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치고 잠 푹 잤다…양현종 17연속 직구 계획된 것 아냐”
김태군은 NC 다이노스 소속이었던 2016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경험했다. 그러나 두산한테 4전 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20년 다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올랐지만 주전 포수 양의지한테 밀려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다가 2023시즌 중반에 KIA에 합류하면서 올 시즌 주전 포수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11월 11일 광주에서 김태군을 만났다. 김태군이 좋아하는 선배 양의지 가족과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정규시즌 우승 후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IA 김태군은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를 지켜보며 내심 삼성이 올라오길 바랐다고 한다.
“(양)의지 형과는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4전 전패로 상대도 안 됐다. 이후 나도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였고, 팀의 주전 포수로 나간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민호 형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 생각으로 내심 민호 형이 있는 삼성이 올라오길 바랐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KIA의 주전 포수가 누가 될 것인지도 관심을 모았다. 이범호 감독은 일찌감치 김태군을 주전으로 낙점했고, 그 사실을 선수에게 전달해줬다고 한다.
“감독님이 나를 불러선 ‘준비 다 할 수 있지?’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굴려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감독님이 나를 믿고 내보내 주시는 만큼 책임감이 컸다. 이제는 변명이나 핑계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비로 인해 서스펜디드 경기로 치러졌을 때 6회초 무사 1, 2루 1-0 상황에서 경기가 재개됐다. 김태군은 경기 전날 밤, 6회 마운드에 오를 투수가 이준영에서 전상현으로 교체됐다는 사실을 이범호 감독의 전화로 알게 된다. 김태군은 감독과의 통화가 끝난 후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전상현이야말로 최고의 회전수를 자랑하는 직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6회 삼성의 첫 번째 타자가 김영웅이었다. 초구에 김영웅의 왼손이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됐다. 그때 삼성이 번트 작전을 구사한다는 걸 확신했다. 김영웅이 번트를 대더라도 홈플레이트 앞의 잔디까지만 안 굴러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고, 마침 번트를 댄 타구가 흙바닥에서 멈추는 걸 잡아서 바로 3루로 송구해 디아즈를 포스 아웃시켰다.”
홈런 타자 김영웅의 희생번트가 실패로 돌아갔던 그 장면은 삼성이 서스펜디드로 치른 1차전에 이어 2차전까지 KIA한테 승리를 내준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1차전을 5-1로 역전승을 거두고 1시간 후 열리는 2차전을 준비하는 동안 김태군은 이런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2차전 선발로 한준수가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1차전에 이어 2차전도 내게 기회를 주셨는데 솔직히 그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고 싶더라. 휴식을 취하며 (양)의지 형이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어떤 투수가 나오든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네 볼을 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지 형이 해준 말을 가슴에 새기고 2차전에 나섰다.”
2차전 KIA 선발은 양현종이었다. 양현종은 1회 삼성의 선두타자 김지찬이 초구 직구에 반응하자 이를 역으로 활용해 17구 연속 직구만 던졌다. 이날 전체 투구 수 86개 중 커브는 2개에 불과했을 정도로 변화구를 기다린 삼성 타자의 허를 찔렀다. 김태군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7구 연속은 사전에 이야기된 내용이 아니었다. 5구째인가 6구째 내가 변화구 사인을 냈더니 (양)현종이 형이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현종이 형 스타일 대로 맞을 때까지 한 번 직구로 승부내보자 했던 게 17구 연속 직구가 나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승부였다. 결과가 좋아서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당시 더그아웃에서도 난리가 났다.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현종이 형을 믿고 갈 수밖에 없었다.”
김태군은 4차전에서 데뷔 17시즌 만에 처음으로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3회초 KIA가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바뀐 투수 송은범을 상대로 2구째 135km/h의 슬라이더를 끌어당겨 좌측 폴 안쪽으로 넘어가는 통렬한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렸다.
“정말 기분 좋았다. 그동안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잘 참고 버티니까 이런 일도 겪는구나 싶어서 5차전 우승 직후 눈물도 많이 쏟았다. (최)형우 형이나 (나)성범이 처럼 원래 홈런을 많이 때려내는 타자가 아닌 선수한테서 만루홈런이 나왔으니 삼성은 충격이 컸을 것이다. 경기 후 광주로 이동해서 숙면을 취했다. 모든 걸 다 내던진 이후라 5차전을 걱정하는 대신 잠을 잘 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5차전은 불안하게 시작했다. 선발로 나온 양현종이 2.2이닝 동안 4피안타(3홈런) 1볼넷 3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고 1-5로 뒤진 3회초 2사 후 강판당했기 때문이다. KIA는 위기 상황 속에서 타선이 폭발했고, 조금씩 점수 차를 좁혀 나가다 마침내 7-5로 역전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V12를 달성한다.
김태군은 9회초 마무리로 올라온 정해영과 배터리를 이루며 이성규를 삼진, 윤정빈을 내야 땅볼, 김성윤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경기를 끝냈다.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김태군은 마운드의 정해영한테 달려가 격한 포옹을 나누며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승 직후 선수들과 워크샵을 갔는데 (정)해영이가 한마디하더라. 그때 내가 너무 세게 끌어 당기는 바람에 목에 담 걸리는 줄 알았다고. 그만큼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승 후 가족들과 식당에 가면 KIA 팬들이 ‘축하합니다’가 아닌 ‘우승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주셨다. 새삼 KIA 팬들이 야구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23년 10월 16일 KIA는 포수 김태군과 계약 기간 3년 연봉 20억 원, 옵션 5억 원 등 최대 25억 원에 비FA 다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 일부 KIA 팬들 사이에선 ‘오버페이’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이 계약 덕분에 김태군은 KIA의 포수 후배들, 특히 한준수와 함께 경쟁하고 성장시키면서 포수 운영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 또한 김태군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선발 포수로 출전해 17타수 6안타 1홈런 7타점을 기록했고, 4차전 만루홈런과 5차전 내야안타로 결승타를 만들었다. 타율은 MVP를 받은 김선빈이 높았지만 해결사 역할은 단연 김태군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김태군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프로 17년 생활을 이렇게 돌아봤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버티는 힘이었다. 버티는 것도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그렇게 17년 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이번 우승으로 KIA 팬들이 ‘김태군 잘 데려왔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그 말 잊지 않고 변함없이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내년 시즌도 잘 준비하겠다. 사람이 밑바닥을 경험해 보니 그 밑바닥이 있을 곳이 못 된다는 걸 절감했다. 다시는 내려가기 싫다. 지금의 흐름을 잘 유지할 것이다.“
광주=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