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명상·걷기·혈당체크가 한 세트로, 멀어서 더 좋은 테라피 여행
생활에 찌들고 피로가 몰려올 때 훌쩍 여행을 떠나고도 싶지만, 여행이 오히려 몸과 마음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던 경험들도 적지 않았던 탓에 소파에서 뒹굴며 TV 앞에서 나른한 주말을 보내기 일쑤다. 그런 패턴으로는 피로를 제대로 풀 수 없다.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쌓여 병을 낳기도 한다. 무작정 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쉼이 필요한 이유다.
#갱년기 여성을 위한 여행?
떠나고는 싶은데 그냥 쉬고 싶은 마음도 크다면, 남해로 웰니스 치유여행을 떠나보자. 일명 ‘웰니스 테라피 스테이 IN 남해’다. ㈜바바그라운드가 만든 ‘노는법’ 앱(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날 수 있다. 앱에는 중년 여성, 특히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행이 풍성하다.
일명 ‘볼 빨간 원정대’는 40~50대 갱년기에 접어들어 자꾸 얼굴이 빨개지는 4050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여행이다. 일명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로 갱년기 테라피이자 활동적인 엑티브시니어들에게 제대로 ‘노는 법’을 가르쳐준다. 갱년기 여성을 위한 여행이라니, 언뜻 생소하다가도 우리 엄마와 아내, 누이를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MZ와 알파 세대만 그들만의 특성이 있는 건 아니다. 갱년기 여성들에게도 인생 주기가 부여하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다. 갱년기 여성들이 짊어져야 하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노화의 과정은 잘못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건만, MZ가 그들의 특성을 대놓고 말하는 것과 달리 갱년기 여성들의 여러 징후들은 마치 부끄러운 것처럼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여행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갱년기 여성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여행이다.
#요가로 깨우는 아침
남해군과 남해관광문화재단의 지원과 여행플랫폼 ‘노는법’ 진행으로 떠난 4박 5일 남해 웰니스 스테이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면서도 다채롭다. 매일 아침 8시, 충분히 단잠을 잘 수 있도록 너무 이르지 않은 시간에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과 정신을 알람과 샤워로 억지로 깨워내는 대신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이 좋을 땐 숲속 데크에 요가매트를 깐다. 잠시 눈을 감으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과 아침 새소리가 자연스레 몸과 마음을 열리게 한다. 절로 상쾌하다. 문득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는 스스로가 놀랍다. ‘아, 나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었구나’. 바야흐로 갱년기에 접어든 4050여성들, 울컥 마음을 쓰다듬는다.
초록잎 한들거리는 아침의 숲은 청명하고 맑다. ‘왜 남해까지 가야하지?’ 의문은 스멀스멀 사그라든다. ‘이 순간을 만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때론 아주 멀리 달아나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지 않던가. 폐부 깊이 남해의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고 내셔본다. 호흡!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남해의 자연을 끌어들인 숨이 자연스럽게 몸을 관통해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매트 위에 몸을 뉘이고 말 없는 숨을 쉬며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내버려두는 시간이다. 비록 4박 5일이지만 아침마다 받는 선물이다.
1시간가량의 요가수업이 끝나면 건강한 채소과일식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요가실과 전망라운지 등을 갖춘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즐기는 조식샐러드다. 남해 웰니스 스테이의 스케줄이 진행되는 여행지원센터는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이자 요가와 노르딕워킹 등을 가르쳐주는 남해워킹테라피센터 겸 여행자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센터는 숲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 아늑하고 고요하다. 우아한 산세를 두른 이곳의 평화로운 경치와 맑은 공기는 아침 식사에 거저 따라 나오는 싱그러운 덤이다. 여행자들의 만족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지만 그마저도 ‘지금 여기’의 소중함으로 치환된다.
#노르딕워킹으로 남해바래길 걷기
아침식사 후에는 오전 시간을 활용해 남해바래길을 걸으며 노르딕워킹을 배운다. 노르딕워킹은 스틱을 활용해 몸을 세우고 리드미컬하게 걷는 법이다. 척추를 바로 세우고 굽어 있던 어깨를 펴게 하는 바른 걷기 자세를 익힐 수 있다. 노르딕워킹은 하체 근육 뿐 아니라 상체 근육도 단련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틱을 사용하는 덕에 무릎에도 부담을 줄이며 걷을 수 있어 갱년기 여성에게 유용하다.
하루 5000보에서 1만 보 가량 남해바래길을 노르딕워킹으로 걷는다. 노르딕워킹 강사 자격을 가진 해설사가 동행하니 풍경을 보면서도 계속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남해군의 해안과 숲을 따라 걷는 남해바래길은 총장이 약 240km로 전체 20여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다. 몇 개 코스는 남파랑길 코스와도 겹친다.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고도 센터를 지나는 10코스인 앵강다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 15.6km인 앵강다숲길은 탐방안내센터에서 시작해 미국마을을 거쳐 다랭이마을까지 가는 코스다.
숲과 마을길, 바다를 낀 남해바래길을 걸으며 걷기 명상을 하기 좋다. 스스로를 위한 무념무상의 걷기 치유를 위해 꼭 산티아고길나 제주올레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남해에도 바다를 낀 걷기 코스는 얼마든지 있다.
#혈당을 잡아라!
워킹 후의 허기는 남해지역 특산물이자 제철음식으로 채운다. 남해답게 해산물 그득한 밥상이다. 맛있는 음식을 맘 놓고 먹기만 하면 좋겠지만 평소 당뇨나 비만 등으로 건강에 이상신호를 느꼈다면 산해진미도 편치만은 않을 터. 이번엔 당뇨와 고혈압 등 건강 문제를 비롯해 뱃살 걱정도 많은 갱년기 여성들을 위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여행자 모두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몸에 부착하도록 했다.
2주 동안 사용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를 팔에 달고 있으면 음식을 먹기 전과 후에 혈당 수치를 바로바로 보면서 혈당을 올리는 음식을 즉각적으로 가려낼 수 있어 자신의 특성에 맞는 식이조절을 할 수 있다. 매 15분마다 자신의 혈당이 자동으로 측정되고 분석되며 ‘글루코핏’ 앱을 통해 의사와 온라인으로 실시간 상담을 할 수 있다. 특히 혈당을 급격히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혈당스파이크를 만드는 음식을 가려낼 수 있어 평소 당뇨가 있거나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에게 안성마춤이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매 끼니때와 운동 시 혈당을 측정하면서 자신의 혈당 수치를 체크하고 식사를 조절하거나 운동을 늘리는 등의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같은 음식이라도 개인의 체질과 식이습관, 수면과 근육량 및 운동량 등에 따라 혈당을 크게 올리는 음식이 달랐다.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당뇨이거나 당뇨전단계로 구분되는 등 혈당관리에 문제가 많은 한국인에게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숨 쉬며 마음도 쉬기, 명상
점심식사 후엔 2시간가량 남해 곳곳의 명소를 관광한 뒤 탐방센터로 돌아오면 오후에는 마음공부와 명상의 시간이 준비된다. 마음은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나를 둘러싼 껍데기와 진실은 무엇인지 등 생활에 바빠 한쪽으로 치워놨던 마음의 명제들을 들춰보는 시간이다. 이 역시 전문 강사가 지도한다.
처음엔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으로 연습을 시작한다. 호흡으로 하는 명상이니 숨 쉴 시간이 있다면 명상할 시간도 있는 셈이다. 명상이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리 저림과 졸림을 참아가며 어렵게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저 매 순간 자신에게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하고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려 보는 것, 소유물이나 커리어가 아닌 내 마음 한 번쯤 챙겨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챙김’이라고도 부른다. 법정스님은 “명상하라, 그 힘으로 삶을 다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걸으면서도 차를 마시면서도 풍경을 보며 여행을 다니면서도 언제든 명상은 가능하다. 가만히 앉거나 편하게 누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몸 구석구석 스캔해 보기도 한다. ‘바디스캔’ 명상이다. 한 단계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을 무심히 내려놓는 연습으로 이어진다. 꽉 쥐었던 주먹을 슬며시 펴 보는 것이다. 앙 다물었던 입술에도 힘을 빼 본다.
#생존모드 버리고 남해에서 노는 법
제대로 숨 쉴 시간도 없는 것처럼 살아온 일과, 혹은 긴 한숨으로 자조했던 지루한 일과는 어쩌면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해로 떠나온 웰니스 스테이를 통해 굳이 애쓰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고, 더불어 즐거움과 함께 안온함을 누릴 수 있었다.
저녁식사 후엔 고고한 밤길을 걷는 다랭이마을 달빛걷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TV소리와 자동차 소리 같은 온갖 소음이 사라진 대신 파도소리만 유난한 남해의 밤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생존모드를 버리고 현재에 느긋하게 머무는 여행, 남해 웰니스 스테이는 몸·마음 돌봄과 함께 걷기여행과 남해관광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알토란처럼 꽉찬 여행을 선물한다.
이송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