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잡으면 미안해” 어민들 자진 생업포기
▲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연례 벚꽃축제가 취소된 가운데 지난 7일 시민들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벚꽃을 감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숙 분위기가 지나친 나머지 경제 전반이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주간 경제지<다이아몬드>의 온라인 여론조사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자숙 찬성파와 반대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간 무성했던 소문과 달리 일왕 일가가 교토로 피신가지 않고 도쿄에 남아 ‘자숙’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왕실은 도쿄전력 측에서 실시하는 계획 정전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지난달 15일부터 저녁 시간대에 하루도 빠짐없이 정전을 하고 있다.
일왕은 전립선암 치료를 받고 있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옷을 껴입으면 괜찮다”며 난방을 하지 않고 손전등이나 양초를 켜놓고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왕실 궁전도 거의 폐쇄하다시피 했다. 화려한 조명이 많아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 궁전은 국가 훈장수여식이나 큰 행사 시 사용하는데, 3월 말 단 사흘간 대사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이래 굳게 문이 잠겨있다.
최근 출소한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파 두목도 ‘자숙에 동참하겠다’며 조촐하게 축하식을 치러 화제다. 5년 남짓 실형을 살다 나온 만큼 원래는 성대히 파티를 열 계획이었으나 선배 두목의 묘소를 방문하는 정도로 그쳤다고 한다.
자숙 찬성파는 “남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야말로 일본인의 미덕”이라며 “때가 때이니 만큼 뭐든 자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이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출마 포기선언을 뒤집고 이번 4월 지방 선거에 나와 4선에 성공했다. 지난달 11일 지진 직후 “지진은 천벌”이란 망언을 해 구설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자숙을 부르짖어 인기를 되찾았다는 평이다. 이시하라 지사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지금 벚꽃이 피었다고 술 한잔하며 놀 때냐”며 일각의 꽃놀이를 질타했다. 또한 “편의점과 자판기를 밤에 운영 못하게끔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렌호 행정쇄신 겸 절전계발 담당상(장관급)은 “편의점 야간 영업이 치안 유지에 도움 된다”고 반대해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렌호 담당상은 재해지역 방문 시 입은 파란색 작업복 상의 옷깃을 바짝 세웠다가 “옷깃은 왜 세우냐. 지금 카메라 의식할 때냐”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유명 연예인들은 행여나 자칫 자숙 찬성파의 표적이 될세라 자기 블로그에 식도락을 다룬 글을 다 삭제했다. 심지어 *^^*등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들어간 과거 글까지 다 삭제했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한 민간방송국에서는 난데없이 사내 직원들에게 반소매 티셔츠 착용금지령을 내렸다. 이유인즉슨 재해지역 등에서는 예년과 달리 4월 초에도 눈이 내리는 등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졌으니 근신해야 한다는 것. 우연히 TV뉴스에서 스튜디오를 오가는 한 스태프가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 후 “방송국에서 지금 난방을 하는 것 아니냐”는 확인 전화가 걸려오고 “재해지역에서 시청하니 이를 배려해 반소매 티셔츠는 입지마라”고 쓴 시청자 팩스가 쇄도했다.
논란이 된 스태프는 <주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난방은 안했다”고 항변하며 “좁은 스튜디오에서 환기도 안 되고 방송 기자재에서 열이 나 반소매를 입은 것인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지진 이후 집에 돌아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다”며 억울해했다.
지난 만우절에는 ‘자숙해야 하니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어이없는 주장도 나왔다. 한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는 자신을 전화피싱 사기꾼이라 밝힌 이가 ‘오늘만은 나도 자중해 사기전화를 하지 않겠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생업까지 포기하며 ‘자숙’에 동참한 사례도 있다. 이바라키 현 어민들은 현 당국의 ‘자숙’ 요청에 따라 어업을 포기했다. 현 당국은 원전사고가 일어난 이웃 후쿠시마에서 잡은 까나리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되자 ‘이웃을 생각해 어업을 자제하자’는 방침을 내놨다고 한다. 현 당국 요청 전까지 이바라키 앞바다에서는 방사선 기준치를 넘는 물고기는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과도한 자숙 분위기가 계속되자 “자숙은 스스로 하는 게 의미가 있지 강제로 하면 되냐”는 목소리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사회 전체 활기가 줄어들어 결국 경기회복은커녕 장기침체로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지진 및 쓰나미 피해지역인 일본 동북지방 주민들은 “제발 자숙만은 말아 달라”는 반응이다. 동북 이와테 현 주민들은 유튜브에 “꽃놀이를 즐기며 우리 지역산 식품과 술을 먹고 마시는 게 곧 돕는 길”이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일본술을 구하라(save-sake.com)’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서는 지역산 술을 살 수 있는 상점 위치를 가르쳐주고 응원 메시지를 받고 있다. 또 8월 ‘도쿄 불꽃놀이’가 취소된 지역 근방 주민들은 “원래 불꽃놀이는 기근 때문에 굶어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려 근세부터 시작된 것인데, (자숙 찬성파는)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관광업계를 비롯해 상점가, 유흥가, 파친코, 게임업계 등 서비스업계는 자숙 분위기로 침체의 늪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피해 등이 전혀 없는 남쪽 지방의 술집 등에서도 손님 발길이 딱 끊겨 호스티스 시급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시급 정도로 내려갔을 정도라 한다.
그렇지만 관련 업계는 아무 내색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속병만 앓고 있다. 섣불리 자숙에 반대하는 말이라도 꺼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라도 하면 오히려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주간 신조>에 따르면 적자가 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익금의 일부를 피해지역 성금으로 내놓고 있는 업체도 더러 있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