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 보건복지부는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중단 권고를 내렸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3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1차 동물흡입실험을 최종 완료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에 들어있던 두 가지 성분(PHMG, PGH)이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와 함께 질병관리본부는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해당 성분이 포함되지 않는 가습기살균제 제품들까지도 사용중단 권고를 내렸다.
추가 실험이 이어질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여러 난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가습기살균제는 판매중단이 내려져 실험을 위해 필요한 제품을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이 제품을 내주지 않는다면 실험진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 정부당국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모든 제품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며 “1차 실험이 주요 제품을 대상으로 했다면 2차 실험은 많이 판매 되지 않았던 제품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 인과관계가 증명돼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본조건이 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또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
제조·판매사들의 입장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적법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달리 보상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피해자를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 자사의 제품을 쓰고 병을 앓다 죽음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으로 사망한 피해자는 29명, 애경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사망한 피해자는 6명으로 조사됐다. 다만 애경 제품의 경우 질병관리본부 1차 실험 결과에서는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 사망 사례인 산모 윤 아무개 씨(사망 당시 30세)의 경우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1년 넘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가장 많은 피해자가 집계된 가습기당번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져 측은 ‘가습기살균제’라는 말만 꺼내도 “할 말이 없다. 지켜보고 있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꺼리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제조사가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피눈물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소송을 진행해서라도 사과와 피해보상을 받겠다는 것. 실제 지난 1월 법무법인 정률 외 가습기살균제 소송 공동대리인단은 가습기살균제 판매업체, 제조업체,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장을 제출했다.
법무법인 정률의 김석배 변호사는 “소송 제기 이후 추가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1심 결과는 빨리 나올 수 있겠지만 단번에 끝나는 소송이 아니기에 최종 결과를 올해 안에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별개로 2개 이상의 집단소송과 공익소송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대책모임의 강 아무개 씨는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소송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다. 정부와 해당 기업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 하소연했다.
강 씨를 비롯한 피해자대책모임의 대다수는 5세 미만의 어린 자녀를 떠나보낸 이들이 많았다. 돌을 맞아 모두의 축복 속에서 생일잔치를 한 직후 폐섬유화 증상이 심해져 한 달 만에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엄마, 결혼 3년 만에 어렵게 낳은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부부…. 이들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싸움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가습기 업계도 울상
살균제 불똥…매출 ‘뚝’
겨울철 영·유아를 키우는 가정에서 적절한 습도조절을 위해 가습기는 필수제품이었다. 덕분에 겨울철은 가습기 업계의 성수기였지만 이번 겨울은 심각한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가습기 판매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는 가습기살균제를 쓰지 않고 관리만 잘해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소비자들이 가습기 사용 자체를 꺼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습기뿐 아니라 공기청정과 가습기능을 동시에 하는 ‘에어워셔’(Air Washer)도 날벼락을 맞은 모습이다. 에어워셔는 독일에 본사를 둔 벤타코리아가 처음 한국시장에 선보인 뒤 LG전자와 웅진코웨이 등 대기업들도 뛰어들어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가습기와 달리 에어워셔는 공기 이외의 다른 첨가물이 배출되지 않아 살균제를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벤타코리아 관계자는 “올 시즌은 가습기살균제 파문으로 모든 회사가 어려운 상태다. 우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조금씩 구매문의를 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어 내년에는 다시 판매율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살균제 불똥…매출 ‘뚝’
겨울철 영·유아를 키우는 가정에서 적절한 습도조절을 위해 가습기는 필수제품이었다. 덕분에 겨울철은 가습기 업계의 성수기였지만 이번 겨울은 심각한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가습기 판매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는 가습기살균제를 쓰지 않고 관리만 잘해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소비자들이 가습기 사용 자체를 꺼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습기뿐 아니라 공기청정과 가습기능을 동시에 하는 ‘에어워셔’(Air Washer)도 날벼락을 맞은 모습이다. 에어워셔는 독일에 본사를 둔 벤타코리아가 처음 한국시장에 선보인 뒤 LG전자와 웅진코웨이 등 대기업들도 뛰어들어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가습기와 달리 에어워셔는 공기 이외의 다른 첨가물이 배출되지 않아 살균제를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벤타코리아 관계자는 “올 시즌은 가습기살균제 파문으로 모든 회사가 어려운 상태다. 우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조금씩 구매문의를 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어 내년에는 다시 판매율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