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뒤집을 ‘론스타 X파일’ 떠돈다
▲ 지난 2월 15일 야당 원내수석부대표들이 외환은행 매각 등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 합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투기자본인 론스타가 과연 국내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갖췄는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이러한 논란들은 최근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작업에 가속도를 붙이면서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외환은행 매각작업 중단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치권이 외환은행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단 토종자본을 외국계 투기펀드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투기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를 경우 또다른 해외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론스타의 탈세 의혹을 제기한 것에 이어 최근엔 860만 달러 밀반출이 적발돼 론스타의 매매 행위에 대한 도덕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정치권은 이 사안을 SK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의 사례나 최근 아이칸의 KT&G 경영권 위협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토종자본 침공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며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작업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다면 이는 곧 매각작업을 승인했던 현 정부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야권의 움직임을 지방선거전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 2003년 8월 이뤄진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도덕적 결함을 입증할 자료가 발견된다면 이는 5·31 지방선거전에서 여권에 대한 공세용 카드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 조작에 대한 구체적 물증이 등장할 경우 자칫 현 정권의 최대비리로 쟁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여권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으며 얼마전 사의를 표명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경기지사 출마도 확실시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에 있지만 강금실-진대제 두 영입인사의 지방선거 출마는 서울시장-경기지사 선거전을 넘어 침체된 열린우리당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한나라당의 서울시장-경기지사 후보들이 강금실-진대제 카드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점 역시 한나라당의 속을 태우는 부분이다. 지방선거의 최고 ‘노른자위’인 서울시장직과 경기지사직이 여권에 넘어갈 경우 지난 두 번의 대선 패배에 이어 ‘지지율에선 이겨도 중요한 선거에 지는 정당’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 외환은행 본점(왼쪽)과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사진공동취재단 | ||
반면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정부·여당을 흠집내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응수하고 있지만 재계와 시민단체 등에 확산된 론스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맞물려 외환은행 매각 건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져 가는데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여·야의 신경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소문이 정치권과 재계에 등장했다. 우선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보고서에 대한 소문을 들 수 있다. 지난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감독당국이 외환은행의 경영상황을 왜곡해 부실금융기관으로 간주하고 인수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며 김진표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 20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은 얼마전 국회에 제출한 소명자료를 통해 ‘외환은행은 2003년 론스타가 자본을 투입하지 않았을 경우 그해 말 BIS비율이 4.4%로 떨어져 부실금융기관으로 전락했을 것이 명백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외환은행의 매각 당시 상황에 대한 금융당국의 보고서가 검찰에 전달됐다는 소문이 정치권과 재계에 나돌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이나 수사당국 모두 보고서의 ‘실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군침을 흘릴만한 대목이다. 만약 금융당국의 내사결과 매각 과정에서 BIS비율 조작 등의 잘못이 확인됐다면 인수자인 론스타의 자격 논란 차원을 넘어 승인 당사자인 정부당국의 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금융당국이 매각과정에서 별 문제가 없다는 조사결과를 수사당국에 전달했을 경우엔 외환은행 매각이 순조롭게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이며 정부와 여권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한 야당 의원은 “금융당국이 작성한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는 것은 정부와 당국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라 밝히기도 했다.
외환은행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을 달구는 또 하나의 화두는 외환은행 매각 관련 당사자들의 회의 내용 녹취록의 존재 여부다. 최근 정치권과 재계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 직전 관련 핵심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있다’는 괴소문이 나돌고 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회동에 참석한 인사가 소기의 목적을 위해 직접 녹취했거나 제3자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들 수 있다.
현재로선 풍설로만 떠도는 녹취록의 실체가 드러나야 어느 정파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있겠지만 여권보다 야권이 적극적으로 이에 대한 소문의 꼬리를 추적해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지방선거 정국에 외환은행 매각건을 둘러싼 ‘미확인 소문’이 뇌관으로 등장할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