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은 나야 나’ 서로 재 안 뿌리면 다행…
▲ 제일모직 이서현 부사장(왼쪽)과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 둘은 사촌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최근 프랑스 유명 브랜드 ‘지방시’의 국내 영업권을 따내기 위한 SI와 제일모직의 자존심 싸움은 대단했다. 본래 지방시는 한섬과 계약관계를 유지하며 국내에서 입지를 다져오다 지난해 새로운 사업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워낙 인기 있는 브랜드였기에 여러 업체가 관심을 보였으나 현대홈쇼핑이 한섬을 인수하며 재계약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지방시는 SI를 선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일모직과 SI의 경쟁이 생각보다 더욱 치열하다는 것을 이번 계약을 진행하면서 알게 됐다”며 “지방시 본사와 국내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협상을 했는데 제일모직 측이 마지막엔 ‘우리와 계약하지 않아도 되지만 SI만은 함께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더욱이 지방시를 시작으로 한섬과 계약기간 종료를 앞둔 해외 유명 브랜드가 많아 두 회사의 신경전은 시작 단계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한섬과 계약을 맺고 있던 셀린느와 끌로에 랑방 등은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톱 브랜드이다 보니 두 기업 모두 판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가장 각광받는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왕’ 독점계약을 두고도 웃지 못할 경쟁을 벌였다. 제일모직이 먼저 관심을 두고 협상을 고려하던 중 SI는 독점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열고 “우리가 더 장사를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적극 뛰어들었다. 결국 지난해 9월 알렉산더 왕은 적극공세를 펼쳤던 SI의 손을 들어줬으나 업계로부터 ‘굴욕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명품 편집숍을 둘러싼 경쟁에서도 양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SI는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유통경로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에 매장 확보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제일모직은 그룹 차원의 유통채널이 없어 매장 확대가 골칫거리다. 만약 신세계에서 협조를 해준다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SI의 한 내부 인사는 “신세계나 SI도 제일모직의 유통경로 확보에 대한 어려움을 모르진 않을 것인데 전혀 도와주는 부분이 없다. 물론 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신세계에서 너무 모른 척을 하다 보니 감정의 골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제일모직은 SI·신세계의 라이벌인 롯데와 ‘통 크게’ 손을 잡았다. 지난 3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5층 전체를 빌려 명품 편집숍 ‘10꼬르소꼬모’와 명품 브랜드 ‘꼼데가르송’을 오픈한 것. 롯데백화점도 1개 층을 통째로 패션업체에 내주기는 제일모직이 처음이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SI의 명품 편집숍인 ‘분더숍’이 신세계백화점에도 입점하며 영역을 확대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연합전선인 셈이다.
강남 ‘청담 대전’에서 시작된 부동산 전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계약 조건으로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SI와 제일모직은 부동산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SI가 먼저 청담동을 장악하고 있을 때쯤 이서현 부사장이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원을 업고 뛰어들어 이제는 청담동에 남는 땅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여기에 SI는 최근 증권사에서 부동산 업무 경력이 있는 사원을 채용하며 칼을 갈고 있어 이들의 부동산 전쟁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