다. 특히 노태우 정부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때 늘어난 강력 사건과 기업비리 사건 수사가 범정에서 시작됐다. 범정이 모아놓은 정보 중 ‘혐의가 나쁘다’고 판단된 것들이 대거 검찰의 수사 리스트에 올랐고, 자연스레 대검 중앙수사부는 ‘큰 놈들의 비리가 될 만한 정보’가 모이는 곳이 됐다. 검찰도 이를 적극 활용했다. 1995년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 중수부 산하에 범죄정보과를 설치했다.
1999년 1월에는 아예 대검 중수부에서 독립, 독자적인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됐다. 이때가 가장 전성기였다. ‘범정’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한데, 부정부패·경제범죄사범·공안 등 범죄정보 수집 등을 주로 맡았다. 특히 검찰의 양 수사축인 특수와 공안이 각각 나눠서 모았던 범죄 관련 정보 수집 기능을 홀로 도맡으면서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범죄 정보만 수집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 관련 정보도 수집하는 게 주된 업무였는데, 검찰 관련 정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검찰총장’에게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국회가 돌아가는 정황, 청와대 내 분위기, 검찰의 수사를 두고 언급되는 정치권의 반응 등도 범정이 챙겨야 할 몫이었다. 이 안에는 검찰총장을 둘러싼 각종 소문들을 스크랩하는 역할도 있었다.
#검찰총장에 ‘직보’ 비검사장 보직
당연히 ‘측근’이 임명되는 자리가 됐다. 직제 상으로는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지휘를 받지만, 대부분 검찰총장에게 직보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검찰총장의 국정원’ 혹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총장들은 이를 알면서도 범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수집된 범죄 정보들을 보고 선택해서 수사를 지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기 위해 범정이 활용됐다.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차장검사가 수사정보정책관(이전에는 범죄정보기획관)을 맡았고, 그 밑에 1담당관, 2담당관으로 2명의 부장검사를 뒀다. 밑에는 3~4명의 검사와 20~30명의 수사관들이 국회와 청와대, 각 기업과 언론 등을 나눠 담당하며 정보를 모았다.
당연히 승진을 ‘담보’하는 자리가 됐다. 최재경, 소병철(현재 국회의원), 오세인, 전현준, 이동열, 권익환 등 기수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범죄정보기획관을 맡거나, 담당관으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기획뿐 아니라 특수나 공안도 갈 수 있었는데, 공통점은 동 기수 가운데 ‘에이스’로 분류되는 이들이 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범정이 야당 정치인이나 기업인, 고위관료 등에 대한 개인정보와 첩보까지 수집한 점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됐다. 박근혜 정부 역시 검찰개혁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에 이어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과 가깝다는 평을 받은 사람들이 중용됐다. 대검 범정을 통해 수집한 기업이나 정치인 관련 비리 정보로 수사를 하는 패턴이 활용되면서 범정 전성시대는 계속됐다.
하지만 국정농단 논란과 함께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개혁의 대상이 됐다. 출범 직후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됐던 정수봉 대검찰청 범정기획관을 곧바로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 내는 좌천성 인사를 한 뒤,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대검 범정 파트가 압수수색을 받는 흑역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 직접 수사를 위한 범죄 정보 수집이 필요했던 탓에 없어지지는 않았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018년 2월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하면서 40여 명의 조직을 10여 명으로 줄였다가, 서서히 조직을 다시 충원해 30명 규모를 운영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8월 검찰 직제개편안을 통해 수사정보정책관실을 수사정보담당관실로 하향 조정하며 차장검사급 1명 부장검사급 2명이던 조직을 축소했다. 다만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을 수사정보담당관으로 유임시켰다. 역할도 인권감독과 사법통제를 위한 수사정보 수집만 담당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사고 터질 수밖에 없었던 자리?
대검 범정 파트에 근무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쓰이는지가 중요한 곳’이라고 얘기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검 범정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대검 범정은 검찰총장이 어떻게 쓰겠다고 마음먹는지에 따라 수사를 위한 정보 수집에 올인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고, 검찰총장이 원하는 국회, 청와대의 분위기 탐지 및 동향 파악에 집중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며 “다만 수사를 하기 위해 기업들과 정치인들, 공무원들의 비위 첩보를 수집하는 것은 대검찰청이 다른 조직 어느 곳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란은 윤석열 전 총장 재직 시절에도 불거진 적이 있다. 윤 총장의 직무정지 사태 과정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수사 정보가 아닌 재판부 동향을 파악한 문건이 공개됐던 것. 당시 문건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사건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정치 사건을 재판 중인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 가족관계, 취미, 성격 등의 정리돼 있었는데, 이를 놓고도 ‘판사 사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범정기획관을 역임했던 한 법조인은 “워낙 방대한 자료를 다루다 보니 검찰이라는 조직이 다른 곳들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역설적으로 그러다 보니 수사 외적인 업무가 많아서 ‘위험하다’ 싶었던 적도 많았던 곳”이라며 “이번 논란 역시 범죄정보만 모으는 게 아니라 그 외적인 업무, 검찰 조직과 검찰총장의 사적 영역까지 케어해야 하다 보니 발생한 것 아니겠냐”고 안타까워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