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아니라 터널… 500명 서서 나갔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져 화제가 됐다. 칸다하르주의 ‘사르포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탈레반 조직원들과 정치범들이 집단 탈출하는 다소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 이번 사건은 5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무더기로 탈출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이보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이들이 택한 탈출 방법에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5개월에 걸쳐서 조금씩 땅굴을 파 들어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탈레반 측은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작전은 매우 중요한 작전이었다. 병들고 늙은 정치범들까지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구출하고자 노력했다”며 자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도소 간부들이나 관리자들은 5개월이 지나도록 이 계획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이에 일부에서는 내부 공범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미 아프간군과 교도소 내부에 탈레반 측과 비밀리에 협력하는 이중 스파이들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어이없다 못해 황당한 이번 사건을 되짚어 봤다.
지난 4월 25일 새벽 2시경. ‘사르포자 교도소’ 감방의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물라 아사둘라 아크훈드(30)는 누군가 자신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그를 깨운 사람은 함께 복역하고 있던 탈레반의 부지휘관급 인물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잠에서 깬 아크훈드의 귀에 대고 그는 “조용히 일어나서 옆방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하면서 “그곳에 가면 누군가 탈출하는 길을 안내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귀를 믿지 못했던 아크훈드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의 지시에 따라 옆방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시멘트 바닥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었던 것.
이미 밤 11시부터 많은 무리의 수감자들이 차례로 이 구멍을 통해 빠져 나간 상태였고, 아크훈드 역시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몇몇 수감자들과 무리를 지어 구멍 안으로 내려갔다.
바닥에서 1.5m가량 파내려간 땅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너비 2m, 높이 2.5m로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놀랍게도 전등과 환풍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혹시 무너질 것에 대비해 곳곳에는 철근과 콘크리트 기둥도 세워져 있었다.
실제 아크훈드는 <데일리 비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땅굴을 통과하는 동안 혹시 무너지진 않을까 무서웠다”면서 “땅굴 위로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면 우르릉 하는 느낌과 함께 윗부분에서 흙이 떨어져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잠시. 그렇게 20~30분을 걸어간 끝에 그는 마침내 반대편 출구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5~6명의 탈레반 조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픽업트럭을 타고 인근에 위치한 안전지대로 피신했다. 그를 태우고 왔던 픽업트럭은 다시 땅굴이 위치한 곳으로 돌아갔으며, 그는 다시 다른 트럭을 타고 인근 헬만드주의 작은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을의 한 비밀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탈옥을 자축할 수 있었다.
일명 ‘탈레반판 쇼생크 탈출’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은 아크훈드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위기나 장애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번 대탈옥으로 자유의 몸이 된 수감자들은 전체 수감자 1200여 명 가운데 500~600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탈레반 지휘관급은 106명 정도다.
사건 발생 직후 칸다하르 주정부는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통해 65명을 다시 붙잡았고,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도 미군과의 협력을 통해 계속해서 탈주범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들일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사르포자 교도소’는 주로 탈레반 조직원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으로, 아프간 남부 최대의 정치범 수용소로 이름이 나 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 측에 따르면 고위급 및 최고위급 탈레반 조직원들은 이곳이 아닌 카불 북부의 바그람 공군기지 내에 위치한 ‘바그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바그람 교도소’는 미군과 아프간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수의 재소자들이 수용되어 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반해 비교적 허술한 ‘사르포자 교도소’는 이미 지난 2008년에도 한 차례 대규모 탈옥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탈레반의 자살폭탄 요원들과 무장요원들이 교도소 벽을 폭파하고 1200여 명의 재소자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들 중에는 탈레반 조직원도 350명가량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교도소 측은 구석마다 감시탑을 설치하거나 콘크리트 담장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거나 여러 단계의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보안에 신경을 써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또 발생하자 교도소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실 외부 보안은 눈에 띄게 개선됐지만 내부 보안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 놓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증명하듯 실제 교도관에 의해 처음 땅굴이 발견된 시간은 탈옥수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30분이 지난 새벽 4시 무렵이었다. 순찰을 돌던 한 경비원이 그제야 구멍을 발견하고 비상벨을 울렸지만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하지만 <데일리 비스트>와 인터뷰한 한 탈옥수의 말은 달랐다. 경비원이 탈옥 사실을 알게 된 건 작전이 완료된 지 한참이 지난 오전 7시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교도소의 허술한 경비에 대해 한 탈옥수는 “경비원들은 늘 술에 취해 있거나 헤로인이나 마리화나에 취해 잠들곤 했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탈출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순찰을 돌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내부 공범자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싣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몇몇 탈옥수들의 입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탈출한 모하마드 압둘라는 “교도관들 중 몇몇이 우리의 작전을 도왔다. 그들은 감방 열쇠를 복사해서 갖다 주었다. 작전 당일 이 열쇠로 동료들의 감방문을 쉽게 열고 탈출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수감자들 중에서 탈출 작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은 3~4명 정도였으며, 모든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작전에서 가장 화제가 된 땅굴은 도대체 어떻게 판 걸까. 총길이 320~360m(혹은 1㎞)라고 알려진 이번 땅굴은 교도소 바깥에서 파기 시작해 카불-칸다하르 고속도로를 지나 검문소 아래를 통과한 후 직접 감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5개월 전 한 무리의 탈레반 조직원들이 교도소 외곽의 한 건물을 건설회사로 위장시켰다. 18명의 탈레반들이 건물 안에서 땅굴을 파는 작업에 투입됐으며, 이들은 건설업체가 몰려 있는 주변 환경 덕에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땅굴이 무너질 것에 대비해서 만들었던 철근 및 콘크리트 기둥도 전혀 의심을 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건물 바깥에서는 건설업체 직원인 양 행세했고, 건물 안에서는 개미처럼 열심히 땅굴을 팠다. 파낸 흙은 트럭이나 당나귀 마차에 실어서 내다 팔았다. 결국 탈레반은 5개월 후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번 작전을 가리켜 “독창성, 조직력, 정교함 등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졌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이번 대탈옥이 아프간군과 연합군에게 더욱 위험스럽게 다가오고 있는 이유는 노련한 수백 명의 지휘자급 탈레반들이 한꺼번에 조직으로 돌아갔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혹시 연합군을 향한 대규모 공격이 재개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 근래 들어 아프간 국방부 공격, 칸다하르 경찰서 공격 등 탈레반의 공격이 격화되면서 아프간군과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