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 돌릴까 무섭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하이트가 진로 인수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돌출되고 있는 진로쪽의 동요와 지방 소주사들의 반발이 인수협상에 악재로 작용되는 것을 염려해 박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는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기 위해 넘어야 할 힘겨운 난제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단 하이트맥주는 진로 노조가 기업 실사를 저지하던 것을 해결해 인수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 그간 진로 노조는 국부 유출 반대, 100% 고용승계, 투자이익 사회환원 등을 요구하며 기업 실사를 저지해 왔다. 진로 노조의 실력 저지는 박 회장이 고용승계 입장을 밝힌 뒤인 13일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과 유정환 진로 노조위원장의 회동 이후에 철회되었다.
그날 회동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다. 다만 진로 노조 관계자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구두 약속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구두 약속이 구속력은 없지만 양측에 충분한 신뢰관계가 생긴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하이트맥주의 실사를 허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이트 맥주는 15일 시작된 기업 실사를 애초 계획대로 4주 만에 마칠 예정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진로 인수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이트맥주가 입찰 가격을 적정가보다 훨씬 높은 3조2천억원(추정)을 써냈기 때문에 이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인수 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돈 많이 버는 체질로 바꾸는 작업(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주산업이 자본집약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감원의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쪽은 지방 소주사들이다. 특히 맥주시장에서 하이트맥주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영남지방의 소주사들은 벌써부터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를 막기 위한 공동대응이 논의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92%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진로는 영남지역에서만은 맥을 못추고 있다. 이곳의 강한 지역색 때문이다. 토종업체인 대선주조, 금복주, 무학은 각각 부산, 대구·경북, 경남에서 90% 이상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트맥주가 맥주와 소주의 공동 유통망을 구축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일 경우 토종업체의 아성이 일시에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주류 도매상들의 입장에서도 맥주와 소주가 연합한 거대 주류회사가 생기는 것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럴 경우 주류업체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도매상들의 교섭력은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방 소주 시장의 반발 때문에 박 회장이 ‘지방의 소주 시장으로 무리하게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반발이 커질수록 공정위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과점 판단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서다.
때문에 하이트는 진로 인수의 목적을 지방 소주시장 진출보다는 수도권의 맥주시장 점유율 확대에 있다는 점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의 맥주시장은 하이트맥주가 40%, 오비맥주(OB, 카스 포함)가 60%를 양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하이트맥주가 58%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만큼은 오비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트의 이런 ‘진심’에 대해 지방소주업체들은 미덥지 않다는 눈치다. 이미 하이트가 지방 소주회사 한 곳을 운영하고 있기에 하이트가 수도권 맥주시장까지 평정한 뒤 후순위로 소주업계 평정을 노릴 가능성도 잠재해 있어 소주업계의 반발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하이트 진로 인수전의 가장 큰 고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판단 결과인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논란거리는 맥주와 소주가 ‘보완재’냐 ‘대체재’냐이다. 맥주-소주가 커피-커피크림처럼 서로 매출액에 영향을 주는 ‘보완재’라면 업계 1위 업체들끼리의 합병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체재 관계일 때에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소주와 맥주가 이름만 다른 주류라는 하나의 시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무학이 대선주조를 인수하려고 시도했으나 독과점 문제로 불발에 그쳤고,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에도 불발에 그친 적이 있다.
그러나 하이트맥주측은 맥주와 소주는 주종이 다르기 때문에 그 문제들과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독과점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인 소주업체 하이트주조를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북 지역에서 42%, 전국적으로는 1.5%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하이트주조를 매각할 경우 기업결합에 의한 독과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하이트쪽은 보고 있다.
진로인수의 열쇠를 쥐게 된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철규 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진로와 관련, “경쟁제한성 여부가 사전심사의 핵심기준이 될 것이다. 지리적 시장의 범위를 정하고 소주와 맥주의 대체성을 분석하는 한편 국내시장 집중도, 해외경쟁의 존재 여부, 신규진입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하이트측은 ‘해외경쟁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국내 주류산업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공정위가 단순히 국내에서의 독과점 문제를 뛰어넘는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하이트의 경쟁자였던 두산이나 CJ는 공정위가 국내시점의 독과점에 방점을 찍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공정위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