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있는 정치판’ 확 꼬집고 빵 터지다
▲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포스터를 패러디한 <나는 꼼수다> 포스터. |
그런데 전 국회의원, 시사평론가, 현역기자, 인터넷미디어 대표 등 주로 ‘정치 사파리’에서 먹고 사는 무명의 4인방이 최근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정치와 방송인이 결합된 신(新) 폴리테이너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아니 주목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지형을 바꾸는 등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정치를 전면으로 다루면서도 중독성 강한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바로 세계 유일의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을 표방한 <나는 꼼수다>(나꼼수) 이야기다.
급변하는 IT환경 속에 언론학계에도 새로운 정치방송 프레임으로 주목하고 있는 <나는 꼼수다>를 일요신문이 ‘꼼꼼하게’ 들여다 봤다.
# 정치방송의 새 지평
요즘 유행하는 말로 ‘빵’ 터졌다. 원래 패러디의 대상인 인기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능가할 정도다. 방송을 만드는 4인4색인 중년남자들 스스로 “그렇게 인기가 있나?” 하고 의아해한다. 실제로 <나는 꼼수다>는 팟캐스트(Podcast)에서 한국 최고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제쳤고, 한국 프로그램으로는 독보적 1위였던 <두시탈출 컬투쇼>마저 한참 뒤로 밀어냈다. 지난 8월 중순에는 CNN, ABC 등 미국의 주요 미디어를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에피소드 단위). 실제로 요즘 이거 모르면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도 모르냐’는 타박 듣기 딱 좋다.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는 이미 술자리 유행어로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끼리 파일을 주고받았다는 증언도 나올 정도로 중독성이 심하다.
심지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사퇴 반대,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추대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서도 ‘나꼼수’의 영향이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류 언론이 나꼼수를 기사로 다루고, 지난주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나꼼수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미 ‘시골의사’ 박경철, 박원순 변호사-박영선 의원 등이 이 코너에 직접 출연한 바 있다.
<나는 꼼수다>는 지난 4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정봉주 17대 국회의원(현 국회는 18대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전(前) 교수인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의기 투합해 첫 방송을 내보냈다. 제작 김용민, 제공 딴지일보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마포의 한 스튜디오를 5만 원에 빌려 녹음을 하고, 5000원짜리 식사를 하고 헤어지니 제작비는 회당 7만 원 정도다. 당연히 출연료는 없고, 유료광고도 없다.
기본적으로 이 방송은 접근이 쉽지 않다. 컴퓨터나 모바일기기를 통해 청취가 가능하다. 그것도 제법 공을 들여 찾아야만 들을 수 있다. 팟캐스트(podcast)는 아이폰으로 아이튠즈에 접속해서 음악이나 음성 등 오디오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두었다가 언제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렇게 접근이 어려운데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특히 지난 6월 8회부터 디테일에 강한 ‘부인 전문 기자’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가세하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보통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되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나오자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나는 꼼수다>가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용민 전 교수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웃음의 혁명성’을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짧게 요약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치는 사실 서민생활과 대단히 밀접한 영역인데 주류 미디어는 폼 잡고 건조하게, 때로는 본인도 잘 모르는 고담준론을 섞어가며 뻔한 이야기를 하니 대중이 외면한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는 정치를 밥 먹고, 똥 누고, 남녀상열지사에 열광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상의 한 행위로 끌어내렸다. 화려한 언사와 구상 뒤에 숨겨진 권력자들의 유치한 욕망체계를 까놓고 야유하는 맛이 통렬한 것이다.
방송은 대본도 없고, 모든 게 주먹구구로 시작했다. 심지어 타이틀도 첫 녹음 1분 전에 정해졌다. 가끔 욕설도 나오고, 귀에 아플 정도로 웃음소리도 크다. 자기들끼리 자랑도 하고, 말도 끊고 뭐 정신이 없는데도 듣다보면 할 얘기는 다한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BBK 사안을 가리려는 의도에서 터져 나왔다는 의혹제기, ‘여의도 큰 목사님’ 등 대형교회 목사에 대한 고발, 오세훈과 주민투표, 엄패션 사건(강원도지사 선거 때 엄기영 후보 측의 부정선거 적발), 저축은행 비리, 인천공항 매각(매입?) 등 사회이슈,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카의 국가를 통한 재테크 꼼수 등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성편력과 조폭, 황당한 정치인들의 뒷얘기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다.
# 무시할 수 없는 후폭풍
정봉주 전 의원은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라는 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꼼수다> 이전에는 회원수가 2000명이 채 못됐지만 10월 초 4만5000명으로 폭증했다. 지난 4월 27일 400명이 넘는 회원들이 노원구의 한 웨딩부페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분위기가 흡사 연예인 팬클럽 행사를 방불케 했다. 여기에 참석한 4인방은 사인공세에 자리를 뜨지 못할 정도였다. 현재 이 카페는 전국적으로 지역모임을 가질 정도로 그 규모와 실제 활동에서 유시민, 박근혜 급으로 성장했다.
정 전 의원은 <나는 꼼수다> 17회 방송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부당한 사퇴요구가 거센데, 나꼼수(16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짚은 이후에는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역풍이 발생해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17회 방송 이후에는 여론조사에서 사퇴반대가 50%를 넘을 정도로 여론이 확 바뀌었고, 이것이 주류언론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인 정 전 의원은 “유력 정치인들이 방송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달라고 주문한다. 심지어 각종 정치인들의 모임에 나꼼수 출연자들을 게스트로 초청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정봉주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입후보해 전국을 돌며 바람을 일으켜달라는 주문을 당 지도부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박영선 의원과 박원순 변호사가 출연한 21회 방송 모습. |
김 교수는 <슈퍼스타K>를 히트시킨 Mnet의 김용범 PD의 친형이다. 예전에는 동생이 형이 하는 일을 홍보했지만 최근에는 나꼼수를 통해 슈퍼스타K 시즌3을 홍보할 처지가 됐다.
주진우 기자도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데 취재현장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더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갑작스런 유명세를 의식하지 않고, 기존에 하던 대로 좋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주 기자는 <일요신문> 출신으로 현재 <시사IN>에 근무하고 있다.
나꼼수의 열기는 유명인사들 사이에서도 번지고 있다. 김민식 MBC PD는 블로그에서 “듣다보면 뒤집어진다. 통쾌하다”고 평했고, 소설가 공지영은 스스로 “영상도 없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듣고 있을까”라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학자들의 분석도 줄을 잇는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는 “대중은 모든 권력에 궁금증을 갖는데, 현 정부 출범 뒤 주류 미디어가 이런 호기심을 해소해주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나는 꼼수다’의 인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진순 중앙대 겸임교수(신문방송학과)는 “‘나는 꼼수다’는 이용자가 스스로 찾고 공유하는 모델이다. 따라서 ‘자가발전’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하는 데도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꼼수다’를 들어 본 사람들끼리 도와서다. 그들은 콘텐츠 수신자-소비자가 아니라 송신자-(메시지)발화자”라며 새로운 전파양식에 주목했다.
현재 청취자들은 ‘후원금 계좌를 알려 달라. 시원하게 쏘겠다’, ‘정봉주 전 의원 지역구로 이사가 19대 총선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 ‘김어준 총수의 말을 성경 다음으로 믿는다’며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이 같은 ‘흥행대박’에 고무돼 출연진은 유료 광고를 받고 공개방송과 주 2회 방송을 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김어준 총수가 “배고픈 사람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떠드는 식의 콘셉트를 포기하지 말자”며 거부하기도 했다.
대신 쇄도하는 애청자들의 요청에 “귀찮다”, “싫다”를 공식 반응으로 내놓은 것이 미안하다고 판단해 출연진은 오는 10월 28, 29일 양일간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행사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최근 티셔츠를 판매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동이 나 버리기도 했다.
김용민 전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방송인 까닭에 집권층이 명예훼손 등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된다. 한 기자 전언에 따르면 권력 핵심부 인사가 이 방송을 듣고는 ‘청와대 안에 엄청난 빨대(정보원)가 있는 것 같다’며 염려했다고 한다. 또 토크콘서트 장소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무척 애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꼼수 열풍은 출판가도 강타했다. 지난 6월 나온 김용민 전 교수의 <조국현상을 말한다>는 7쇄까지 찍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대 인터넷서점인 YES24에서 정치·사회 분야 2위, 종합 10위권에 진입했다. 이어 10월 1일 나온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는 발매와 함께 종합 1, 2위를 다투고 있다. 10월에는 김용민 전 교수가 제작자로 <나는 꼼수다 뒷담화>를 펴내고, 정봉주 전 의원도 현재 신간을 집필 중이다. 특히 정 의원은 ‘가카 헌정 만화’라는 콘셉트로 온 국민이 복잡한 BBK문제를 단박에 알 수 있도록 <만화 BBK(가제)>를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는 꼼수다’는 가카헌정방송인 만큼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2013년 2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주로 목요일에 업데이트되지만 가끔 호외도 나오고, 녹음날짜가 바뀌기도 한다. 청취방법은 안드로이드폰은 http://old.ddanzi.com/appstream/ddradio.xml에서, 아이폰은 http://itunes.apple.com/us/podcast/id438624412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홍지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