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거절하니 위약금 협박, 이후 악몽의 연속…노 씨 비롯한 성착취 피해자들 고소 진행 예정
과거 강제로 벗방(옷을 벗는 방송)을 진행했던 노 아무개 씨 얘기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공개해서라도 가해자가 처벌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자신의 사연이 공개돼 더 많은 피해자가 모이길 원한다며,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자기 말이 신빙성을 얻을 수 있길 바랐다. 한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평범했던 삶은 벗방 이후 파괴됐고, 현재 정신과에서 자살 위험이 매우 높다며 노 씨에게 입원을 권유하는 상황이다.
노 씨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건 한 부업 알바 제의 때문이었다. 2021년 11월 노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부업 제의를 받게 됐다. 노 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민이 많던 차에 방송 출연 1회에 1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하게 됐다. 노 씨는 “나는 방송 출연 알바라는 게, 게임이나 대화 참여로 생각했으니 벗방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 방송에 큰 관심이 없어 벗방이란 존재 자체도 몰랐을 때다”라고 말했다.
노 씨가 남 아무개 씨 스튜디오에 찾아가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노 씨가 찾아간 스튜디오는 예상과 달리 좁은 원룸이었다. 남 씨는 노 씨에게 계약서를 들이밀었고 자세히 읽지도 못하고 사인을 했다. 그때부터 남 씨가 ‘방송 중에 벗어야 한다’며 옷을 벗기려 했다고 한다. 노 씨는 “내가 거부했지만 남 씨가 ‘계약서를 잘 읽어보면 위약금이 엄청나다. 계약서대로 돈을 물고 싶냐’고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노 씨는 정말 엄청난 금액을 물어야 하는 줄 알고 어쩔 수 없이 방송했다. 방송에서 노 씨는 옷을 벗어야 했다. 중간 중간 방송을 음소거하고 남 씨가 행동이나 멘트를 지시하면 노 씨가 대사를 하는 식이었다. 억지 방송 출연을 해야 했던 노 씨에게 남 씨 등은 ‘협조를 잘해주면 5~6시간 걸릴 방송 시간을 1~2시간 내로 끝낼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노 씨는 “집에 물이 없다며 자꾸 술을 권했고, 정신뿐 아니라 몸도 힘들어져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고 말했다. 노 씨는 “집에 일찍 가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출연했고 이들 말대로 협조했지만,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 더는 도저히 벗방을 찍으러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고 노 씨가 그 방을 나왔지만, 남 씨 협박은 더 강도를 높였다. 남 씨는 ‘계약서상 방송 출연은 10회’라며 지속적인 출연을 요구했다고 한다.
노 씨는 “출연을 거부하자, 남 씨는 ‘네 인스타를 알고 있다. 주변인들에게 네가 벗방 한 영상을 뿌리겠다’고 말했다. 노 씨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벗방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노 씨는 “두 번째 출연할 때 정신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아빠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는데 퍼지는 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두 번째 출연을 하긴 했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초 남 씨는 2회째 출연한 뒤 노 씨가 연락을 거부하자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노 씨는 남 씨가 영상으로 협박하던 상황 때문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남 씨는 또 다른 벗방 BJ 윤 아무개 씨를 데려왔다. 윤 씨는 노 씨를 김 아무개 씨에게 데려가 K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게 했다고 한다. 노 씨는 “남 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영상을 없애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19일 노 씨는 김 씨와 새롭게 BJ 계약을 하게 됐다. 인터넷 방송 업계 관계자 A 씨는 “업계에서는 BJ를 계약하게 한 사람에게, BJ가 낸 수익금 일부를 주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남 씨가 노 씨를 김 씨에게 넘긴 게 BJ 수익금 일부를 받기 위해서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2년 1월 노 씨는 영상이 볼모로 잡혀 있어, 정기적인 벗방 BJ가 돼야 했다. K 엔터는 노 씨에게 마스크 등 가리는 것 없이 얼굴 공개를 요구했다. 노 씨는 “김 씨는 하던 일도 그만두게 했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이사도 하게 했다. 방송에서는 싫은 내색 없이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그냥 내 인생은 끝났다고 체념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노 씨는 벗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커다란 종기가 나 수술을 하는 등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노 씨는 새롭게 계약한 계약서에 따라 주 6일, 8시간씩 방송을 해야 했다.
노 씨가 계약서를 지키기 위해 몸이 안 좋아도 억지로 방송을 하는데 표정도 좋지 않자 오히려 벗방 시청자들이 노 씨를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 씨가 “위약금 물지 않으려면 아파도 방송 켜야 한다”고 하자 시청자들이 “뭔가 잘못된 계약 같다. 불공정 계약 같은데 증거를 모으고 법적으로 알아봐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오픈채팅방을 통해 노 씨에게 계약을 파기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노 씨 PC는 김 씨 등 K 엔터가 원격제어를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노 씨는 “2022년 1월 26일 김 씨가 이런 상황을 알고 엄청나게 화를 냈다. 남자 두 명이 이사한 집으로 갑자기 들어와서 사무실로 끌고 갔다. 이들은 ‘너는 회사 비밀 유지 계약을 깬 거다’라면서 휴대전화를 뺏고 초기화해버렸다”고 했다. 노 씨 말에 따르면 이때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포함한 대부분 증거가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노 씨는 2월 9일 K 엔터 직원들이 사는 직원 숙소로 이사해 방송하게 됐다. 노 씨가 자거나 씻으려고 할 때도 불쑥불쑥 남자 직원들이 드나들면서, 안 그래도 벗방으로 인해 커졌던 노 씨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탈모가 시작됐고 이유 없이 온몸이 아팠다. 이들은 노 씨가 번 돈도 주지 않았다. 두 달 동안 100만 원 준 게 전부였다.
노 씨는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원 숙소로 이사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건 항상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 감시가 소홀하다는 점이었다. 2022년 4월 노 씨는 도망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짐을 정리했고, 결국 5월 30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노 씨는 5월 31일 곧바로 K 엔터를 민사 고소했다. 노 씨는 “일단 벗방 수익금을 10%도 정산해주지 않은 부분 고소를 진행했다”며 “6월 13일에 형사 고소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 6월 온라인에 노 씨의 벗방 진행 영상이 떠돌아다닌다는 걸 알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기 시작했고 노 씨는 정신과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도 있었다. 노 씨는 “9월 길 가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치고 가는 사고를 겪었다. 그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노 씨가 김 씨를 고소한 민사 사건은 김 씨가 무변론 하면서 ‘노 씨가 벗방을 하며 번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민사 법정에서 황당한 사실도 알았다. 노 씨가 계약한 K 엔터는 페이퍼컴퍼니였다. 노 씨는 사실상 계약금도 받지 못한 상태였던 데다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계약을 지킬 의무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노 씨는 김 씨를 형사 고소하고 경찰서에 진술도 마쳤지만 김 씨의 행적을 찾을 수 없게 돼 수사는 중단된 상태다.
2022년 9월 연락이 끊겼던 남 씨에게 연락이 왔다. 남 씨는 노 씨에게 ‘나도 김 씨에게 당한 게 많다. 내가 소개하는 회사로 들어오면 김 씨 잡는 데 최선을 다해주겠다’며 ‘너도 회사가 있으면 유출된 영상도 관리하고 삭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남 씨는 노 씨에게 또 다른 엔터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노 씨는 남 씨 말에 따라 I 엔터와 계약을 했다.
노 씨는 “남 씨에게 계속 협박당하다 보니까, 이 사람 말은 계속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0월 노 씨는 I 엔터와의 계약대로 벗방과 함께 구독한 사람에게만 야한 사진을 보여주는 서비스도 해야 했다. 12월 말까지 벗방을 하던 노 씨는 정신적으로 힘에 부쳐 모든 걸 그만두게 됐다. 노 씨는 “계약이든 뭐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다”면서 “2023년 2월 중순 구독형 서비스 계정도 삭제해버렸다”고 말했다.
이제 노 씨는 자기 얼굴을 드러내더라도 이들이 처벌되는 데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노 씨는 “어차피 방송하는 게 알려지면서 인간관계도 다 끊겼다.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최소한 내가 돈에 미쳐서 벗방 한 사람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 씨를 비롯한 벗방 피해자들이 모여 이들에게 형사 고소도 진행할 예정이다. 벗방 관련 피해자를 규합하고 있는 유튜버 카라큘라 이세욱 씨는 “이번 사건은 오로지 수익 창출을 위해 플랫폼과 BJ가 법에 무지한 여성을 상대로 성 상품화를 넘어선 성 착취를 한 공동정범이며, 성인 방송에 출연하는 여성들에 대하여 강요와 협박 여부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의 책임 있는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재천 변호사는 노 씨 말이 맞는다면 증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형사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가 촬영물 등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데, 고소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가해자에 대한 압수, 수색 절차를 통해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진행해 찾아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협박의 증거들이 존재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존재하면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수사기관에서 증거 확보가 어렵다면 범죄 성립이 안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피해자가 다수 존재하며,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협박받은 문자나 카톡과 같은 증거자료 등이 확보된다면 피해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 성범죄에서는 피해자들의 진술만으로 처벌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사실인정의 주요한 수단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살펴보곤 한다”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남 씨, 윤 씨, 김 씨 등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