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이ㆍ오ㆍ박(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주민들만 시름시름
▲ 신반포 1차 아파트 전경. 서울시의 정책 혼선 탓에 재건축 사업이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오세훈 표 ‘한강 르네상스’가 발목 잡아
신반포1차가 재건축을 추진한 건 10년여 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당시 주민들은 서울시의 ‘반포지구 아파트개발 기본계획’에 맞춰 용적률 278.9%를 적용해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상 30층, 총 1037가구의 아파트를 새로 건립하는 재건축 계획안을 수립했다.
첫 시련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닥쳤다. 오 전 시장의 역점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개발 정책’이 발목을 잡았다. ‘한강 공공성 회복(한강변 초고층 개발)’ 방안에 따라 이곳이 주요 사업지구의 하나인 ‘반포 유도정비구역’에 편입된 탓이다. 한강 공공성 회복이란 병풍처럼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낡은 아파트 단지를 최고 5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되, 동(桐)과 동 사이를 벌려 띄엄띄엄 배치함으로써 한강변을 일반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자는 취지의 개발 구상안이다.
이 무렵 신반포1차는 당시 법적상한용적률이 300%까지 완화된 법 개정안을 활용해 지상 35층, 1412가구를 짓는 내용의 정비계획 수정안을 만들어 2010년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신청했다가 반려됐다.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 구상안에 맞도록 사업계획을 다시 짜오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서울시가 사업계획안을 뒤집으라고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하라는 가이드라인은 주지 않아 황당했다”며 “관련 공무원을 붙잡고 귀동냥 수준으로 물어물어 대강의 기준을 파악한 뒤 수정안을 다시 수립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실제 신반포1차의 계획안은 통상 4~5개월이 걸리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기간을 훨씬 넘겨 1년 5개월 만인 작년 3월에야 통과됐다.
우여곡절 끝에 도시계획심의를 통과한 신반포1차는 지난해 6월 건축심의 신청 과정에서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한다. 서울시의 건축심의 관련 부서에서 “아직 반포 유도정비구역 전체의 밑그림이 나오지 않았으니, 행정 절차를 밟기 어렵다”며 제동을 걸었다.
조합 측은 ‘읍소와 항의’ 끝에 겨우 서울시로부터 개략적인 지침을 받아, 층수와 기부채납 비율 기준 등을 마련해 작년 12월에야 건축심의를 재접수했다. 이 단계까지 오는 데만 당초 예상보다 2년이 더 걸린 셈이다. ‘시간이 곧 돈’인 재건축 사업의 속성상 주민들의 피해가 그만큼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서울시 정책을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엔 ‘박원순 쇼크’…주민들 패닉
건축심의는 쉽게 통과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낙관적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강변 초고층 개발 방안에 대해 서울시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달 초 서울시에서 열린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35층 높이로 계획했던 신반포6차 재건축안이 보류됐다. 이곳은 신반포1차와 멀지 않은 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근에 이미 재건축이 끝난 아파트 단지들이 30층이 넘는 상황인데, 신반포6차도 비슷한 높이로 건립될 경우 인근 단지들의 개발 요구를 거스르기 어렵다”며 “도시계획적인 공공성 측면에서 고층 아파트 건립이 바람직한지를 우선 따져봐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서울시장이 바뀐 이후 또 다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한테 뺨 맞고, 이번엔 박원순 시장이 또 퇴짜를 놓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단지를 감싸고 있다”고 전했다. 신반포1차뿐 아니라 △압구정동 현대·한양 △여의도 삼부·미성·광장·시범 △잠실 주공5단지, 장미1·2·3차 등 한강변 초고층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일제히 비상이 걸린 상태다. 서울시는 용적률을 높여 가구 수를 늘리는 수단인 종(種) 상향 요구도 엄격하게 판단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대표작 ‘뉴타운’ 한파 심각
혹독한 ‘칼바람’을 맞고 있는 곳은 뉴타운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0년 전에 파놓은 뉴타운 정책의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서다. 출발은 좋았다. 2002년 시범 뉴타운이 처음 발표되고 이명박 시장 임기시절 무려 35개 뉴타운이 곳곳에 지정되면서 낡은 단독 다세대주택 주인들은 모처럼 집값 폭등의 달콤함에 취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뉴타운은 대부분 착공조차 못한 채 지리멸렬한 주민 찬반 논란만 격화되고 있다. 사업이 꽤 진행된 일부 사업장도 장밋빛 기대와 달리 수억 원에 이르는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해 새 아파트에 입주할 꿈도 못 꾸는 주민들이 수두룩하다. 한 도시계획전문가는 “한 나라의 수도를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정책을 도입한 나라는 전 세계에 단 한 곳도 없다”며 “여기에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감에 너도나도 뉴타운을 지정해달라고 요구한 주민, 이를 부추긴 정치인 모두의 총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사태”라고 꼬집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원순 시장이 실타래처럼 꼬인 뉴타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출구전략’(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구상)을 발표하면서 지분 가격이 떨어지는 분위기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장위뉴타운과 창신뉴타운 등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시장 호황세의 끝물이었던 3~4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된 지분도 상당하다. 장위뉴타운의 20㎡ 이하 소형지분은 2억 2000만~2억 3000만 원이었으나, 최근 1억 원 안팎의 호가에도 팔리지 않는다. 한 중개업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무렵 매물을 확보하는 대로 친지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가 손실이 커 갈등을 빚고 있다”고 털어놨다.
뉴타운 시장에 뛰어든 대형 건설업체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수주해 놓은 사업장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서 관리·운영비용으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어서다. 뉴타운 경기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수주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고위 임원들의 상당수는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정책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누가 서울시장으로 오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을, 예측 가능한 시정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선 한국경제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