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지갑 채운 ‘이상한 거래’에 회초리
▲ 태광 이호진 회장 | ||
장하성펀드가 전주방송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전주방송이 케이블방송 부문 지배구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주방송은 이호진 회장이 지분 74.8%, 이 회장의 아들인 이현준 씨가 25.2%를 가지고 있는 가족 개인회사다. 전주방송은 지난해 11월 15일까지는 이 회장의 지분이 100%였다. 전날인 11월 14일 전주방송은 330만 주를 감자해 60만 주를 남겨 두었다. 이후 16일 314만 주 유상증자에 이 회장과 아들이 참여해 각각 280만 4980주와 94만 5000주를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티브로드는 전주방송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얽혀 있는 구조다. 결국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장하성펀드가 오너의 ‘편법적인 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셈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호진 회장 2세의 전주방송에 대한 지분 참여가 이뤄진 이후의 변화다. 유상증자가 있었던 다음날인 11월 17일 전주방송은 천안방송 지분 67%를 66억 원에 전격 인수했다.
11월 14일 감자, 16일 유상증자, 17일 천안방송 인수. 업계에서는 이런 숨가쁜 일정을 볼 때 전주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라고 보고 있다. 전주방송은 올해 7월 같은 권역의 온케이블방송과 반도유선방송을 흡수합병했다. 전주방송을 중심으로 구조개편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장하성펀드는 천안방송 지분이 원래의 주인이었던 태광산업이 인수하지 않고 전주방송이 인수한 것을 두고 대주주의 이익이 오너 일가의 이익으로 돌아갔다며 ‘회사 기회익 편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전주방송이 지난해 11월 인수한 천안방송 지분 67%는 태광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것을 2001년 팔았던 것이었다. 당시 방송법 제한에 걸려 태광산업은 천안방송 지분 100% 중 67%를 매각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제한 규정이 사라지면서 이를 다시 되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01년 태광산업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였던 GS홈쇼핑, CJ홈쇼핑, 우리홈쇼핑이 매입 가격인 2만 원에서 하나도 추가되지 않은 가격 그대로 매각한 것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장하성펀드는 이를 일종의 ‘편법적인 관계’로 보고 있다. 일종의 ‘밀약’이 있지 않았다면 판값 그대로로 다시 사들이는 계약이 가능하겠냐는 해석이다.
▲ 장하성 | ||
천안방송 매입 가격에 대한 의혹은 크게 제기되지 않고 있지만, 이를 태광산업이 아닌 이호진 회장의 개인 회사가 사들인 것은 문제라는 것이 장하성펀드의 입장이다. 천안방송 지분 67%를 인수하는 데 든 비용은 66억 원. 불과 수십억대의 비용으로 방송사업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티브로드 계열사들의 주주구성을 보면 부산 지역의 낙동방송이 같은 권역인 동남방송(100%), 남부산방송(32.34%), 서부산방송(100%), GSD방송(100%)의 대주주다. 낙동방송은 한빛방송이 94.3%를 가지고 있다. 한빛방송은 인천의 새롬방송(56.5%), 경기도의 기남방송(88.74%)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새롬방송은 동대문케이블방송(73.45%)의 대주주이고 GSD방송은 서울지역 강서방송(96.93%)의 대주주다.
이 회장 일가가 가진 전주방송은 천안방송 지분 67%를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볼 수 있는데, 전주방송은 인천 남동방송(100%)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결국 천안방송은 티브로드 18개 중 10개를 지배하고 있는 소(小)지주회사로 전주방송이 인수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나머지 티브로드 계열사 중 인천지역 서해방송은 태광관광개발이 71.16%를 보유하고 있고, 태광산업은 경기지역 ABC방송(50.6%), 수원방송(80.4%), 충남지역 중부방송(47.1%)의 대주주다.
장하성펀드 측은 전주방송이 천안방송을 66억 원에 인수한 것은 태광산업 주주들에게 1000억 원의 손실을 입힌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2년 간 국내 15개 케이블방송사의 M&A시 적용되었던 평균 가입자당 가치는 약 62만 원으로, 월평균 가입자당 매출액을 고려하면 천안방송의 가치는 가입자당 50만 원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천안방송의 총주식 가치는 1710억 원으로, 67%에 해당하는 가치는 1145억 원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66억 원을 뺀 1079억 원을 이호진 회장 일가가 부당편취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태광 측은 “천안방송은 2004년 171억 원, 2005년 21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저조한 실적을 냈다. 장하성펀드 측이 제시한 가격은 이론상의 주장으로, 실제 이익이 날 수 있으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미래가치일 뿐이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GS나 CJ 등 SO 인수합병에 열심인 대기업들이 경영성과를 놓고 인수가격을 정하는 게 아니라 가입자 수를 놓고 SO의 몸값을 계산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다.
한편 전주방송은 유상증자 때의 낮은 주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 회장이 2004년 5월 계열사인 기남방송과 새롬방송으로부터 전주방송 지분을 인수할 때는 주당 9013원을 지급했음에도, 2005년 11월 유상증자 때는 6381원이었다.
태광 측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고, 증여세도 다 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절차상, 세법상 정당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증자 이틀 전 감자를 통해 81%에 해당하는 270만 주를 감자하고 60만 주만 남긴 것은 이 회장 아들이 적은 주식으로 지분량을 늘리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성년자인 이 회장 아들이 납부해야 하는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장하성펀드 측은 갈수록 태광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려는 분위기다. 장하성펀드 측이 원하는 것은 ‘경영의 투명성’이다. 펀드 자본주의가 만능이 아닐지라도 ‘투명한 경영’을 통해 회사 가치가 높아지면 대주주인 ‘은둔의 경영자’ 이호진 회장이나 일반 소액주주나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태광 쪽에선 이런 장하성펀드의 ‘공격’에 대해서 “우리식으로 대응하겠다”며 주주명부 공개 요청도 일단 미루고 있다. 장하성펀드와 태광 등 대주주 쪽의 지분 차이가 많은 데다, 일방적인 폭로성 공세에는 일일이 맞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제기됐던 회사익 편취 의혹을 받던 대기업들은 대부분 ‘논란의 불씨’를 스스로 껐다. 이호진 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받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