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경영이 발목 잡았나
반면 현대차그룹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현대차 내부 제보자에 의해 수사당국이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총수일가의 속을 더욱 쓰리게 만들고 있다.
이번 현대차 사태를 바라보는 재계인사들은 정 회장의 지난해 수시인사가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됐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소위 ‘MK(정몽구 회장) 1세대’로 통했던 임원진을 대거 교체하면서 정의선 사장의 앞날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려한 것이 결과적으로 정 사장에게 독이 됐다는 것이다. 수시인사와 더불어 현대차의 내부 감사과정에서 몇몇 인사가 총수일가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검찰은 제보자 신분에 대해 수사 기밀 차원에서 함구하고 있다. 수사당국 주변과 재계에서 나오는 제보자에 대한 온갖 추측을 종합해 보면 ‘주요 계열사의 자금 흐름을 잘 아는 고위직 인사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자금 집행을 담당하던 고위 인사가 횡령 혐의 등으로 인해 내부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 측에 보험용으로 제보하게 됐다’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현직 자금 담당 임원이 현대차 수색 당일 해외로 도피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금도 검찰 측에 현대차 관련 제보가 계속해서 들어온다는 얘기도 있다. 검찰 측이 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현대차 입장에선 ‘제보자 색출’에 당연히 나설 수밖에 없겠지만 딱히 손쓰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지금 현대차 상황을 삼성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삼성의 경우 주요 임원이 퇴직하면 2년간 현직과 동등한 급여를 지급한다고 한다. 삼성 내부 상황에 대해 잘 아는 인사를 다른 기업에서 데려갈 경우라든가 수사당국의 필요에 의해 이용당할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우는 달랐다. 어떤 임원은 지난해 수시인사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나갔다고 전해진다. ‘사람 챙기기’에서 삼성만큼 계산적이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화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