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제휴 ‘마음의 병’ 예방접종
▲ 가수 김장훈과 방송인 이경규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
대중에 노출되고,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항상 초조하다. 일이 없으면 캐스팅이나 앨범 준비 때문에 고민하고, 막상 신작을 내놓으면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노심초사다. 혹평이 이어지면 마냥 괴로워하고, 호평이 이어져도 다음 행보에 대해 고민한다. 끊이지 않는 고민과 불안은 우울증을 불러오고 항상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망상에 시달리다 공황장애도 겪게 된다.
때문에 요즘 연예 기획사들은 이런 증상으로부터 소속 연예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유재석 강호동 권상우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대거 보유했던 팬텀엔터테인먼트는 2007년 순천향대학병원 우울증센터와 손잡고 연예인들의 정신 건강을 돌봤다. 이후 배우 문근영 김주혁 등이 속한 나무엑터스도 배우들의 우울증 상담과 치료를 독려하고 나섰다.
소속 연예인의 건강관리에 가장 적극적인 연예기획사는 엄정화 엄태웅 김윤석 서우 주원 등을 확보하고 있는 심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과 업무 제휴한 후 소속 배우들의 건강 관련 문제들을 예방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심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은 자신이 원하는 때 이 병원의 전문의와 상담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업무 제휴가 돼 있기 때문에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적다. 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외국에 비해 국내는 우울증 등 정신 건강을 돌보는 것에 대해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게다가 연예인들은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기도 한다. 하지만 소속사와 제휴가 돼 있는 병원이라면 연예인들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엄정화 역시 이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던 도중 갑상선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엄정화는 영화 <베스트셀러>의 촬영을 마친 뒤였다. 소속사와 연계된 병원을 통한 검진 및 수술이 신속히 이뤄져 암을 완치한 뒤에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엄정화는 영화 <댄싱퀸>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엄정화는 “처음에는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걱정되고 힘들었다. 너무 섣불리 수술을 결정한 것은 아닌가 후회가 되기도 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찌감치 치료를 마친 덕에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컴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몇 기획사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이 어린 연예인들이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 컨트롤 능력이 부족한 어린 연예인들이 고충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병을 키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원조 아이돌그룹 H.O.T의 토니 안은 우울증으로 무려 4년간 약을 먹다가 조용히 군에 입대했다. 빅뱅의 멤버 탑 역시 우울증 및 불안 증세로 투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 노출되며 항상 웃음 짓다 보니 정작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생긴 마음의 병이었다.
대부분 남자 연예인이 군 입대를 기피하지만 정작 토니 안은 군 생활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 전쟁터와 같은 연예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병세가 호전됐다. 그만큼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1세대 아이돌그룹을 통해 경험을 쌓은 연예기획사들은 최근 아이돌그룹의 정규 레슨 중 심리치료를 넣기도 한다. 겉으로 큰 문제가 없는 상태라도 미리미리 전문 상담사를 투입해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10대~20대 초반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예민할 나이이기 때문에 더욱 관리가 필요하다. 상담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속에 담아둔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꺼리고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멤버의 부모 역시 심리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예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또 다른 방법은 여행이다. 작품이나 공식 활동이 끝난 후 공허함을 느끼는 연예인들이 먼 곳으로 떠나 마음껏 휴식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혼자서 멀리 여행을 가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연예기획사는 화보 촬영을 겸한 여행 스케줄을 잡는다.
통상 드라마나 영화 촬영, 앨범 활동이 끝나면 각종 유명 패션지 등으로부터 화보 촬영 제안이 들어온다. 이 경우 매니저와 코디네이터까지 패션지 측의 비용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흔쾌히 응하곤 한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해당 연예인이 원하는 장소까지 지정할 수 있다. 통상 일주일간 화보 촬영을 떠나면 3일 정도 촬영을 진행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여행을 즐긴다. 작품이 끝난 후 허탈감에 빠지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휴식과 돈벌이를 겸할 수 있는 화보 촬영 여행을 연예기획사들이 적극적으로 권하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