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일본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던 유도대표팀의 김재범이 유도명문대학인 천리대 유도선수들과 대련을 끝낸 후 했던 말입니다. 처음에는 일부러 자신의 기술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발을 사용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김재범은 부상당한 왼쪽 무릎이 완쾌되지 않았고 일본전지훈련 첫 날 손가락 인대마저 끊겨 대련 훈련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정훈 대표팀 감독은 김재범이 휴식을 요청하면 쉬게 해줄 생각이었지만 김재범은 계속 훈련을 하겠다며 훈련장에 나왔고 김재범과 한 번 붙어보기를 희망하는 천리대 유도선수들과 줄줄이 대련을 소화해냈습니다.
다음날 새벽 6시. 400미터 트랙을 도는 훈련이 이어졌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은 김재범 역시 선수들 틈에 속해 있었습니다. 제대로 뛸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정훈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벗고 400미터 트랙을 1분 10초대에 10바퀴나 돌았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한 번 뛰고 나면 곧장 쓰러질 듯 했지만 그는 얼음으로 발, 어깨, 무릎을 찜질하며 선수들과의 훈련에 단 한 번도 빠지질 않았습니다.
그때 김재범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얘길 전했습니다.
“올림픽은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부상이 많아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놨고 신께 맡기기로 했다.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어깨와 팔꿈치는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도 내 왼팔이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더욱이 왼쪽 무릎까지 다쳐서 기술을 걸지도 못한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참고 훈련하는 것이다. 요즘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훈련을 해야 하고 올림픽에 나가야 하고 메달을 따야 하는 것이다.”
기자한테 마치 신앙 고백을 하듯이 올림픽을 준비하며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 담담히 털어 놓던 김재범은 이런 얘기로 기자의 감정선을 건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베이징올림픽 때 은메달을 따서 아쉽지 않느냐,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나한테는 그 결과가 최선이었다. 이길 수 있는 게임에서 진 게 아니었고 내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내가 금메달을 땄더라면 난 망나니가 돼 있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시려고 나한테 4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루 네 차례 알람을 맞춰두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김재범. 훈련으로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할 때는 잠시라도 눈을 감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김재범은 온 몸이 부상 병동인 상태에 대해서도 결코 절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통해 자신이 더욱 성숙하고 발전한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베이징올림픽에서의 은메달을 ‘아픔’으로 표현했지만 김재범은 그런 결과조차 감사해 하며 또 다른 도전과 도약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젊은이였습니다.
금메달이라고 해서,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올림픽까지 모조리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해서 김재범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전 김재범이 런던으로 오기까지의 지옥 같았던 그 과정을 겪어낸 부분이 더 금메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뤄낸 이 엄청난 결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지도 모릅니다. 김재범 만세입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