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위 대거 사보임 요청 등 대정부 공세 강화…가결파 징계 대신 통합 강조, 공천 과정 정리 수순
#돌아온 이재명, 대정부 투쟁으로 존재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0월 23일 당무에 복귀했다. 단식 투쟁에 따른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실려 간 지 35일 만이다. 이 대표는 그 사이 법원에서 검찰의 구속영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기각을 받아내며 정치적 낭떠러지에서 기사회생했다. 이어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을 이끌었다. 이재명 지도부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이를 바탕으로 이 대표는 국회로 돌아오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안타깝게도 정부·여당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인해 국민의 삶, 또 이 나라 경제가, 우리나라의 안보가 위협 받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국정기조를 전면 쇄신해야 한다. 무능과 폭력적 행태의 표상이 돼버린 내각을 총사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함께 만나는 ‘대통령-여·야 대표 3자 회동’을 제안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민생이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 그동안 정부·여당의 야당 무시가 굉장히 심했다”며 “경제 회복과 민생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10월 22일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를 향해 여야 대표의 ‘민생 협치 회담’을 제안했는데, 이를 사실상 거절한 셈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권한도 없는 바지사장과 의미 없는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담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윤석열 정부 2년 차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대통령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됐다. 국방위에서는 채 상병 사망 사건 해병대 수사 개입 의혹이, 외교통일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응 등 대일 외교가, 법제사법위는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 등 윤석열 정부 하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다뤄졌다.
민주당은 10월 20일 신임 원내지도부 선출에 따른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사보임을 국회의장에 요청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와 장경태 최고위원, 강준현 김한규 문진석 박상혁 신영대 윤영덕 윤재갑 이동주 이용빈 임오경 주철현 의원이 보임됐다. 장 최고위원과 김한규 박상혁 의원은 현 원내대표단은 아니지만, 청와대 근무 경력과 본인의 의사 등을 고려했다. 대통령실 안보 관련 이슈를 담당했던 김병주 의원은 운영위에서 계속 활동하기로 했다.
이번 사보임은 원내지도부가 운영위 위원을 겸임한다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전투력을 갖춘 의원들을 운영위에 전면배치함으로써 대통령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하는 운영위 국감은 11월 7일 열린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졸속 이전에 따른 안보 문제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행보와 관련된 예산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개정안도 11월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고 하도급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3법은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으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앞서 민주당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 상임위에서 본회의 직회부 요구 안건으로 단독 통과시켰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 위원들은 법사위에서 논의 중이던 법안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본회의 직회부 요구 안건으로 처리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26일 헌재는 두 법 모두 국회법 절차에 따라 상임위를 통과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사건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에게도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민 깊어지는 정부·여당
민주당과 이 대표의 대정부 투쟁이 강해지자 정부·여당은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여·야·정 3자 회동’ 제안에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0월 25일 “김기현 대표가 ‘나하고 먼저 만나자’고 다시 얘기하는 바람에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단독 회동에 대해서는 “누누이 말했지만 ‘영수회담’은 없다”고 일축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실이 영수회담은 물론이고 3자 회담까지 거부하겠다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이 요구한 협치 복원을 거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운영위 국감을 앞두고 자료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낸다. 국회 운영위 소속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가 해외 순방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 어떤 예산으로 김 여사가 일정을 수행하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며 “이에 민주당에서 김 여사 일정 관련 예산에 대해 자료를 요청하고 질의를 했지만, 대통령실은 전혀 응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들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암시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 4월과 5월 각각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발동했다.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불통’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국민들이 만들어진 법의 취지나 의미를 모두 파악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국회가 올린 법률을 계속해 거부권 행사한다는 행위만 기억할 것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좋은 모습은 아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법안뿐 아니라 정부인사 임명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 후보자들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태도는 자료 제출 없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도 윤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고위공직자가 벌써 18명”이라며 “민생 경제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국회와 협치해야 하는데, 야당 당대표조차 만나지 않고 있다. 그럼 국민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를 반영하듯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정체 상태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의 경우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는 10월 3주 차(14~15일)와 4주 차(21일~22일) 각각 29.2%와 28.3%를 보여, 2주 연속 20%대를 기록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러한 대통령 지지율 정체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비명계, 공천 앞두고 가만히 있을까
이재명 대표 체제에 탄탄대로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당내 비명(비이재명)계의 비판 목소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 앞서 친명계를 중심으로 당 안팎에서는 이른바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파 5인방’ 해당 행위 징계 요구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 10월 9일 진교훈 당시 강서구청장 후보 유세 현장에서 “우리 앞에 거대한 장벽이 놓여있다.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부족하고 억울한 게 있더라도 잠시 제쳐두고 저 거대한 장벽을 함께 손잡고 넘어가자”며 “단결하고 단합해 국민의 위대함과 역사가 진보하는 것임을 증명하자”고 ‘통합’을 강조했다.
당무에 복귀해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민주당이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단결하고, 단합해야 한다”고 사실상 가결파에 징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명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미리 징계를 통한 분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잠시 제쳐두고’라고 했다. 이는 내년 총선 공천까지로 볼 수 있다”며 “당원들 사이에서 비명계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친명계 후보와 당내 경선을 붙으면 비명계는 대거 탈락할 것이다. 미리 해당 행위 징계를 내려서 비명계 탈당의 빌미를 줄 필요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를 의식한 듯 비명계 의원들이 이 대표의 ‘통합’ 메시지에 일제히 쓴소리를 던졌다. 이원욱 의원은 10월 26일 자신의 SNS에 “당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며 통합의 메시지를 낸 것은 잘하신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말에 그친다면 통합은 이뤄질 수 없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청래 최고위원 등이 여전히 ‘가결파 징계’를 거론하는 걸 두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 가결 의원들을 색출하겠다는 식의 발언 역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해당 행위”라며 “이들에 대해 묵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통합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이 대표와 전·현직 원내대표단의 도시락 오찬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이 대표를 향한 날 선 비판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4선 홍영표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중도 확장적인 메시지와 정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위해서는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강성 권리당원들의) 테러 수준에 가까운 공격을 당에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이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어 친명계 지도부 및 일부 초선 의원이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동료 의원들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점도 지적하며 “그런 데에 일단 출연 자체를 안 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이처럼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에 당의 내홍이 다시 점화될 가능성은 아직 살아있다. 물론 내홍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언제나 당내 잡음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신당 창당설’까지 나오고 있지 않느냐.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고려하면 국민의힘이 공천 과정에서 더 시끄러울 것”이라며 “결국 공천을 얼마나 공정하게 진행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